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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SOOOP Nov 06. 2024

두 사람

[500자 연재소설 5화]      


주렁주렁이란 말에 매달린 무게에 햇살이 묻어 있어. 저 깊고 깊은 뿌리로부터 천천히 걸어 나와 한 계절을 만난다는 것. 슬픔이란 것도 없이 쓰라림도 없이, 꽉 찬 샛노랑을 밀어 올리려는 힘. 귤밭은 나지막해서 좋은 것 같아. 당신과의 속삭임이 언제나 가능할 것 같은 그런 곳. 그래서 자꾸 할 말을 거름처럼 쌓아 놓지. 작고 여린 열매 하나를 따서 까보면 당신과 나처럼 다른 세계가 열두 조각이나 들어있어 놀라웠지. 우린 늘 다른 세계를 향해 달렸어. 그중 한 조각은 돌처럼 단단한 화석이 될 수 있을 거야. 귤밭을 헤집고 다니면, 무성한 말들이 촘촘히 박혀 점등이 되지. 바구니에 벌써 한가득 귤이 담겼어. 지금 이 시간의 냄새가 저녁이 되지. 우리는 서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말지. 귤밭을 걷다 보면, 당신을 알아보는 풀벌레가 노래하지. 그때 위태로운 심장 하나가 툭 떨어지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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