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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Apr 06. 2022

조울증은 마음의 병이 아니다

#5 정신질환의 이해를 넘어서게 한 이들과의 조우(2) by 믹서

(앞에 글을 읽고 오시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인터뷰와 이미지 촬영 일정을 잡는 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고직한 선교사 부부, 조울증 당사자 조우와 그레이, 그들의 두 아내까지 총 6명의 인터뷰를 해야 했다. 그들의 삶을 담기 위해서는 3일 정도가 필요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이 모든 것을 하루 만에 해야 했다. 무척 빡빡한 일정이 될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세 가정이 모두 한 동네에 살아서 동선은 짧았다. 그래도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인터뷰를 여유 있게 해야 해서, 과연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 불안했다. 영상 찍을 시간을 부족했지만, 사전 미팅을 철저히 했으니 영상이 잘 담기리라 믿고 촬영에 임했다.

조우 부부는 심각할 때도, 좋을 때도 있는 평범한 부부였다.

먼저 조우 집에서 인터뷰를 했다. 조우는 중학생 때 조울증 첫 발병부터 시작하니 긴 이야기가 될 터였다. 질문은 남편 Y가 했다. 인터뷰라기보다는 편안하게 대화한다고 생각하자고 하니, 차분하게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민감한 이야기기도 재치 있게 풀어 가며 대화를 나눴다. 공감하며 인터뷰를 하다 보니, 시간은 벌써 1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조우 아내 역시 진솔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학창 시절에 교내 방송반 아나운서 경험부터 지금 유튜브를 진행하는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굉장히 밝은 사람이고, 이야기에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두 명 인터뷰와 이미지 촬영을 진행했는데, 3시간이나 흘렀다. 다음 촬영을 위해 이들과 서둘러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래도 3시간 만에 우리는 친한 친구가 된 느낌이 들었다.  


괴로웠을 엄마의 마음


시간이 약간 지체됐지만, 촬영 장소를 이동해 그레이의 집으로 갔다. 도착해서 바로 고직한 선교사 부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후에 다른 일정이 있어 서둘러 촬영했다. 다행히 워낙 말씀을 잘해서, 생각보다 금세 마칠 수 있었다. 고 선교사 아내는 사전 미팅을 하지 않아 좀 긴장을 했었는데, 이야기를 막상 시작하니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담담하게 잘 이야기하다, 마지막 질문에서 답하지 못했다. 아니, 순간 멈췄다는 표현이 옳겠다. 마지막 질문은 이랬다.


“두 아들 모두 조울증으로 긴 세월을 보내셨는데, 어떻게 견디셨어요?”


어찌 보면 간단히 답할 문제처럼 들린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약간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정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기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자식의 조울증을 함께 겪어낸 엄마는 무너진 일상을 회복하려 많이 노력했다. 또한 일해야 하는 여성으로 살아온 인생 여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교회 사역으로 바쁜 남편과 아픈 두 아들 사이에서 많이 외로운 시간을 보냈겠구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두 아들의 조울증. 엄마는 무척 무거웠던 과거를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그레이 부부 인터뷰를 했다. 사실 그레이는 형인 조우보다 조울증이 덜 호전되어서 인터뷰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의 경험을 잘 이야기해 주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있다. 정신병원에 13번 입원한 경력(?)이 있는 그레이는 다른 조울증 환자는 본인만큼 고통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몇 가지를 당부했다. ‘병원에서 주는 약을 잘 먹는 건 너무 중요하다’, ‘제때 병원에 입원해야 빨리 회복할 수 있다’, ‘그래야 저처럼 13번 입원할 거, 7번 정도 할 수 있다’ 등의 이야기에 인터뷰하는 우리와 가족들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레이의 아내 역시 특유의 명랑함으로 연애담을 털어놓았다. 그레이 부부는 특히 눈에 꿀이 떨어질 정도로 서로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 보였다. 겹사돈이란 걸 알고 마음을 접으려고도 했지만, 결국 결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인연이었다고 했다. 그레이가 병원에 자주 입원하면서 너무 힘들었지만, 자신의 짝이어서 그런지 사랑의 마음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을 때 사랑의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에필로그: 질환은 ‘자세히’ 알아야 한다


다큐 <사이코 가족이지만 괜찮아>를 제작한 지 1년 6개월이 흘렀다. 영상을 다시 보면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가족 여섯 분의 말투와 표정까지 섬세하게 기억난다. 병세가 심했을 때, 그 고통의 시간을 함께 지낸 이야기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고 소통하는 유튜브 채널 <조우네 마음약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전문가 인터뷰이로서 도움을 주신 전우택 교수의 말이 딱 맞다. 조울증은 여느 병과 마찬가지로 조기 발견과 치료가 중요한 ‘뇌의 질환’이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는데, 정신 질환을 잘 아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우리 선입견으로 병원에서 치료 가능한 시기를 주로 그냥 지나친다. 관련 약이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는데, 아직도 정신 질환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다.


자칫하면 병에 대한 무지가 환자에게  아픔으로 남을 뿐이다. 우리 남편이 우울증으로 고생할 , 내가  병을  몰라서 그런 실수를 했다. 지금도 나는 우울증이 어떤 병인지 대략적으로만 안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우울증도 그러할 진대 조울증은 오죽할까. 흔히 마음병이라 부르는 명칭은 분명 잘못되었다.  병을 오해할  있으니, 종교라는 이름으로 정죄하는 잘못을 저지를  있다.


조우와 그레이는 부모와 배우자의 사랑, 적절한 치료로 인해 병이 많이 호전했다. 이 가족의 이야기가 한 가정의 좋은 케이스로만 남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 교회 등 모든 분야에서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육체의 질병처럼, 정신질환도 누구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레이 부부도 무언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일을 하고 있었다.

조우 아내는 “신학교에서 정신 질환을 필수로 가르쳐야 한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 정신 질환자가 가족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매우 위험하다. 종교가 정신질환자를 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정신질환자를 '귀신 들린 자', '기도가 부족해서 병든 자'라는 식으로 배제한다면 그들은 갈 곳이 없다. 종교 이야기를 했지만, 사회 인식의 변화도 중요하다. 마음의 병이라는 표현을 뇌의 병이라는 표현으로 이제 바꿀 필요가 있다.  


다큐 제작자라는 특권 덕에, 이분들의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조우네 가족을 만나고 나도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조금 이상해 보인다는 이유로 어떤 사람을 소외시킨 적은 없었는지,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이 있진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 남편부터 소외시킨 적은 없었는지 돌아봐야겠다.


그렇게 완성된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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