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다수 숲길
[500자 연재소설 4화]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한적한 삼다수 숲길에서였다. 비가 내렸고, 우산은 없었다. 오후의 숲은 어두워지고 있었으나, 구름과 나무 사이 밝은 빛이 잠시잠깐 들어왔다 나가기도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손을 잡고 걷다가 손을 놓았다. “비가 만든 웅덩이에 화산암 가루가 묻어있어요. 흙이 마르려면 며칠의 시간이 필요하겠어요.” 불을 지피고 말려가는 공허의 시간. 우린 비에 젖은 숲을 잊지 않으려 애쓸 것이다. 걷다 보니 이 길이었지만, 곧 망각의 산책길로 사라질 것이다. 셔터를 누르면 오래도록 필름에 잠기는 것처럼, 누군가 꺼내주지 않는다면 영원히 돌돌 말린 필름 속에 갇히고 말 것이다. 돌아와, 그날에 쌌던 여행 가방을 풀어본다. 도망치지 못한 불안과 흥분이 튀어나온다. 젖은 신발 속에서 당신과 나의 얼굴이 휘몰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