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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나의 시간에, 느릿한 눈맞춤을

나의 소소한 제주 일상 : 문구점, 그리고 메리 올리버 <긴 호흡>

by 고미 Feb 07. 2025
'귀엽다' '매력적이다' '사랑스럽다' 같은 말들은 잘못 됐다. 그런 식으로 지각되는 것들은 위엄과 권위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귀여운 것은 오락거리고 대체 가능하다. 말들은 우리를 이끌고 우리는 따라간다. 귀여운 것은 조그마하고, 무력하고, 포획할 수 있고, 길들일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다. 그 모든 게 실수다. 우리 발치에는 양치식물들이 있다. 그것들은 인간 종족이 어디에도 없고 전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던 때에 최초의 이름 없는,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바다의 무시무시한 여울 속에서 거칠고 결연하게 자라났다. 우리는 그것들을 예쁘고, 섬세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우리의 정원으로 가져온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주인이 된다. #메리 올리버 #긴 호흡 #몇 가 지 말들_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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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문구점 산책


2월 그림 수업 시간을 늘린 아드리 덕에 수면 부족 호소인이 됐다.

겉으로 티가 안 나는 탓에 오후 몰래 꾸벅꾸벅 졸지 않으면 무한 커피 사랑을 실천하는 중이다.

그나마 아직 느슨하게, 하루와 한 해의 시간을 조율하는 참이라 다행이다.

봄비에 가까운 비가 내리던 날, 문구점에 갔다. 서점과 전시장만큼 좋아하는 공간이다.

이 세 곳에는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갖고 싶다는 욕구를 내려놓고 순수하게 눈 맞추는 시간을 늘리면 늘릴수록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평가를 챙기지 않고 움직이는 습관 때문인지 보물 찾기를 하듯이 느리고 또 오래 두리번거리며 공간을 쓴다. 물론 미리 설정한 시간을 채우고 돌아오는 길에 손에 뭔가를 들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지출이라 흡족하다.     

이번 역시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리며 눈에 쏙 든 노트 하나와 색연필 두 자루, 컬러펜 한 자루, 작은 가위 하나를 사들고 나왔다.

펜과 연필은 일단 쓰는 용도일 테고, 그 걸 위해서는 노트가 필요할 거고 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이미 올해 쓰려고 챙긴 필사 노트가 몇 개 있고 선물 받은, 또 아들이 쓰려고 샀다가 둔 색연필 세트가 있고 들고 다니는 가방마다 형형색색 볼펜이 최소 서너 개가 있지만 분명 오늘 나에게는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니 나와 눈을 맞추려고 그렇게 애를 썼고 비슷한 여러 색들 사이에서 빛이 났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다, 그럴 거다.

이제 내 것이 된 것들을 펼쳐 놓고 ‘어떻게 쓰면 더 즐거울까’ 또 한참 나를 위한 시간을 쓴다. 나름의 회복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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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호흡'에 대한 나의 마음


그리고 제목처럼 꽤 긴 호흡으로 책을 읽었다.

’귀엽다‘의 해석은 나와 다르지만 살아온 시간과 경험 등등의 차이를 감안한다면 이해 가능한 범위다.

뉴욕타임즈가 ‘단연코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시인‘이라고 평가한 이의 문장 속에서 충일한 감성과 섬세한 관찰, 단정하고 끊임없는 쓰기 습관, 깊고 내밀한 공감을 읽는다. 바닥에 머리를 기댄 늙은 여우나 빈사 위기의 큰부리바다오리, 버림받은 꼬마 홍어, 사춘기 기세가 등등한 캐나다기러기의 비유를 손끝까지 끌어다 읽을 줄은 몰랐다.

오래 걸린 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마무리…편안하다.     


나는 시들이 내게 기여해 주기를 기대한다. 시들이 내 삶 속에서 막간의 여흥이나 따로 떨어진 장소가 아니라 진행 중인 존재이기를, 그것들이 긴요하고, 정보를 제공해주고, 지지적이기를 - 내 삶을 확장 시키는 '재현, 체험'을 지지해주기를 - 기대한다. 늘 우아하거나 현명하거나 단순할 필요는 없다. 삶 자체가 그러하 듯 공포, 고통, 혼란을 담고 있어도 된다. 하지만 사리 사이나 대파괴, 죽음의 작은 신들이 아닌 생명의 주 lord of life를 대신하여 분투해야 한다. 정체가 아닌 나아감의 시들이어야 한다. #메리 올리버 #긴 호흡 #시인의 목소리_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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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문구점에서 산 것들이, 작가의 것들과 겹친다. 펜과 종이 그리고 공기 한 모금…늘 작은 공책을 들고 다녔다는 시인의 일상이 눈 앞에 그려진다. 꾸준히, 스스로를 채우면서. 귀엽거나 매력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오다 주웠다…는 듯이 툭하고 준 가방에 필사 노트와 펜, 손뜨개 등등을 넣었다. #역시_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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