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의 고유대명사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나는 남편의 첫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연애사'가 맞는 말이겠지만.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썸씽의 시작에서부터 사귀기 시작하고 왜 헤어졌으며 지금도 생각이 나는지 나는 한치의 질투 한 방울도 없이 투명하고 순수하게 그의 말을 듣는다. 그럼.... 사귀면 자는 거야? 깊고 진한 내 질문에 그는 애써 자리를 피하며 너는 정말 이상한 애라고 했다. 나는 그를 통해 사귄다는 것의 모든 의미를 알게 되었는데 그는 이미 그런 몇번의 과정을 반복했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억울한 마음이 울컥 솟는다. 아니 부러움인가.
그 사람을 통해 사랑을 배웠다. 배웠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나는 모든 것이 미숙했다. 남자친구라는 호칭이, 주말이면 왜 꼭 봐야 하는지, 걸을 때는 어떻게 손을 잡아야 하는지, 왜 나를 데려다주는지. 나는 하나하나 배우고 익히고 표현과 설명을 통해 학습했다. 나와 사귀는 1년 동안 그는 몹시 힘들어했고 매번 싸울 때마다 '이걸 말해야 아냐'라고 했다. 화내는 그가 짜증스러웠지만 그렇다고 헤어지기는 또 싫었다. 이런 내 감정이 혼란스러워 그만 때려치울까 생각하다 어느 날 문득 그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야 말았다. 이런 젠장, 이게 사랑인가. 그때 알게 됐다. 사랑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당혹스러움이란 걸.
그런데 말이야, 그럼 그때 그렇게 사랑한 그 사람과 왜 헤어진 거야? 오늘도 나는 그에게 질문을 한다. 분명 너무 좋아했지만 나중에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는 그의 말이 조금은 비겁하게 느껴진다. 뭐라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는 지금도 내가 좋아했던 사람과 헤어지지 않고 살아가는 중이기에 그 말이 이해가지 않았다. 아니, 두려웠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상투적인 이 말까지는 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랑은 변하는 어떤 것인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내 사랑은 '그'라는 고유대명사이지 보통명사가 아니다. 비교군이 없고 샘플도 없으며 절댓값이자 전체이다. 이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 사랑에 대해 한없이 아득해진다. 내 마음을 아는 누구는 나를 위로하며 말했다. 그놈이 그놈이야. 너는 처음부터 제대로 된 놈을 만나서 그래. 그런 걸까. 아니 그런 거라고 믿지 않으면 또 어쩌겠는가. 나는 첫사랑이 두렵다.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데, 왜 나는 이뤄진 걸까. 나는 진정한 승자일까, 영원한 패자일까.
그에게 나는 종착지일까. 몇 번의 정거장 중 하나였을까. 왜 그는 이번 정거장에서 내렸을까. 그는 언제나 말이 없다. 몇 번의 사랑을 해본 그라도 사랑 앞에는 언제나 조용해진다. 아직 우리는 사랑 중일까? 헤어짐을 경험한 그라서 묻고 싶었지만 결국 묻지 못했다. 사랑했던 이들이 헤어지는 경험을 나는 결코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