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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곡성

21. 곡성 - 미놀타 하이맥스 S

by JI SOOOP

2016년,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은 관객들에게 깊은 충격과 질문을 남겼습니다. 전라남도 곡성군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과 기이한 질병,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외지인의 존재는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선 초자연적 공포를 선사했습니다. 이 영화는 인간의 믿음과 의심, 그리고 악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관객을 끌어들입니다. 그 중심에는 한 대의 카메라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놀타 하이매틱 S, 이 작은 카메라는 악마와 인간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상징적 역할을 합니다.


영화 속에서 외지인이 사용하는 미놀타 하이매틱 S는 1978년에 출시된 콤팩트한 35mm 필름 카메라입니다. 이 카메라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자동 노출 기능과 38mm f/2.7 렌즈를 탑재해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가벼운 무게와 조용한 셔터음은 은밀한 촬영에 적합했으며, 내장 플래시 덕분에 어두운 환경에서도 선명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 카메라는 악마의 시선을 담는 도구로 변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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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놀타 하이매틱 S는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카메라 렌즈는 현실과 초현실 사이에 놓인 경계입니다. 뷰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세상은 단순히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아니라, 그 너머에 숨겨진 진실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그 진실은 언제나 왜곡되고 불완전합니다. 마치 렌즈 속에서 겹쳐지는 이중 이미지처럼, 주인공 종구와 관객은 무엇이 진짜인지 혼란스러워합니다.


영화 중반부, 종구는 외지인의 오두막에서 충격적인 증거를 발견합니다. 벽면 가득 붙어 있는 사진들은 모두 피해자들의 초상입니다. 그 사진들은 미래의 희생자를 예고하는 듯 보입니다. 이 순간부터 미놀타 하이매틱 S는 사건의 증거를 담는 도구에서 저주의 매개체로 변합니다.


특히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외지인이 카메라를 들고 종구를 향해 플래시를 터뜨리는 순간은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섬광과 함께 렌즈 너머로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형상을 한 검은 악령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공포스러운 시각적 효과를 넘어, 기계적 시선이 포착한 초자연적 현실이라는 점에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들리는 셔터음은 마치 악마의 심장박동처럼 공포를 증폭시키며, 카메라는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닌 악의 도구로 자리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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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에서 카메라는 진실을 포착하는 동시에 그것을 왜곡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진들은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게 만듭니다. 암실에서 필름이 현상되는 과정은 영화의 중요한 은유입니다. 빨간 안전등 아래 서서히 드러나는 이미지들은 마치 숨겨진 진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진실마저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과다 노출된 프레임이나 흐릿하게 찍힌 이미지들은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조차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보여줍니다.


나홍진 감독은 인터뷰에서 "악은 인간 내면의 집단적 공포가 빚어낸 환영일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카메라가 포착한 초자연적 형상조차 의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우리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허상인지 알 수 없습니다.


렌즈 너머에 숨겨진 <곡성>은 그냥, 호러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내면에 깃든 두려움과 믿음, 그리고 악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미놀타 하이매틱 S는 이러한 질문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도구입니다. 기술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이 카메라는 진실을 포착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것이 담아내는 것은 왜곡된 현실일 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박살 난 카메라 렌즈는 종구의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기술적 기록에 의존했던 그의 신념은 산산조각 나고, 모든 것이 혼란 속으로 빠져듭니다. <곡성>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가장 위험한 악마는 렌즈 너머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셔터를 누르는 우리의 눈동자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미놀타 하이매틱 S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레트로 아이템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곡성> 속에서 이 카메라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과 진실 사이에 놓인 경계선을 상기시키며, 우리가 보는 세상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왜곡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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