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한 포스팅을 한거였어. 그래서 매년 나를 자극해.
Daniel,
사실 너에게 글을 쓰는 걸 미뤄왔어.
일부러 그랬다.
물론 너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있어 중요한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거든.
잘 생각해보면 네가 알지도 모르겠다.
쓰다가 중단하고, 다시 쓰다가 중단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너는 네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 어디니? 이런 질문을 한다는 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을 말하고 싶어서겠지. 약간은 억지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이 모든 것이 저 가방하고 연관이 되어 있기는 해, 사실이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지금 이곳, 브루클린의 스튜디오에서 부엌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풍경이야. 늦가을의 창번 너머의 컬러가 든 잎 그리고 낙엽들과 코 끝을 흔드는 찬 바람,
그리고 그 너머에 펼쳐진 도시의 모습까지.
이 광경 하나만으로도 브루클린을 사랑하게 된 내 많은 느낌이 있지.
이민자로서의 삶, 그리고 여전히 거창한 꿈을 가진 사람으로서 느끼는 현실적인 고단함이 이 창문 너머의 풍경은 나에게 충분한 보상이 되었어.
하지만 이 창문은 나를 예전의 어느 풍경으로도 데려가곤 해. 2007년, 프라하의 어느 작은 게스트하우스 부엌 창문을 바라보던 기억. 누나 친구가 운영하던 그 게스트하우스에서 설거지를 하며 바라본 그 풍경이 지금의 이 창문 풍경과 닮았어. 프라하에서 좋았던 유일한 기억이지. 허니문 중이었던 프라하에서 나에게 남은 건 결국 그 창밖의 모습뿐이었어.
그때의 허니문은 나의 지난 결혼이었고, 그 시절을 상징하던 가방이 있었지. 내가 뉴욕으로 올 때 그 가방을 짊어졌어. 하지만, 결국 프랑크푸르트에 그 가방을 매몰차게 버리고 말았지. 왜냐면 첫 허니문의 도착지인 프랑크푸르트에 다시 가야 할이 있었거든.
그때다 싶었어. 그 모든 나쁜 기억들을 모두 덮어두고 싶어서였어. 그저 단순히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었던 물건이었거든.
그런데 내가 실수를 하나 했어. 그 가방을 버렸다는 사실을 페이스북에 올렸던 거야. 매년 그날이 돌아오면 그 가방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기억들이 되살아났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기억들도 견딜만하게 되었어. 이제는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도 담담히 생각할 수 있어. 다만, 가끔씩 이메일로 날아오는 과거의 그림자들은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하는데 얼마전에 정말 대단한 이메일이 왔었지.
몇 년 전, 내가 유럽 일주를 했었고 저 가방을 푸랑크푸르트에 버려둔채 10여개국을 떠돌아 다니다가 뉴욕에 오던 길을 생각하면 참 많은 감정이 떠올라. 영국 사우스햄튼에서 대서양을 건너 퀸 메리 2호를 타고 브루클린 항구에 도착했던 7일간의 여정. 새벽녘, 항구로 들어오며 어렴풋이 보이던 자유의 여신상이 나의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했지.
흔히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를 생각하겠지만 난 그런것에 참으로 둔감한 사람이야.
그냥 내 갈길밖에 생각나지 않아.
쉽지 않다.
여하튼 그때부터 내게는 진짜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 뉴욕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고 이 곳은 나에게 생존의 무대가 되었어. 이상하게도 내가 떠나온 땅에 대한 향수는 한국이 아니라 유럽에 더 가깝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브루클린의 찬바람이 불어올 때면 남산 순환도로를 걷던 시절이 떠올라. 경리단 길을 따라 내려가 시장을 보고, 매일 저녁 스스로의 비합벅 가정식당이라고 이름 짓고 매일매일 새로운 게스트들을 맞이하던 남산 순환도록 옆의 그 집이 생각나.
그 시절 나는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을 대접하며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었어. 그 커뮤니티는 결국 글로벌 컨퍼런스까지 발전되었지. Meet the Table, 그 프로젝트는 내가 1년 반 동안 매일 저녁을 준비하며 쌓아올린 작은 기적이었고 인생에 있어서 나를 만들었던 몇개의 기억중 하나가 되었지.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루클린의 창문 너머 풍경은, 아마 그 모든 것들이 얽혀 만들어낸 결과물일지도 몰라. 여행, 문, 꿈, 창문, 그리고 가을.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퍼즐 조각들중 하나겠지.
너도 너만의 창문을 통해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Love Never Fails,
Pa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