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의 <금씨책방> 45 - 맥파이 살인사건
<맥파이 살인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열린책들
600페이지쯤 되는 소설 속에 책이 한권 등장하는데 그 액자소설 분량이 300페이지가 넘는다.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새 책을 낼 때는 가슴이 떨리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고 들었다). 그러다보니 액자소설을 내더라도 그 소설 속 소설 전체를 싣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작가 입장에서는 두 권의 책에 대해서 평가받는 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맥파이 살인사건 속에 등장하는 액자소설(그 제목도 "맥파이 살인사건"이다)은 맥락상 작가들이 가장 쓰기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필요로 하는 성격의 책이다. 평론가들이 보기에는 별볼일 없는데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 말하자면 앤서니 호로비츠는 자기 소설 속에 스티븐 킹이나 존 그리샴이 쓸만한 책을 하나 심어놓은 것이다.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졌던 사람들은(나를 포함해서) 조금 짐작이 갈 것이다.
독서를 진짜 취미로 하는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작가가 쓴 '소설 쓰는 얘기' 책은 정말 읽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 분야의 책 중에 최고는 제임스 미치너가 쓴 <작가는 왜 쓰는가>라고 생각하는데(정말 재미있고, 뭐랄까 인간미도 느껴지는 책), <맥파이 살인사건>도 그에 못지 않게 재미가 있다.
일단 작가들이 쓴 '소설 쓰는 얘기 책'에는 다른 작가나 책 얘기가 꼭 나오기 마련이라 찾아 읽게 되는데 <맥파이 살인사건>을 읽다가 뮤리얼 스파크를 알게 되어서 책을 한권 샀다. 뮤리얼 스파크를 검색해보니 2018년 2월 한국일보 최윤필 선임기자가 이런 글을 써놓았다.
......'가디언'은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 비법을 소개한 기사를 실었는데, 그 중 스파크의 방식이 가장 흥미로웠다. 가령 톨스토이는 아침 일찍 맑은 정신에 글을 써야 한다고 했고, HP 러브크래프트는 늦은 밤 객관적인 세계가 물러가고 꿈이 영감을 발휘할 때가 좋다고 했다. 윌리엄 포크너는 무조건 읽으라고 했고, 캐서린 맨스필드는 무조건 쓰라고 했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늦어도 좋으니 먼저 생각부터 하라고 했다. 반면 스파크는 이렇게 썼다.
"어떤 문제에 온전히 집중하려면, 특히 뭔가를 쓰려고 한다면, 먼저 고양이가 있어야 한다. 고양이랑 단 둘이 작업실에 있다 보면, 녀석은 틀림없이 당신 책상 위에, 스탠드 조명 아래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렇게 자리잡은 고양이는 그 자체로, 당신에게 엄청난 기쁨을 줄 테고 곧 정밀한 고요로 당신의 집중을 방해하는 온갖 자극적인 것들을 물리쳐줄 것이다.(…) 항상 고양이를 쳐다보고 있을 필요는 없다. 존재 자체로 충분하니까. 고양이가 당신의 집중력에 발휘하는 효과는 엄청나며, 또 무척 신비로울 것이다."
이런 작가의 책을 어떻게 안 읽을 수 있겠는가. 최윤필 기자가 이 기사를 쓸 때만해도 뮤리얼 스파크의 책 중에 번역된 것이 없었다는데 그 후에 대표작인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가 번역, 출간되었다. 당연히 다음 번에 읽을 책으로 대기 중.
20세기 중반에 활동한 뮤리얼 스파크의 책을 찾다보니 오랫동안 읽고 싶었지만 제대로 번역이 되지 않아서 손을 못 대던 새커리의 <허영의 시장> 생각이 문득 떠올라서 찾아보니 작년에 번역이 되어 있어서 이것도 구입. 소설가가 쓴 '소설 쓰는 얘기' 책을 읽는 데는 이런 재미가 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맥파이 살인사건>은 과연 어떤 책이며 재미가 있는가. 책의 앞부분에 이런 대목이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경고하고 싶은 게 있으니 그게 뭔가 하면, 이 책으로 내 인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설명은 이정도면 됐을 거라고 본다. 나와 달리 여러분은 미리 경고를 받았다."
이 오만한 경고가 허투루 끝나지는 않는 책. 추리소설 특히 아가사 크리스트 좋아하는 분들은 결코 실망하지 않을 책이다.(소설 속에 실제 아가사 크리스티의 손자가 까메오처럼 등장하기도 한다) 더 이상의 설명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만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