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주 Oct 11. 2023

오늘의 귀여움

인스타그램 누군가의 계정 스토리에서 '오늘의 귀여움'이라는 문구를 봤다. 시간이 꽤 지나 누구의 계정이었는지도, 어떤 내용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이 문구만큼은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 계속 둥둥 떠있다.


코스메틱 브랜드 인하우스 마케터로 채용되며 대행사 커리어를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왠지 위축되는 나 자신과 1인 마케팅 담당자라는 중압감으로 꽤 침울했던 때 당시 지금의 인스타그램 역할을 했던 페이스북 피드에 '매일매일 긍정긍정'이라는 제목으로 짤막한 글과 사진을 며칠간 올렸던 기억이 났다. 실제로 그 포스팅을 위해 좋은 생각, 좋은 장면에 집중하고 기록하다 보니 금세 회복이 되었던 경험이 떠올랐는데, 오늘의 귀여움과 매일매일 긍정긍정이라는 두 문장 사이의 관계성은 잘 모르겠다. 아마 없는지도?


오늘의 귀여움이라는 문장을 곱씹다 보니 몇 가지 콘텐츠 클립이 생각난다.





1. 나는 행복하려고 하지 않아.

기안 84의 유튜브 채널인 <인생 84>에 출연한 개그우먼 장도연이 언급한 내용이다.

Q. 너에게 행복은 뭐야? A. 나는 행복하려고 하지 않아. 왜 행복해야 되지? 왜냐면 실망할 일이 없잖아, 사람이 마음을 안 다치려면 제일 기본적인 방법은 마음을 쓰지 말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은 건강하지만, 그것만을 바라고 쫓는 일상이 된다면 삶이 수단으로 전락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얼마 전부터 하게 되었는데 그 의미와 부합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2. 하루에 5분만 숨통 트이기.

연관되어 떠오른 콘텐츠 클립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미정이가 구 씨에게 했던 대사인데 하루에 5분만, 설레는 순간으로 채우면 죽지 않고 사는 방법이 된다고. 이 대사의 맥락 역시 장도연의 말과 유사하다. 행복하려고 살 것이 아니라, 그저 하루에 몇 분 설렌다면 그걸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




3. 미운 사람이 있다면, 귀여워해보자.

이효리의 서울체크인에 배우 구교환과 이옥섭 감독이 초대되어 이야기를 나누며 '귀여워 하기'에 대해 언급했다. 이옥섭 감독이 미국여행 당시 버스에서 매니큐어를 칠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가 저 사람이 내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자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귀엽게 느껴졌다고. 이후 미운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의 다른 면, 즉 귀여운 면을 보려고 하다 보니 미워하는 사람이 없더라는 말을 했다. 미움은 복잡하고 힘든 일이라 차라리 귀여워하고 나아가 사랑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기적의, 정말 기적 같은 논리이지 않은가?



4. 귀엽다는 건, 사랑스럽다는 뜻이야.

연애 초반, 남자친구였던 신랑은 왜 자꾸 자기 보고 귀엽다고 하냐는 핀잔을 늘어놓았다. 남잔데, 그것도 상남자! 라면서 붕붕 팔을 휘두르며 흥분하는 모습에 "아 귀여워.."라는 금기어를 뱉고 말았고 결국 울그락 불그락해진 그를 얼굴에 대고 다급하게 "아니, 귀엽다는 말은 사랑스럽다는 의미인데 자꾸 귀엽다고 말하게 돼"라는 설명을 덧붙이니 조금 진정을 찾은 그였다.


귀엽다는 말은 사랑스럽다는 말의 포괄적인 의미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후에도 귀엽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대상을 볼 때 '아 내가 이걸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정답이 곤 했다. 그래서 귀여운 것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결국 행복하기 마련이다.





작년에는 생각만 하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종종 나의 인생 목표에 대해 언급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나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이 문구는 내 정수리 끝에 달아둔 구심점 같은 것이었는데 ㅡ타인, 직업, 취미, 삶의 형태, 사는 지역 등 외부 요인에 의한 행복이 단절되더라도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글을 쓰고, 그러기 위해 사고를 다방면으로 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다 보니 점점 이 문장이 논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품게 되었고 결국 "이런 것 없어도 되지 않나?"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제야 느낀 해방감은 포근하고 부드러운 하얀 이불 같았다.


그럴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순간마다 가장 즐겁고 유쾌한 것을 선택할 기준이 명확해졌다는 것과 성가시고 고단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어떤 방향이 나를, 우리 가족을, 나의 친구들을 이롭게 해 줄 것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여름이 끝나가던 9월 어느 날 아침, 출근 전 강아지와 아침 산책을 나서는 길에 깨달았다는 것은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며칠간 산책을 해도 뚱한 강아지가 오랜만에 신나서 방방 뛰는 엉덩이를 보여줬던 날이었단 것에 작은 것의 소중함, 일상의 안정감을 크게 느꼈던 건 아닐까.




행복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루에 몇 분만 좋은 순간을 만들고, 싫은 것이 있으면 귀여워도 해보고, 귀여운 건 사랑한다는 의미니까 그것들이 모이고 쌓이면 언제나처럼 나는 행복하리라. 내 삶의 이유는 행복이 아니라, 행복한 나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당분간 <오늘의 귀여움>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 기록해 보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2. 여행의 준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