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한국을 떠날 때, 폴은 어떤 마음이었나요?
Hi Paul,
우리가 처음 만났던 것이 2009년이니까 어느새 15년을 알고 지냈네요. 일 때문에 만났지만 막상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것은 일 년 남짓이고 그 뒤로는 줄곧 ‘아는 형 동생’으로서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들으며 가끔 얼굴 보는 사이로 지냈죠.
지난해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15년 전만 해도 우리 둘 다 30대였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뭘 해도 ‘씹어 먹을’ 자신이 있을 때였어요.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글로벌 바이럴 마케팅 같은 프로젝트들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걸 주저하지 않았고 또 결국은 해내고 말았으니까요. 그 땐 정말 몸이 힘들 정도로 일에 몰두하면서도 그 아슬아슬한 상황을 스릴과 재미를 즐길 수 있는 나이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죠. 이제는 몸을 그렇게까지 몰아부치는 것도 힘들고 어떤 것을 결정하기에 앞서 주저하는 일도 많아졌어요. 물론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나이(age)고요ㅎ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신체적으로 노화가 진행된다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더라고요. 그 중에서도 가족과 함께 하는 상황 변화가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자녀가 자라고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이사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아무데나 편한 곳에서 살자’는 식의 결정도 못하게 되죠. 함께 나이 들어가는 배우자 역시 점점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게 되고, 그런 상황들이 맞물리면서 점차 도전적인 결정이나 급진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일이 어려워지더라고요.
문제는 그 즈음부터 직장에서는 오히려 변화와 도전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들이 다가온다는 거에요. 나이와 경력이 차면서 관리자의 위치가 되면 어느덧 앞서 퇴직을 하는 선배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막상 그게 눈에 보였다 하면 너무나 빨리 다가와서 내 일이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렇게 마지막 벼랑 끝에 몰려서 타의로 떨어지기 전에 자의로 (행글라이더를 타고 뛰어 내리든 로켓을 타고 날아 오르든)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 자체로 또한 매우 큰 도전이자 급격한 변화이다 보니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답을 알지만 쉽사리 선택하지 못한다.’
그게 문제에요.
그런 점에서 10년 전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훌쩍 뉴욕으로 떠난 폴의 결정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대범한 것이었어요. 당시에도 그래 보였지만 나이를 열 살 더 먹은 지금은 더 대단해 보여요. 어떻게 아무 기반도 준비도 없던 그곳으로 그렇게 과감히 날아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지난해 문득 이런 말을 했죠.
‘이제 다니엘도 지금 있는 곳을 떠날 때가 된 것 같은데?’
15년을 알고 지내면서 수없이 들었던 폴의 아이디어와 도전들, 또는 기회들 앞에서도 그저 감탄하고 응원하기만 할 뿐 꿈쩍도 않던 저의 마음이 그때 문득 움직였던 것은, 변화 없이 이대로는 더 이상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보다도 오히려 10년 전 폴의 그 과감했던 첫 걸음이 주었던 강렬한 경외감이 어떤 희망처럼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일 거에요.
그 때,
한국에서 이룬 모든 걸 내려 놓고 뉴욕으로 떠날 때,
폴은 어떤 마음이었나요?
Sincerely,
Dani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