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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Jul 15. 2022

탐욕스럽지 않게 시간을 보내는 법

무관심한 주제에 관심을 두며?

“오빠는 정말 하루를 이렇게 놀면서 지낼 거야?”
“내가 놀면서 지내?"
“내 눈에는 그렇게밖에 안 보여. 결과가 안 나오잖아.”
“헐……”


아내의 불안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나온 말에 놀랐다. 나는 무척 고민하며 하루를 보낸다 생각했는데, 아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결국 아내와 다투고, 밖으로 일하러 나갔다. 카페에 앉아 아내와 다툰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시간을 쓸 때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달라 생긴 결과였다.


나와 아내는 무척 다르다. 과거 우리가 연애할 때는 말이 통해 비슷하게 여겼다. 그러나 결혼해 보니, 대척점에 선 부분이 많았다. 우리가 다른 건,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가 자란 환경이 같지 않으니 말이다. 어떤 부분이 달랐을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아내는 이 명제를 늘 쥐고 살았다. 어린 시절에는 공부에 온 힘을 쏟았다. 당연하게 반에서는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석차는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었다. 부모에게 학원 보내달라는 말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12년을 지내고, 대학에서는 사법고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학원을 안 다니면서, 자기 혼자 시험을 준비하는 자세는 그때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고시 준비는 쉽지 않았다. 


4년 만에 고시를 접고, 방송국에 들어간 뒤에도 아내는 이 명제를 마음에 품고 살았다. 약 8개월 동안, 돈을 받지 않고 일하는 기간에도 아내는 최선을 다했다. 편집을 배울 상황이 안 돼서, 자기가 배워야 할 일을 알아서 했다. 이때도 편집을 가르쳐주는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아내 의지로 스스로 익혔다. 제대로 입사한 뒤, PD가 되기 위해 모든 상황을 놓치지 않고 배우려 했다. 그 결과 아내는 방송국에서 손에 꼽히는 편집을 잘하는 제작자가 되었다. 

우리가 서로 비슷하다 여기던 신혼여행 기간.

그에 비해, 나는 어리석게 살았다. 공부는 초등학생 때부터 못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한글을 몰랐다. 학교가 다 끝나고 남아서 공부해야 하는 나머지 교실에서 한글을 따로 배웠다. 그런 생활을 중학생 무렵에도 이어졌다. 당시 한 반에 55명 정도 있었는데, 매번 뒤에서 놀았다. 그 결과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하면 어떻겠냐’는 진학 지도를 받았다. 부모님 반대로 일반고에 진학했지만, 그렇게 12년을 스스로 멍청하다고 여기며 지내야 했다. 


이 기간 나는 방황하며, 시간 낭비도 많이 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이런 시간 낭비는 멈추지 않았다. 바람 불면 바람이 불어 어딘가로 떠났고, 어느 날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떠날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장소로 가기도 했다. 군에 가기 전까지 방황은 이어졌다. 물론 군대도 최대한 미뤄서 갔다. 스스로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면, 이 시기 책을 많이 읽었다. 당연히 전공 서적이 아니라 관심 있는 분야의 책만 사서 읽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33년이 지나서 아내를 만났다. 그때까지 살면서 단 1시간도 허투루 살지 않은 아내가 결혼 상대로 나를 선택했다. 어쩌다 아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내는 나를 사랑했다. 이런 두 사람이 지금 같이 사니 얼마나 불꽃 튀기며 살겠는가.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아내와 그 반대 지점에 있는 내가 자주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내가 시간을 ‘유영’처럼 사용하고 싶다고?


그렇게 살다, 결혼 8년 정도 만에 우리는 창업했다. 그런데 아내가 회사 이름을 ‘유유히유영’이라고 지었다. ‘유유히유영’은 유유히 살아가는 ‘유영’(내 본명)이라는 의미다. 아내는 “내가 사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고 하는데 잘 믿기지 않는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두고 참 많이 싸웠으니,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아내가 유유히 지내는 내 모습을 부러워하고 있었다니? 나에게는 믿을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창업 후 3년 정도 지난 지금도 아내는 최선을 다해 시간을 보낸다. 우리에게 일이 없는 기간에도 불안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게 영상 편집이고, 우리에게 돈이 되는 일이면 더욱 좋아한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내가 ‘유유히’ 사는 모습을 보인 나를 부러워했는지 의심이 들지만, 당시 아내는 지쳐 있던 건 분명하다. 나처럼 살고 싶다기보다는 시간에 여유를 가지고 싶어 했던 건 분명하다.  

엘리트인 아내는 내 삶이 부러웠다고 한다.

우리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한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공부 잘하거나, 외국어도 특출하게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다.(우리 아내가 그렇다.) 이런 사람은, 어린 시절 성실한 학생으로 지냈고, 자라서는 잘 나가는 사람으로 보이니 어쩔 수 없다. 거기다 유튜브에서 효율적인 삶을 보여주는 사람이 인기다. 어디를 가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러나 반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시간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은 내가 더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집념에 의해 악순환된다. 생산성이 삶에서 진정 의미 있는 것을 우선순위 저 멀리 밀어내는 좋은 핑계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각종 업무를 처리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일을 하나씩 처리할 때마다 삶에서 진정 의미 있는 것에 한 발자국 다가가고 있다고 스스로 위반한다. 그러는 한편 기대치에 부합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세상의 속도를 따라갈 만한 원동력이 나에겐 부족하지 않은지 걱정한다. (책 <4000주> 중에서)


어쩌면 생산성에 노예가 된 세상에 우리를 맞추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살 필요가 있다. 시간을 탐욕스럽게 사용하면서, 효율적으로 쓰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탓이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허투루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에 갇혀 있다. 가끔 이 마법을 풀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생긴다. 그들은 이 세상의 이상함을 발견한다. 그리고 별종으로 불리지만, 세상에 걸린 어떤 주문을 풀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친 주제를 향하여


‘시간을 탐욕스럽게 사용하지 않으면서, 잘 사용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나의 고민이었다. 지금은 아내의 고민이기도 하다. 아내는 최근까지 이 질문을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지배하던 메시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묻는 사람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이전 세상으로 돌아가기도 하니 어쩔 수 없다. 이 정도도 변신도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요즘도 선문답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무심하게 지나간 이슈를 천천히 알아가면, 무언가 답이 보일지도 몰라.”


아내처럼 머리가 복잡한 사람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 말인지 알지만, 이게 가끔 쓸모가 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이런 문제를 그냥 넘긴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만, 세상 사람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주제는 이미 사회 문제이지만,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 그럼, 이 세상에 진짜 중요한 일은 그냥 지나칠지 모른다. 


우선 우리가 내린 답은 비출산이었다. 한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일지 몰라도, 사회 문제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문제다. 사회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방향은 과연 비출산하는 부부에게 영향이 없을까 이 점을 한번 짚어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아이 없는 일이 이처럼 주변 사람에게 많은 소리를 들으리라는 사실은 정말 몰랐다. 그래서 우리 이야기를 좀 대화로 풀 장소를 찾았다. 

그래서 [묻다]를 시작했다.
아내가 친구와 대화하는 [묻다]의 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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