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가을을 느끼는 법

[스타이즈본]을 보고

by 이주현

가을이 왔다 가고 있구나, 느껴지는 계절에는 영화 [만추]를 꺼내서 보곤 한다.

쓸쓸한 감정과 여운, 탕웨이의 진한 트렌치 코트, 애니의 자기고백에 '하오'라며 끄덕여주던 훈의 모습. 그 모든 것들이 가을을 느끼게 한다. 가을은 이상하게도 사랑하고 싶어짐과 동시에 쓸쓸함을 불러일으키는 계절이다.


오늘 본 영화 [스타이즈본]에서도 화려하게 물들었다 지는 노을 같은 쓸쓸한 감정이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그게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happily ever after'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사랑이라면 모든걸 걸고 믿어볼만하지 않을까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게 하다니.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의 하나의 공통점은 스토리보다는 '등장인물'이 기억에 남는다는 것. 내가 널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주인공들을 이해하게 하고, 끝내 좋아하게 만드는 영화들. 예를 들면, [무뢰한]의 김혜경, [만추]의 애니와 훈, [우리들]의 선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해리와 샐리처럼 주인공의 이름이 기억나는 영화들을 대체로 좋아하고 떠올리곤 한다. 오늘 본 영화 속의 잭슨과 앨리도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영화에서 좋았던 부분은 크게 두가지인데, 첫번째는 잭슨과 앨리가 바에서 처음 만나서 다음날 동이 틀 때까지 함께 보낸 시간. 서로 음악으로 교감하며 끌리게 되는 에너지와 분위기가 너무 생생해서 이대로 리얼 타임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더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장면이었다.


두번째는, 엔딩에 다다르면서 두 주인공이 각기 맞게 된 이별의 방식. 영화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관객들이 주인공의 행동과 감정에 이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갑작스럽다고 느꼈을 법한 잭의 감정을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야 말았다. '이해하고야 말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의 행동을 비판하게 되는 것에 앞서 그냥 그에게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는 뜻이다.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매니저의 말이 잘못이었을까, 앨리가 느끼게 될 상실감과 죄책감은 생각하지 않은걸까, 죄책감때문이었을까 이런 생각 대신 그냥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잭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그의 마음을 치유했을 앨리의 사랑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물론 잭도 앨리를 너무나 사랑했고, 그들은 이 사랑의 끝을 알았더라도 다시 그렇게 사랑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해본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길까. 어렵기 때문에 예술가들의 애절하고,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에 빠져들곤 하는걸까.


어쨌든 영화를 보고 나와서 공원에 앉아 ost의 노래를 들으며 또 한번의 가을이 이렇게 왔다 가는구나 느꼈다. 시간내서 단풍놀이를 가기 힘든 분들이 있다면, 극장에서 [스타이즈본]을 보며 가을을 느껴보시길 추천드린다. 참고로, 화면을 뚫고 나오는듯한 레이디가가의 노래는 정말이지 가사까지 좋다.



Shallow


I'm off the deep end, watch as I dive in

I'll never meet the ground

Crash through the surface, where they can't hurt us

We're far from the shallow now-



가사의 내용처럼, 오늘도 한뼘 더 삶의 깊은 곳으로 향하는 하루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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