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자기소개서(2) 업무중심으로 기술
맨날 죄송한 사람들
블라인드에서 화제가 됐던 한 홍보인의 글이다.
<하루 종일 죄송한 홍보인>
나는 오늘 10번 죄송했다.
걸려 온 기자 전화 못 받아서 ‘죄송합니다’로 전화 시작 했고
요청 온 자료 제공이 늦어서 ‘죄송합니다’로 이메일 시작 했고
바쁘신데 전화해서 ‘죄송합니다’로 인사했고
기사에 난 수치가 살짝 다른 거 같은데 수정 가능하냐며 ‘죄송하다’고 문의했고
‘가판에 왜 경쟁사 내용이 더 많냐’는 임원의 물음에 ‘죄송합니다 알아보겠습니다’로 답했고
이런 거 부탁해서 '죄송한데' 혹시 우리 회사 내용 더 넣어 주실 수 있냐고 문의했고
지금 수정이 힘들다는 답변에 늦은 시간 귀찮게 해서 '죄송하다'고 사죄했고
이런 거 여쭤봐서 '죄송하지만' 혹시라도 제가 뭐 섭섭하게 한 거 있냐고 카톡했고
그런 거 없다는 답변에 제가 괜한 질문 드렸다며 또 '죄송했고'
임원에게 '수정이 불가하답니다 죄송합니다' 보고했다.
난 죄송하려고 태어난 사람인가?
부끄러운 아빠라는 생각에 아들한테도 죄송하다.
하루 종일 죄송했던 오늘...
한 구절에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우리는 한 때 스스로 뒤집기만 해도 칭찬받던 존재였다.
이 일을 하면서 나도 입에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산 적이 있었다. 죄송하다는 말은 자존감을 심하게 갉아먹는다. 자존감이 바닥을 찍을 때면 별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심지어 학생 때 친구들 때리고 괴롭힌 벌을 하늘에서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는 나 같이 까칠한 애들이 괜히 갑질하면 사회문제가 될까봐 하느님이 매일 죄송한 홍보일을 하게 만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전생에 살인 다섯 명하면 다음 생에 홍보인으로 태어난다는 말도 있었다. 하루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바닥난 자존감을 달래기 위해 밤마다 술을 마셨다.
그렇게 죄송한 주니어 홍보인의 삶이 지나고, 광고업무를 맡았다. 누구나 적성에 맞는 업무라는 광고주. 대행사와 매체사의 과도한 챙김 덕에 자존심 회복을 넘어 일에 대한 낭만까지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실제로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은 시간이 아니다. 내 결과물이나 내 능력과는 다르게 항상 접대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달콤했던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정신차려보니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정신차리고 뛰쳐나왔다. 사실 나가라는 사람도 없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당분간 더 있을 수 있었던 자리였다. 그냥 스스로 보기에 내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그때 그 답답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 이전에 무너졌던 내 모습을 끌어올리는데 필요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