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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셋증후군 May 15. 2023

2. 수평조직을 꿈꾸는 ‘너’

제1장 퇴사사유: ‘너’는 누구인가

수평조직을 꿈꾸는 ‘너’ 

그렇게 수평조직하자고 난리다. 

우리 같은 조직은 수평조직을 해야 한단다. 

음? 우리 같은 조직이 어떤 조직인데? 정체성도 없고 공감대도 없다. 


무엇보다 '너'의 수평조직에 대한 생각이 너무 귀엽다. 


1. 영어이름 쓰기 

2. 직급 없애기 


이렇게 하면 수평조직이 된단다. 인사팀까지 동원해서 계획했다. 본인이 과거에 다녔던 회사에서 영어이름 쓰고 직급 없앤 다음 수평조직으로 바뀐 경험이 있단다. 그래, 그는 뭐든 다 해봤던 사람이다. 해봐서 다 안다. 


이전에 다녔던 회사도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직급을 없애고 수평조직을 해본 적이 있다.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수평조직은 안됐다. 직급을 없애고 '매니저'로 일괄 적용했지만 서로서로 다 아는 마당에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아랫사람에게는 '매니저', 윗사람에게는 '매니저님'을 사용하며 위아래를 나눴다. 몇년 뒤에는 승진하는 기쁨을 누리게 해준다고 다시 모든 직급을 부활시켰다. 


흥미로운 사실은 수평조직을 그렇게 외쳐대는 사람이 어떤 사안이나 이슈에 대해 본인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아랫사람을 상당히 못마땅해한다는 점이다. 항상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생각이 모자라는 냥' 가르치려고 든다. 그리고 나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바를 방해 못하도록 조치한다. 다른 업무를 주거나 미팅에서 배제하거나 본인이 힘이 있을 때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기도 한다. 


나도 주간업무 시간에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소리를 들었다. 본인을 패싱하고 본인 윗사람과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결국 일이 잘됐다. 그랬더니 슬그머니 숟가락을 올린다. 이게 참 항상 그렇다. 


나는 그가 멍청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견 어리석다. 

그가 그토록 하고 싶은 수평조직은 몇 개 단서가 붙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나 빼고) 수평조직을 해야 한다. 

(팀장 쉽게 팀원으로 강등 시켜버릴 수 있도록) 수평조직을 해야 한다. 

(내 마음대로 일 시킬 수 있게) 수평조직을 해야 한다. 

(내 라인만 챙길 수 있게) 수평조직을 해야 한다. 

(능력으로 치고 올라오는 애들 견제할 수 있게) 수평조직을 해야 한다. 

(내가 책임지지 않도록) 수평조직을 해야 한다. 


그가 이러한 속내를 수평조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돌려 치기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멍청하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사람이 그의 이런 의도를 다 꿰뚫어보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만 모른다. 그게 참으로 어리석다. 


퇴사 면담에서 그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그 중에 하나가 회의 시간에 나에게 ‘낮술 먹었냐’고 했던 일이다. 그는 본인과 의견이 다르면 '낮술을 먹은 것'으로 생각하는 이 시대 진정한 수평조직 주창자이다. 그는 내게 그게 뭐가 문제냐고 했다. 성스러운 회의 시간에 내가 헛소리하길래 본인이 그렇게 말한 거라 했다. 그래서 한마디 해줬다. 


“의견이 다를 때, 내가 당신에게 똑같이 ‘낮술 먹었냐’고 할 수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너에게 똑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면 문제가 아니다.  

이때부터는 조직의 위아래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로 넘어간다. 

인격이 모자라는 것은 수평조직, 수직조직과는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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