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유히유영 Jun 05. 2022

우린 아이가 없는 삶을 선택한 건가?

비출산 결심 스토리 (3) by 에디터 E.ge

부모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자녀다. 그리고 아이는 세상에서 부모를 가장 신뢰한다. 그렇지 못한 관계도 있겠지만, 세상이 그리는 모범적인 모습이 이렇다는 말이다.


아내는 그런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가끔 옛날 일기를 볼 때 기억과 상충되는 어두운 이야기가 쓰여 있으면 당황하지만, 그래도 그때를 아련하게 기억하려 애쓴다. 어떤 순간에도 부모가 자신을 소중히 여겼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부모와의 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같아. 어떨 때는 너무 좋고, 어떨 때는 너무 싫어. 그런데 그 안에는 이 세상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 있잖아. 아무리 엄마가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엄마에게 아픈 말을 해도 금세 사라져 버려.”


워싱턴 D.C. 에서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아내.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 받고 자란 자녀도 부모에게 애증을 느낀다. 사랑을 더 많이 느끼면 사이가 좋고, 증오를 더 많이 느끼면 서로 안 보는 사이가 된다. 물론, 이 감정 외에도 세속적 가치가 섞여 있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만이 계속 사랑을 받는다.


어쩌면 자녀를 낳아 기르는 30-40대 대다수도 자신의 아이에게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예를 들어, 자녀에게 좋은 성적을 기대하거나 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자녀가 성장하면 할수록 그 감정은 커진다. 이런 일은 자녀를 갖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와도 닿아 있다.그런데 이유는 몰라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자녀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그런 고민이 있다. 아내에게 물었다.


나: 자녀가 주는 기쁨, 우리는 그걸 못 누리겠지?


아내: 그렇지. 그래서 가끔 복잡한 감정이 들어. 부모가 내게 사랑을 쏟아서 지금의 관계가 만들어졌잖아. 물론 나도 그 사랑에 부응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던 기억이 나. 성적을 잘 받아 오면 엄마 아빠가 기뻐했고, 그게 좋아서 더 열심히 했던 것도 있어.

엄마 아빠도 포기한 부분도 있었을 거야. 그게 예전 시대에서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잖아. 아빠는 돈을 벌고, 엄마는 살림하고 육아를 하며 자녀에게 물려줄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살았어. 과연 나는 어떨까. 자녀를 위해 나의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난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까지 아이를 키우고 싶진 않았어.


나: 그럼, 너는 어떤 생각을 한다고 볼 수 있을까?


아내: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살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사회에서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내 성향을 봤을 때, 아이가 있으면 내 모든 것을 쏟을 텐데, 그럼 나는 많이 없어지잖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는 사회가 많이 도와줘야 하는데, 아직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잖아.


나: 그건 그렇지. 하지만 나를 위해 아이를 안 낳는 문제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아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남자는 변할 게 없어. 그런데 여성은 매우 많은 변화를 경험해. 출산으로 육체적인 타격을 입고, 대다수 여성이 경력 단절을 경험하지. 나만 경력 단절을 피해 가리라 생각하지 않아. 나도 똑같이 사회생활하는 여성이니, 당연하게 닥칠 파도라고 생각해.


나: 아이를 낳고, 시댁이나 친정에 맡겨두기도 하잖아.


아내: 내가 일한다고 양가 부모님에게 애를 맡기고 일하러 나가고 싶짐 않았어. 그럴 수 있는 환경도 아니고. 지금 내 동생 부부가 아이 키우는 모습만 봐도 알지. 동생 양가에서 아이를 봐줄 수 없는 상황이니, 올케가 육아의 모든 짐을 져야 하잖아. 올케도 꿈이 있고, 목표가 있을 텐데.

조카 1호를 안고 있는 처가 부모님.

나: 그렇지. 그럼 우린 아이가 없는 삶을 선택한 건가?


아내: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아이가 있을 때의 행복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반면에 우리가 새롭게 누리는 것들이 있잖아. 무엇보다 내가 여성으로 직장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무척 크지.


나: 그래도 여전히 아이 낳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지?


아내: 당연히 있지. 우리 엄마처럼 “아기 낳고도 다 잘하더라”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아. 그런데 내 주변에는 그렇게 잘하고 있는 사람이 없어. 전부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단 말이지. 그렇기에 난 세상의 모든 부모들을 다 존경해. 굉장히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고. 나는 자신이 없었어.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했을 때 포기해야 하는 기쁨이 있지만, 그렇기에 누릴 수 있는 인생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지금까지 온 것 같아.


고모, 동생 낳아주시면 안 돼요?


아내는 ‘일’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가끔 일을 크게 벌여서 뒷감당을 걱정하지만, 과중한 업무를 한편으론 사랑했다. 결과는 다행히 언제나 좋았다. 그리고 뿌듯해한다. 성과를 자신의 훈장으로 여기며, 칭찬받기 위해 가족에게 자랑한다.


하여튼 그런 아내를 당황하게 하는 존재가 있다. 조카 1호다. 가끔 조카가 생각하지 못한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동생을 왜 낳지 않느냐’ 물어올 때면, 어찌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는 아내를 볼 수 있다. 그런 조카를 떠올리며, 다시 아내에게 물었다.


나: 조카 1호가 ‘우리가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를 물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어? 지난번에는 고모에게 동생을 낳아달라고 부탁했잖아?


아내: 그 질문을 받았을 때 굉장히 당황하긴 했어. 순수한 마음으로 질문해서, 더욱 대답하기 힘들었나 봐. 동생을 가지고 싶은 조카 1호의 마음에, 내 신념을 포기하고 출산해야 하나 순간 흔들리기도 했어. 내가 아이를 낳지 않아 미안한 감정이 들 정도로.

이 질문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어. 당장이라도 동생을 낳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하는가. 왜 안 된다고 했는가.

조카 1호가 비슷한 얘기를 몇 달 전에도 한 적이 있어. “고모는 결혼했는데 왜 아기가 없어요?”라고 질문했는데, 답을 제대로 못하겠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근데 고모한테 사정이 있어”라고 답했어. 그런데 조카가 이렇게 말했어.


근데 고모가 만약 아기가 있었으면, 지금처럼 나를 이렇게 사랑하지 않았겠죠?


아내: 고모는 자기 자식을 사랑하고, 자기 엄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개념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 ‘고모는 아이가 없으니까 나에게 사랑을 쏟지만, 동생이 생기면 자기에게 올 사랑을 뺏긴다’고 생각했다는 거잖아.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점에서 좀 숙연해졌어. 부모와의 사랑이 본능적인 거라면, 나는 평생 그런 관계를 누리지는 못하겠구나 싶어서.

내가 조카 1호의 질문에 이렇게 일렁이는 마음이 됐고, 나도 그런 나에게 한 번 더 놀랐어. 사실 이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생각하겠지. 오빠는 어때? 어린 시절의 기억을 중요한 일로 기억하는 것 같은데.


나: 그러게. 내가 혼자 있었던 어린 시절 기억 때문에, 아이를 안 낳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어머니는 집안일도 해야 하고 애도 봐야 하는데, 사업이라는 짐도 지고 살았다고 생각해.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자기 일을 하는 여성에게 아이는 정말 무겁겠다’고 느낀 것 같아.

조카 3호를 업고 있는 어머니.

아내: 오빠가 아이를 가지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이 엄마를 생각해서야, 아니면 엄마의 충분한 보호 감독 아래 자라지 못한 오빠 때문이야?


나: 원래는 어머니가 되게 크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얘기하면서 내 어린 시절에 충분히 돌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기인할 수 있겠다 싶네. 어린 시절 기억들이 내게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물론 의식적으로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지. 오늘 얘기하면서 정리가 된 것 같아.


아내: 그렇구나. 오빠 마음이 그렇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어. 그럼 오빠는 아이를 가졌으면 하고 바라?


나: 그건 아니야. 나는 너의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네가 아이를 갖겠다고 지금이라도 우기면, 내가 생각을 바꾸기 위한 시간을 가져볼 수도 있겠지. ‘내 어린 시절을 보상받기 위해서 아이를 낳을 순 없다’가 지금 내 결론이긴 하지만, 네 생각에 아이를 가져야 한다면...... 어려운 문제긴 하네.


아내: 우리가 여기서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긴 하지. 하지만 확실한 것은 어떤 선택이든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나: 맞아. 아이를 가지든, 아니든 본인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그 문장에 밑줄 그어야 할 분위기네.(끝)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 = 아이’ 공식이 깨져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