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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비비안마이어를 찾아서

- 롤라이플렉스

by JI SOOOP

2007년 시카고의 한 작은 경매장. 먼지 쌓인 상자 안에는 15만 개의 시간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역사학자 존 말루프가 그 상자를 열었을 때, 자신이 20세기 사진사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발견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이 빛의 유물을 추적하는 여정이자, 익명의 천재가 남긴 시선의 고백서입니다.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을 타인의 아이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진정한 자식은 롤라이플렉스 3.5T에 담긴 6×6cm 정방형 프레임이었습니다. 1950년대 뉴욕의 골목길에서 1970년대 시카고의 뒷골목까지, 그녀는 허리 높이에서 카메라를 내려다보며 세상을 관찰했습니다. TLR(Twin-Lens Reflex) 카메라의 독특한 구조가 허용한 이 각도는 피사체와의 심리적 거리를 만들었습니다. 마치 유리창 너머 세상을 들여다보듯, 그녀는 인간 군상의 리얼리즘을 포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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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mm Tessar 렌즈가 포착한 세계는 날카롭고도 부드러웠습니다. 건물 옥상에 걸터앉은 노동자의 발끝,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 공원 벤치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눈물방울. 이 모든 것들이 기계식 셔터의 조용한 딸깍 소리와 함께 필름에 새겨졌습니다. 그녀의 사진에는 셀프타이머가 없었지만, 모든 프레임에 스스로를 투영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존 말루프가 경매로 구입한 필름 상자는 타임캡슐이었습니다. 암실의 빨간 불빛 아래에서 천천히 드러나는 이미지들은 한 여자의 삶을 조각내었습니다. 1952년 1월의 눈보라 속 행인, 1968년 4월의 시위 군중, 1975년 10월의 할로윈 의상을 입은 아이들. 네거티브 필름 위에 새겨진 은염은 마치 그녀의 내면을 암호화한 듯했습니다.


추적은 디지털 시대의 고고학이 되었습니다. 도서관 신문 자료실에서 찾아낸 신문 스크랩, 옷가게 영수증의 희미한 서명, 그녀가 일했던 가정의 후손들이 전하는 단편적 기억. 한 증언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항상 목에 카메라를 메고 다녔지만, 결코 자신을 사진가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이 말은 오늘날 SNS 시대의 우리에게 묻는 질문 같습니다. 창작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요?


비비안 마이어의 자화상은 거울과 그림자의 게임입니다. 1955년 뉴욕 화장실 거울 앞에서 찍힌 한 장의 사진에서 그녀는 카메라로 얼굴을 가린 채 허공을 응시합니다. 1977년 시카고 아파트 복도에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프레임 가득 채웁니다. 이중노출처럼 겹쳐진 그녀의 모습은 관찰자이자 피사체, 유모이자 예술가의 이중성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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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MoMA 전시장에 걸린 그녀의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숨죽였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20세기 최고의 스트리트 포토그래피'라 칭한 사진들 속에는, 디지털 시대가 잃어버린 아날로그적 진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필름 한 장에 담긴 짧은 시간의 순간들이 5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오늘의 우리를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시카고 문화센터에 전시된 그녀의 롤라이플렉스는 이제 조용한 관찰자가 되었습니다. 가죽 케이스의 주름살과 렌즈의 흠집은 수십 년간의 여정을 말해줍니다. 이 카메라는 더 이상 셔터를 누르지 않지만, 그녀가 남긴 15만 개의 프레임은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존 말루프는 묻습니다. "그녀는 왼쪽 눈으로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무엇을 보았을까?" 아마도 그 답은 우리 각자의 삶 속에 있을 것입니다. 카페 유리창 너머로 스쳐가는 낯선 이의 표정, 지하철 역에서 마주친 어린이의 미소, 비 오는 날 창가에 맺힌 물방울. 비비안 마이어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카메라 사용법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법입니다.


이제 길을 걸을 때면 가끔 허리를 굽혀 봅니다. 롤라이플렉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죠. 그녀가 보았을 그 시선으로. 사진을 찍어봅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인생이 내 프레임에 새겨집니다. 보이지 않는 그녀가 내 어깨너머에서 속삭이듯. "진짜 예술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해 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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