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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치율 Nov 04. 2021

그게 그렇게 오래 걸일 일이에요?

국내 제조업 엔지니어의 외국계 회사 적응기

입사 후 2~3개월 차 즈음에, 내 자리를 지나가던 팀장님이 나즈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그렇게 오래 걸일 일이에요?'


탓하고 꾸짗기 보다는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어투였지만, 나는 죄송합니다 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뭔가 나에게 주어진 일이 생겼고,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을 시킨 사람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계속 일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세일즈 데이터를 정리해서 보고서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왜 그렇게 붙잡고 있었나 모르겠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래 3가지의 이유 였던 것 같다.   


1. 일에 대한 비즈니스 백그라운드(Domain Knowledge)가 없었다. 입사한지 얼마 안되다 보니 회사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었다. 100이라는 숫자가 높은 건지 낮은 건지 아니면 완전히 잘못된 숫자인지 감이 없다 보니 모든 데이터를 하나하나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답은 안 나왔다. 


지금은, 새로운 업무를 맡았을 때마다 이때 생각이 난다. 지금은 프로젝트를 받으면 비즈니스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인덱스를 유의깊게 봐야 하는지 먼저 정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2. 데이터를 잘 다루지 못했다. 설령 비즈니스 백그라운드가 없었더라도, 숙련된 데이터 분석가라면 새로운 데이터셋에 대해서도 충분히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도출했었어야 한다. EDA(탐색적 데이터분석)를 통해 데이터의 대략적인 컨셉을 파악하고, Dimension과 Measure로 데이터를 나누어 다양한 분석법을 적용시킬 수 있었다. 솔직히 당시 나는 엑셀만 조금 할 수 있는 상태였고, 그러다 보니 데이터를 쉐이핑 하고 시각화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지금은, 분석팀 매니저가 되면서 나만의 루틴과 툴이 생겼다. SQL을 통해 데이터베이스에서 데이터를 뽑아내고 Python이나 R을 통해 ETL(Extract, Transfer, Load)을 한후 Tableau로 시각화 대쉬보드를 만들고, 비즈니스 유저들을 위해 csv형태의 Raw data를 공유한다.


3. 팀장님의 의도가 뭔지 혹은 그 업무를 부탁한 비즈니스 팀의 의도가 뭔지 몰랐다.     사실 이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당시 팀장님도 다른 팀으로 부터 해당 데이터에 대한 분석 요청을 받은 거였고, 본인이 하면 더 빨랐겠지만, 나를 테스트도 할겸 가장 간단하고 쉬운 부분을 떼서 나에게 맡긴 거였다. 아마도, 나에게 부탁했던 부분도 결국엔 팀장님이 하셨을 것 같다. 깊이 있는 분석 보다는 지난 주 매출에서 눈에 띄는 포인트 몇 개만 찾아서 공유하면 됬었던 건데 무작정 데이터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팀장이 일을 시키면 누구한테 요청 받은 건지 왜 해야하는 건지 그 자리에서 바로 물어본다. 다른 팀에서 요청이 들어온거면 바로 요청한 담당자와 미팅해서 요구사항을 수정하거나 거절한다. 그리고 팀장한테 보고한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돌이켜 보면 좋은 밑거름이 된 것 같다. 이런 상황들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부딪히면서 배우려고 했던 지난 날의 나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덕분에 누구보다 단단한 기초를 다질 수 있었던 것 같고, 그에 대한 결실을 최근에 많이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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