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신과 광신이 뒤섞여 좀비 아포칼립스가 된 것 같다
꽤 오래전 일이다. 지하철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 어느 아주머니가 한쪽 손에는 커다란 가방을, 다른 한쪽 손에는 전단지를 들고 내 앞으로 오셨다. 아주머니는 전단지를 내밀며 무슨 말씀을 하셨고 나는 귀에 꽂았던 이어폰을 빼면서 "네?"라며 되물었다. "교회 나오시라고요" 보통 같았으면 받지 않고 지나갔을 테지만 플랫폼에는 나 혼자 덜렁이었다. "저 교회 다녀요"라고 말하면서도 전단지 내민 손이 머쓱하지 않게 그냥 받아버렸다. 가만히 보니 일반적인 기독교가 아니라 '사이비 종교'였다. 당시 나는 감리교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전단지를 준 아주머니에게 대놓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이 종교를 왜 믿으시는 거예요" 시비 걸 생각도 아니었고 시비 걸 이유도 없었던, 그저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대체 왜 사이비에 빠지는지 조금 더 묻고 싶긴 했다. 아주머니도 예전에는 교회를 다니셨는데 여기로 오면 진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둥 딱히 신뢰가 가지 않는 이야기를 하셨다. 말 그대로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했다. 그 전단지는 아주머니가 자리를 떠난 후 휴지통에 구겨져 버려졌다.
지금도 사이비는 넘쳐난다. 그뿐이랴? 사이비가 퍼뜨린 가짜뉴스를 열심히 퍼나르는 사람들도 넘쳐난다. 요새는 아무렇지 않게 가짜뉴스를 만들어낸다. 사이비고 언론이고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그저 눈 막고 귀 막은 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을 아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하나둘씩 모여 한 무리가 되었는데 생각보다 똘똘 뭉쳐있는 느낌이기도 하지만 딱히 실속은 없어 보여 '속 빈 강정' 같다. 이미 잘 알려진 가수나 배우들도 이 안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언론 역시 한쪽 눈을 가린 채 반쪽만 이야기 하기도 한다. 팩트체크는 온데간데 없고 진실은 조금씩 왜곡된다. 급기야 사실과 다르게 변질되어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진실은 단순한 거지. 사람들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근데 난 저들이 말한 그대로 믿어"
그들의 초점은 흐리멍덩한 듯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저 먼 곳만 응시하고 있는 좀비 같은 모습이란 말이다. 물렁물렁하면 어느 순간 음모론이 넘쳐나는 세계에 끌려갈지도 모른다. 누가 들어도 황당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근거 없는 믿음과 무지한 용기가 하늘을 찌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를 해보자. '더닝크루거 효과'라는 말이 있다. 코넬대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이 제자였던 저스틴 크루거와 함께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실제로는 여러모로 부족한 초보자인데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경우 혹은 어떤 특정 분야에서 깊게 연구하지 않은 사람이 그저 단편적 지식만으로 전문가처럼 행동하는 경우들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떤 사람이 팩트체크도 되지 않은 뉴스와 그와 연관된 유튜브 영상을 보고 나서 "나는 진실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어"라며 음모론을 맹신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정도면 설명이 될지. 미국이 달 착륙 후 성조기를 흔들었던 장면 자체가 가짜라며 음모론을 펼치기도 하는데 '가짜를 진짜처럼 포장한 가짜뉴스'를 보면서 음모론 자체를 맹신하거나 또 이를 자신 있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데이터를 통해 이를 반박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전문가도 데이터도 전혀 믿질 않는다. 알려고 하질 않으니 그저 무지할 뿐인데 그 와중에 믿음과 용기는 엄청나다. 더닝 교수와 제자 크루거의 실험을 통해 나온 결과는 "무식하면 용감하다"였고 이를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말한다.
어디선가 주워듣게 된 얕은 지식으로 또 다른 무지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구조가 어디선가 기생하며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게 됐다. 지혜롭고 겸손하며 정직한, 그리고 결단력도 있고 책임감도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해 왔다. 세상을 움직이는 정의로운 힘이 있고 그 힘을 만드는 조건도 크게 달라진 적이 없다. 하지만 때때로 맹목적인 자신감 하나만으로 보는 것만 보고 믿는 것만 믿는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는 무서운 존재들이 그 정의로운 힘을 상대하기도 한다. 빈통이 요란해 꼴통이 되어가는 중, 소통은 커녕 불통과 먹통이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혼란의 구렁텅이가 마치 정의의 세상인양 몰고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역시 무지한 용기 하나만 가지고 불길 속을 뛰어들고 있다. 가끔 이러한 맹신은 전염이 된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전염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진실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가끔 뉴스 속에서 이런 인터뷰를 보게 된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정보들을 어디서 얻으셨어요?"
"저기 저 사람들이 말하고 있잖아요. 저들이 말하고 있는 근거도 다 유튜브에 있습니다. 공부 좀 하세요"
맹신 그리고 광신이 뒤섞여 마치 좀비 아포칼립스를 보는 것 같다. 근데 그게 요즘의 세상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