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야.

한국을 다녀온 이후, 정신없이 바빴다.

by Paul과 요셉

시간이란 흐르는 것 같으면서도 제자리에 머무는, 기이한 존재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빠르게 지나가다가도, 때로는 끝없는 정적 속에서 멈춘 듯이 버틴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 새로운 10년을 뉴욕에서 만들어가는 중이다. 확장과 수렴을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나의 거점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은 흥미롭고도 치열한데, 대체로 재미있고, 가끔은 지치며,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해내려는 건 아닐까 싶다가도, 결국은 계속 전진한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늘 무언가를 요구한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도시의 에너지가 온몸을 밀어붙인다. 사람들은 언제나 움직이고, 길 위의 표정들은 단단하다. 가끔은 이 도시가 쉬어도 된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뉴욕은 그런 말을 해주지 않는다. 그냥 계속 가라고, 더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내 방식대로 이 도시에 적응해 나간다.


그 와중에 내 인생의 모자를 세 개로 정리하는 작업도 이어졌다. 마흔을 지나 쉰이 넘어서, 이제야 인생의 롤 모델을 명확히 정하는 과정에 들어섰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면 아이러니랄까. 누구를 닮고 싶은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그리고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을 오래 붙들고 있었다.


얼마 전,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분과 통화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 롤 모델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했더니,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Paul, 너는 여전히 젊구나.”


나는 그 말을 한참 곱씹었다. 젊다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인가? 단순히 나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아니면 내가 선택한 방향을 두고 하는 말인가. 나는 점점 더 후자 쪽으로 기울었다.


젊음이란 결국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 질문하는 사람, 실패를 받아들이는 사람,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 그렇게 살아가는 한,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이 조금은 설득력을 갖는다.


요즘 나는 ‘죽음과 도시’라는 묵직한 주제를 중심으로 뉴스레터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죽음과 도시. 그 조합은 묘하게 매력적이다. 죽음이란 모든 도시가 품고 있는 본질적인 이야기다. 도시가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라면, 그곳에는 반드시 죽음이 존재한다. 역사를 돌아봐도, 문명을 돌아봐도,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 가는 한 사회의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나는 유골함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다. 단순한 장례 용품이 아니다. 그것은 라이프 스토리를 담아내는 하나의 상징이다. 사람들은 떠난 이후에도 이야기를 남긴다. 나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간결하지만 묵직하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질문들을 던졌다. 죽음이란 단순히 끝이 아니라는 것, 그것을 기록하는 방식이 사회마다, 문화마다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 그리고 죽음을 이해하는 것이 결국 삶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것. 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동시에, 미국과 남미로 오고자 하는 여러 나라의 파트너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클럽을 만들었고, 두 개의 중요한 회사의 미국 Representative 역할을 맡아 그들의 거점을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일도 하고 있다. 결국은 사람들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도록 돕는 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매달 공동묘지를 리서치하기 위해 뉴올리언스를 다녀왔고, 이번 달에는 마이애미를 간다. 누군가에게는 기묘한 루틴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아주 논리적인 과정이다. 도시는 언제나 죽음을 품고 있고, 죽음은 늘 도시에 자리한다. 역사가 그랬고, 문화도 그렇다. 죽음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한 사회의 성숙도를 결정한다면, 그 공간을 연구하는 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필연적인 탐구가 된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 더,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도는 계획이 있다.


미국 시민권을 받게 되면, 한국의 정책상 이중 국적을 유지할 수 없다. 나의 선택과 무관하게, 하나의 여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 그렇다면 나는 2030년쯤, EU 시민권을 취득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하는가? 아직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탈리아일까, 포르투갈일까, 아니면 조금 더 생소한 유럽의 작은 국가일까. 국적은 단순한 행정적인 절차 같지만, 실상은 삶의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어디에서 살 것인가? 그리고 뉴욕과 함께 또 하나의 거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


나는 종종 도시들을 살핀다. 단순히 여행자의 시선이 아니라, 거주자의 시선으로. 거리의 공기, 사람들의 눈빛, 아침의 리듬, 밤의 조용한 웅성거림. 어떤 도시들은 감각적으로 다가오고, 어떤 도시들은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에서 동의하지 않는다. 뉴욕이라는 절대적인 거점이 있다면, 또 하나의 도시는 어떤 색깔을 가져야 할까.


낯선 거리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는 골목길을 걸을지, 오랜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에서 커피를 마실지,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 갈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나는 단 하나의 장소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도시를 선택한다는 건 결국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일이다. 언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활 방식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뉴욕과의 연결점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모든 게 유동적이지만, 나는 이 불확실성을 즐기고 있다.


어쩌면 루틴이 생기니 여러 일을 맥락 속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하루하루를 핸들링할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건 20년을 내다보는 방향성이 있다는 점이다. 큰 그림이 있으니, 하루하루의 업 앤 다운이 그리 거슬리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나는 젊게 살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