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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셋증후군 May 23. 2023

16. 퇴사 후 내 욕하는 ‘너’

제1장 퇴사사유: ‘너’는 누구인가

퇴사 후 내 욕하는 ‘너’ 


그래, 주위에서 그에게 내 퇴사 이유를 물어보면 난감할 것 같긴 하다. 


그는 ‘제가 리더십이 부족해서 그렇죠’라고 했다가 곧이어 뭔가 억울했는지 ‘그런데 원래 한 회사 오래 못 다니는 것 같더라고요’ 라고 했단다. 또 다른 그는 퇴사의 당위성을 역설하기 위해 열심히 내 험담을 하고 다닌다고 한다. 보통 퇴사사유를 제공하는 ‘너’ 빼고는 대부분 친하게 지내는 터라 그들의 그런 말과 행동은 실시간으로 내게 들어온다. 


여러 회사를 다니고 퇴사하면서, 결국 퇴사한 사람보다는 남은 사람의 의견이 옳다고 믿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이제 같은 조직이 아닌 사람을 철저하게 부정해야 남은 사람들이 옳기 때문이다. 어떤 회사에서는 퇴사자에 대한 험담 패턴이 너무 똑같아서 ‘이미지를 더럽히는 역할을 하는 팀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했었다. 


즐겨 사용하는 퇴사 이유로 ‘횡령’, ‘배임’, ‘불륜’, ‘성희롱’, ‘폭행’, ‘역량미달’ 등이 있다. 소문은 진위 여부를 모른 채 흘러나가 확산된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적어도 바이럴 영역에서는 나보다 훨씬 더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나마 앞서 말한 것처럼 ‘습관성 이직병’을 앓고 있는 사람쯤으로 매도 당했으니 양호한 것 같다. 최근에는 직접 듣지 못했지만 회사에 대해 비판적이고 회사의 비전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말을 본인 윗사람에게 한 것 같은데, 일부 사실이니 이것도 양호한 것 같다. 다만 그것은 현상이고 원인은 본인인데 본인에 대한 얘기는 당연히 빼고 했겠지? 


퇴사 후에 말이 많을 것 같은 그와는 아름답게 헤어지기 위해 퇴사면담 페이퍼를 작성했다. 모든 이유를 다 적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분량이 꽤 돼 A4, 11포인트로 5장이었다. 그 중에 원활한 면담을 위해 1,2페이지만 프린트해서 가지고 갔다. 그 정도만 해도 이미 우리가 헤어질 이유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퇴사 면담에서 페이퍼를 읽으라고 했다. 꽤나 화를 참는 것 같았지만 면담은 순조로웠다. 그런데 그 이후가 좋지가 않다. 뭔가 주위에 내 험담을 하며 작업을 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 것이다. 정말 어느 조직이나 일어나는 일들이 참 비슷하다. 


내가 글로 써서 면담을 진행한 이유는 파일이 존재함을 알려준 것이다. 물론 두 페이지 이상 있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정도 내용이 담긴 파일이 존재하는 것을 알면 주의할 법한데 역시 뭘 모르고 살거나, 뭔가 부족하거나, 상당히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다. 이렇게 문서화한 것도 경험에서 비롯됐다. 이전 직장에서 퇴사할 때 이러저러한 내용을 구두상으로 협의했더니 지켜지지가 않았다. 


세상 참 각박하다. 


이 문서는 고이 간직하고 있다. 공개는 아마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를 벌 주자고 내 친구들이 다니는 회사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아쉽다. 이 문서는 퇴사 전에 회사에서 조직을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기제만 있었다면 이미 공유되어 더 좋은 회사가 되는데 밑거름이 됐을 만한 내용이다. 이 문서는 또한 개인적으로 훗날 그와의 일을 떠올릴 때, 어설프게 좋은 추억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니 자제해서 막장으로는 가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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