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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 May 17. 2022

준우야, 미안해

보이지 않는 아이

준우를 처음 만난 건 입학식 날이었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첫째를 불러 세워,

"너 나랑 같은 반이잖아. 나 여기 살아!"

"그래? 넌 이름이 뭐니?"

"준우예요. 아줌마 안녕히 가세요~"

하고 해맑게 자기소개를 하던 씩씩한 아이였다.-그때나 지금이나 타인에게 큰 관심이 관심이 없는 지니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지만-


생각해보면 아이는 첫날부터 혼자였다. 1학년 학부모들이 아이를 기다린다며 교문 앞에 바글거리는 동안에도 준우는 그 사이를 비집고 혼자 나갔다. 학교 앞 사거리 신호등에서 마주칠 때면, 작은 키의 반절이나 되는 가방을 메고 학원을 간다며 혼자 쪼르르 내달려 사라졌다. 같은 동에 살기에 오가며 형과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이는 어른 없이 학원을 가거나 놀이터에서 노는 모양이었다. 같이 살고 계신다는 할머니와 동행하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혼자 다니는 아이에게는 항상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 엄마들의 입에 준우가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준우가 시은이 집에 자주 따라간대요."

"시은이가 학원을 가도 그 집에 남아있다던데?"

"시은이 엄마가 안된다고 하니까 이번에는 지훈이네 집에 가고 싶다고 했대요."

"저번에는 슈퍼에 따라 들어와서 뭘 사달라고 하던데요?"

"어머...."

그 집 삼 남매는 맞벌이 부모님을 대신해 이곳의 조부모님께 맡겨진 거였고, 간다던 '학원'은 사실 '지역아동센터'라는 게 드러났다. 그런데 왜 할머니도 보이지 않을까? 센터에 바로 가지 않고 놀이터나 친구 집을 배회할까? 정보는 있으나 속사정은 누구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주 놀러 가던 시은이네 집도 시은이 엄마의 출근으로 포기하는 듯했다. 하지만 습관이 되어버린 듯, 또 같이 집에 갔다는 말에 시은이 엄마는 기함을 토했다. 그 뒤 시은이는 아예 하교시간을 늦춰버렸고, 준우는 다른 친구를 따라 내려오며 "오늘 너희 집에 가면 안 돼?"하고 묻곤 했다. 아이의 핸드폰도 없고, 준우 엄마의 연락처도 아무도 모르는 상황. 준우는 점점 거북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화 속에는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갔다.


일주일 전쯤 얌전히 집으로 들어가는 준우를 보며 마음이 안쓰러웠다. '내가 공부라도 봐주겠다고 할까? 그러다 시은이네처럼 계속 오면 어떡하지?' 옴짝달싹이는 입술을 붙이고 그냥 보낸 후, 잘 지내겠거니 했는데...

"어머 진짜요?"

"시은이네 또 갔다가 시은이 아버지가 보고 노발대발하셨나 봐요. 엄청 혼났대요."

결국에는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딸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남자인 친구까지 있으니 뜨악하셨겠지. 시은이 아빠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준우는 어떨지 마음이 쓰인다. 


나는 착한 어른인 줄 알았는데 결국 이렇게 이기적일 수밖에 없나 보다. 아이의 작은 어깨에 선뜻 뻗어주지 못한 손길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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