#할배도 남자인 거시다 #메라비와 쇼따 할배 #스베티츠코벨리 교회
어제 만났던 젊잖아 보이는 택시기사의 이름은 '메라비'이다.
11시 30분에 집 앞 카르푸에서 만나기로 한 메라비는 어제보다 훨씬 더 말쑥하게 차려 입고 기다리고 있다.
I drink too much yesterday, phew.. you are my guest today, no pay. I'll take you to Mtsukheta.
아니, 이 아저씨가 뭐라는 건가..
오늘 우리는 자기의 손님이니 돈을 안 받겠단다.
어젯밤 과음으로 숙취도 덜 풀려서 연신 물만 들이키면서 하는 말이다.
'아직 술이 덜 깬 거 아니에요?'라고 하니 잘 못 알아들었는지 농담인지 '예스~'란다.
흠.. 이거 뭔가 이상한데..
그래도 우리는 므츠케타에 가야 하니 그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화기도 애애하게 간다.
이 초로의 아저씨는 14년 전에 아내가 미국으로 가버려 혼자 산단다.
호주에서 목축업 일을 하며 5년간 돈을 많이 벌었다는 말까지..
그런데 진짜 호주에서 소만 키웠는지 그의 영어는 5년간 호주에 있었던 영어 같지는 않고 한 5개월쯤 있었던 영어 같다.
내가 다 보여줄게. 당신들은 나의 손님이니까..
그러면서 메라비는 신나는 음악을 쿵쾅쿵쾅 틀고 본인이 신났다.
자기가 '즈와리 성당'도 보여줄 거라며 므츠케타 파킹장에서 내리는 메라비..(므츠케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이라 차가 못 들어간다.)
'메라비, 우린 여기서 두 밤을 자고 갈 거예요. 게스트하우스부터 찾아서 짐을 놔둬야 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우리가 오늘 트빌리시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에 뭔가 자신이 잘못짚었음을 눈치챈 이 아저씨..
난감한 표정을 하면서 자기는 트빌리시로 돌아가야 한단다.
메라비는 우리와 오늘 하루를 보내고 싶었는데 우리가 므츠케타에서 자고 갈 거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예상을 할 필요도 없는 기사와 손님 사이였는데 말이다.
그래도 돈은 안 받겠다며 극구 사양하는 메라비에게,
'메라비, 그러니까 이 돈 받아요, 트빌리시에서 여기는 멀고, 거래는 거래였으니 돈을 받아야 공평한 거예요.'
돈을 받기 싫어하는 그에게 억지로 돈을 주고 그의 전화번호를 저장한다.
'트빌리시 가면 전화할 테니 저녁이나 같이 먹읍시다.'
꼭 전화하라는 이 아저씨.. 미안해서 어쩌나..
숙소는 콴의 블로그에서 보았던 '쇼따 할아버지' 게스트하우스이다.
인포메이션에 가서 쇼따를 물으니 아주 좋은 숙소라며 전화를 해주는데 할아버지가 전화를 안 받으신다.
직접 찾아갈 거라며 위치를 알려 달라고 하니 아주 자세하게 잘 알려준다.
인포메이션을 나와서 왼쪽으로 꺾은 후 첫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6번 집이란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쇼따 할아버지 집은 콴의 블로그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좋다.
새로 리모델링을 한 것이다.
짐을 풀고 좀 쉬어야 했다.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앉아 있는 것도 힘들다.
여자로 태어난 죄.. 한 달에 한 번씩 벌 받는 게 여전히 힘들고 아프다.
뭐, 굳이 여자를 들먹이지 않아도 지난 사흘간 세차게 투어를 했으니 몸이 이상신호를 보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므츠케타도 엄청 더우니 일단 방에서 해가 한 풀 꺾일 동안 쉬기로..
나 때문에 신경 쓰게 해서 제니에게 미안하지만, 윽.. 나는 지금 그럴 정신도 없이 온몸이 온 신경이 아프기만 하다.
오늘은 몸을 좀 살살 달래야겠다.
저녁 무렵 다시 나가서 동네 구경을 한다.
바로 집 앞에 있는 스베티츠코벨리 교회부터 들어가 본다.
므츠케타는 죠지아의 옛날 수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집들이 트빌리시보다 훨씬 고풍스럽다.
이 스베티츠코벨리 교회를 중심으로 집들이 모여 있고 긴 강이 흐른다.
11세기에 지어진 이 성당 안엔 예수님의 성의가 보관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이 성당을 아주 신성시 여긴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결혼식도 거행되고, 아기들 세례식도 이쪽저쪽에서 거행된다.
교회 안이 여러 행사들로 북적인다.
마침 이런 행사들을 볼 수 있어서 아주 행운이다.
저녁에 교회를 둘러보고 나서 숙소에 오니 쇼따할아버지가가 차 한잔 마시라고 부엌으로 가자신다.
할아버지 옷이라도 좀 걸치시지..
내 이 분을 콴의 블로그에서 봐서 그런지 낯익고 정겹다.
쇼따 할아버지는 '러스키'는 되지만 '잉글리스키'는 안돼서 우리는 대화모드가 흡사 제스처 게임을 하는 것 같다.
몸짓으로 알아맞히기! ㅎㅎ
이것저것 소통을 하는데 난관은 많지만 정답을 알아맞히는 재미가 쏠쏠하다.
할배도 웃고 제니와 나도 웃는다.
쇼따 혼자 살아요?
아니, 아들의 아들하고 살아. 쇼티코가 내 손자야.
이걸 우리는 손짓 발짓 그리고 약간의 언어로 알아냈다.
조지아 말로 "쉴리"는 자식이란 뜻이고(쇼따의 몸짓 설명으로 맞힘) "쉴리 쉴리"는 자식의 자식이니 손자인 게지.
아, 쇼따할배를 도와 영어로 통역하며 방 안내하던 총각이 자기 이름은 쇼티코라고 하던데 그가 쇼따의 손자이구나.
쇼따할배(할아버지는 넘 길어서)는 우리에게 정성껏 챠이를 타 주시더니 자기 자랑을 시작한다.
이거 봐.. 이거 내가 만든 거야. 그리고 이것도 내가 만들었어. 그리고 이것도, 또 이것도.. 아, 그리고 이리 따라와 봐. 이 방에 있는 거 전부 내가 만들었다.
밖에 또 있어. 이거랑, 이거랑, 이 분수, 염소 머리..
우와, 쇼따, 참 대단하세요!
우리는 프로 방청객보다 더 크게 리액션을 하고, 할배는 더 업되셔서 입이 귀에 걸리시고..
사진을 찍자고 하니 아니, 이 할배 보소.. 내 등에 얹은 손에 힘을 꼭 주네?
어허..할배요..마이 외로웠나 보네요.
내친김에 쇼따할배 내 볼에 뽀뽀까지 하시네. 뭐..할배 눈에 내가 웃기고 귀여워서(?) 그러시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란다.
죠지아 사람들 인사가 양 볼에 '쪽'하고 키스하는 것이니.
그래도 쇼따할배요, 고마 오늘 계탄줄이나 아소..
그렇게 한바탕 웃다 보니 배 아프고 손가락 끝까지 아리던 것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그저 푹 쉴 수밖에 없으니 내일을 기약하며 자는 게 상책이다.
자기 전에 제니랑 한 말..
우리 이제 할배들만 꼬이나 봐요.. 아아, 서글퍼라~~
이스탄불에선 젊은 넘들한테 희롱당해서 몹시 불쾌했는데 죠지아는 장수국가라 그런지 할배들만 많구나
할배들도 남자인 거. 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