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에도 품질과 디렉션이 있다.
전 세계에서 바쁨을 만났다. 가을이라서 그런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바쁨이 나를 덮쳤다.
모두가 바쁘다 고 한다.
사실 어느 대도시나 택시들은 도로 위에서 춤을 추고,
사람들은 마치 서로를 미워하는 것처럼 걸어간다.
"바빠서 죽겠네"라는 말은 여기서 농담이 아니다.
진짜로 바빠서 죽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아시아와 유럽 타임존에 있는 파트너들과
미팅을 하면서 들었던 말들이 바쁘다. 였다.
딱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쁨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나는 내 심 이터널 스튜디에 앉아서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어딘가로 흘러가는 바쁨의 공기를 바라봤다.
그러다 생각했다. 바쁨에도 질이 있지 않을까?
단순히 일을 많이 한다고 다 같은 바쁨이 아니란 얘기다.
어떤 사람은 바쁜 척하면서 공허하고, 어떤 사람은 진짜로 뭐가 터질 것처럼 바쁘다.
방향도 문제다.
앞이 보이지도 않는데 그저 달리기만 한다면, 그건 바쁨이 아니라 미친 짓 아닌가?
그러면서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바쁜 건 좋은 거다. 일단, 내가 뭘 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하지만 이 바쁨이라는 녀석도 품질이 좋아야 한다.
그냥 아무거나 막 집어서 정신없이 휘둘리는 게 아니라,
적어도 내가 뭘 향해 달리고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근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 던져보자.
그 바쁜 와중에 ‘쉼’을 찾을 수 있느냐는 거다.
아무리 바빠도 그 틈새에 쉼이 숨어 있다.
문제는, 그걸 알아보는 눈이 있느냐는 거지.
그러다 며칠전에 마주친 길거리의 안경을 끼고 스카프를 하고 새틴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생각이 났다.
F Train 지하철역 앞에서 가만히 서 있던 그녀. 핸드폰을 들고 서 있는데, 그 잠깐의 정적이 너무 인상 깊었다. 뭐, 물론 그 잠깐이 뭔 의미가 있겠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좀 달랐다. 그게 바로 바쁨 속의 쉼 아니겠나? 그 잠깐 동안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시 바쁘게 어디론가 사라졌지.
바쁨 속에 쉼이 없으면?
혹은 발견하지 못하면?
표정 안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반대로 그 안에서 쉼을 발견하고, 잘 써먹으면?
그 바쁨은 당신을 어디로든 데려다줄 수 있다. 뭐. 데려갈 곳도 이미 당신은 알겠지.
사실, 사람 사이의 바쁨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바쁘다고 하지만, 정말 바쁘더라도 중요한 사람한테는 시간을 낸다.
한 번은 친구가 나한테 그랬다. “너 진짜 바빠 보이는데, 나랑 커피 한 잔 할 시간이나 있어?”
아, 있지. 왜 없겠냐. 바빠도 중요하면 시간을 만드는 거다.
그래서 결론은?
바쁨 속에서도 나만의 속도를 찾아야 한다.
누가 뭐라든 내가 그 속도를 컨트롤할 수 있으면, 그게 진짜 멋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