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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티 Nov 23. 2017

그렇게 홍보대행사 AE가 되었다

패기 넘치던 신입의 모습을 떠올리며

최근 많은 여성들에게 공감을 얻으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소설이 있다.

바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작년 말이다.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만날 때마다 내게 영감을 주는 언니에게 책 추천을 부탁했더니 이 책을 추천하더라. 남성 중심사회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공감 갈 만한 내용이라는 말과 함께 소설의 주인공인 82년생 김지영이 홍보대행사에서 일한 여성이니 꼭 읽어보라는 것이었다.


"주인공의 직장이 홍보대행사라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책을 구입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나 또한 홍보대행사에서 일하고 있는 86년생의 여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스물여섯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입사했던 곳은 광화문에 위치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홍보대행사였다. 홍보라는 '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스물다섯 살 때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한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같은 과 선배들은 전공을 살려 대학원에 가서 학업을 이어가거나, 통번역가, 러시아 현지 취업을 원했다. 나도 한때는 선배들과 같은 방향을 생각하곤 했다. 러시아어를 공부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나름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으로 삼을 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직장이 아닌 직업을 갖고 싶었다. 그것도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당시, 내가 재미를 느끼는 분야는 '미디어'와 관련된 것이었다. 방송과 광고, 기사 등 미디어를 매개체로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직업들이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대학 1학년 때 잠시 몸담았던 대학 방송국 활동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러시아어를 전공한 내게, 그것도 지방에서 거주 중이었던 내게 이러한 직업은 머나먼 꿈과도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를 만났다.

"나는 미디어와 관련된 업을 찾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렇다면 홍보는 어때?, 흔히 알고 있는 광고대행사처럼 홍보도 해당 업무를 대행하는 에이전시가 있는데 그런 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광고홍보를 전공하고 있던 친구는 내게 '홍보'라는 세계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홍보'라는 업은 마치 내가 오랜 시간 동안 꿈꿔왔던 일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관련 서적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홍보'라는 업에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해 매주 지방에서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며 관련 아카데미 수강을 들었다. 


내가 첫 직장을 들어가게 된 것은 PR 아카데미에서 만난 동생의 소개 덕분이었다. 홍보대행사에 먼저 취업해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던 동생이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인턴을 채용 중이라며 관심 있으면 지원해보라고 한 것. 당시 광주에서 거주하고 있던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부랴부랴 이력서과 자기소개서를 준비해 제출했고, 다음 날 바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 한 통에 서울에 가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약 한 시간 간의 면접을 보고 나서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합격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단 이틀 만에 직업을 구하게 된 것이다. 




홍보대행사의 업무는 생각했던 것보다 고됐다. 처음 출근했던 날 밤샘 업무를 시작했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철야근무가 많다는 것을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출근하는 날부터 경험하게 되다니...


게 주어진 첫 업무는 '기사 분석'이었다. 기사 분석은 제안서 작업 중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여기서 홍보대행사의 업무를 소개하자면, 홍보대행사는 말 그대로 다른 기업과 브랜드들의 홍보를 대행하는 곳이다. (사실 '대행사'라는 표현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대행'이라고 쓰겠다) 기업에서는 '홍보'라는 직무를 내부에서 소화하지 않고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다. 외주를 주는 방식은 이러하다. RFP(Request For Proposal)를 통해 기업에서 원하는 홍보 업무의 범위와 계약 기간 등을 고지하고 특정한 과제를 부여한다. 공개입찰 또는 비공개 입찰에 홍보대행사가 참여해 RFP에 적합한 제안서를 준비한 후 경쟁 PT를 하게 되면 기업이 다양한 조건에 적합한 회사를 선정해 함께 일하게 된다.


언론홍보부터 BTL(Below the Line/미디어를 매개하지 않는 프로모션(Non-Media Promotion)으로 판매 지원 · 유통지원 · 샘플링 등과 같은 대면 커뮤니케이션(Face-to-Face Communication)을 활용하는 것), ATL(Above the Line/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활동 중 비(非) 대인 적 커뮤니케이션 활동으로 TV · 인쇄 · 라디오 · 옥외광고 등과 같은 전통적 매체를 활용하는 것), 디지털 마케팅까지 홍보대행사의 업무분야는 매우 다양한데 내가 처음으로 입사한 곳은 주로 언론홍보를 담당하고 있었다. 때문에 팀에서 가장 막내였던 내게는 언론홍보를 위한 제안서 작업 중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기사 분석' 업무가 가장 주어진 것이었다. 첫 출근하는 날에 밤샘 근무를 하면서도 마냥 신이 났다. 20대의 패기 넘쳤던 그때의 나는 무엇이든 열심히,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 해내고 싶었다. 


그밖에 내가 주로 했던 업무는 기자들을 만나, 담당하는 브랜드를 소개하고 이를 우호적인 기사로 이어지게끔 하는 것들이다. 미디어에게 전달할 보도자료를 쓰고 때로는 보도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기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하고 행사 이후 게재되는 기사들을 밤새 모니터링하기도 했다. 야근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지만 견딜만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라는 말이 있잖아"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다 보니 신입시절의 모습이 많이 생각난다. 내게도 패기 넘치던 신입시절이 있었다! "뽑아만 주신다면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일이 일상의 전부가 되어도 싫지 않은, 싱그러움이 가득한 시절. 그때가 문득 그립다. 


나이가 들어도 연차가 쌓여도 변함없이 신입시절의 마음가짐과 태도로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잠시 인생에 '쉼표'를 찍은 이유도 어쩌면 그러한 마음가짐을 다시 가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 아닐까?


길고 긴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쉴 새 없이 달리다 잠시 멈춰 물도 마시고 허리를 피며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쉼'을 멈추고 다시 달리게 될 그날의 내 모습은 신입시절과 같은 싱그러움은 없겠지만, '패기' 하나만큼은 신입 못지않고, 어떠한 일이 주어져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넘치는 사람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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