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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Apr 17. 2016

봄 그리고 들꽃

들꽃 립스틱 엄마

봄이다. 목에 메고 있는 스카프가 바람을 타고 하늘하늘 흩날린다. 겨우 내 무채색으로 본연의 빛깔을 감추고 지내던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이제는 생동감을 얻은 듯하다.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길가에 핀 분홍빛 들꽃을 보았다. 이름 모를 들꽃이었다.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기 위해서는 고요하게 눈이 녹길 기다리라던 어느 시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봄에 피어난 들꽃을 볼 때면, 늘 엄마 얼굴이 포개진다. 


우리 엄마. 따뜻한 봄, 들에 핀 들꽃 같은 사람이다. 들꽃 보다 약간 옅은 빛의 분홍색 아이 섀도가 참 잘 어울리는 사람. 빨간 립스틱보다 들꽃처럼 은은한 립스틱을 즐겨 바르는 사람. 그렇게 존재만으로도 봄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우리 엄마이다. 내가 즐거우면 엄마도 즐겁고, 내가 슬프면 엄마도 슬프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나에게 ‘또 다른 나’와 같은 존재이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나의 엄마로 태어나서,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의 엄마 모습으로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몇 해 전, 길을 걷다가 조그맣게 피어난 들꽃을 우연히 발견하듯, 나이 든 엄마의 모습을 마주치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보다 엄마는 주름이 늘어있었다. 예전에는 엄마의 새카맣고 풍성한 머리카락 사이에 드문드문 숨어있던 흰 머리들이 이제는 제법 무리를 지어 곳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10대를 지나 20대가 되는 동안 엄마도 부지런히 나이 들고 있었다. 스물 세 살인 나보다 조금 더 많은 나이에 큰딸인 나를 낳아 이제 그 딸이 20대의 아가씨가 되었으니, 엄마가 나이를 먹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거나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나를 키우고, 동생을 키우고, 아빠를 내조하면서 늘 혼자였을 엄마의 지난 시간들이 미안하고 쓸쓸하게 느껴져 마음이 아프다. 아침마다 저마다의 몫을 해야 하는 곳으로 식구들이 바쁘게 나가고 나면, 엄마는 언제나처럼 어지럽혀진 집을 치웠을 것이다. 향기롭고 깨끗하게 빨래를 하여 반짝이는 볕에 널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혼자서 냉장고 속에 남은 반찬으로 늦은 아침 식사를 했을 우리 엄마. 아마 끼니를 거르는 날도 많았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우리 엄마는 때때로 외롭기도 했다가, 피곤하기도 했다가, 식구들로 인해 행복하기도 했다가 걱정도 했을 것이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온 딸들에게 엄마는 항상 “오늘 학교에서 별일 없었니?” 라고 묻곤 했다. 그때의 나는 왜 엄마에게 엄마는 오늘 하루 밥은 잘 먹었는지, 별일은 없었는지 묻는 살가운 딸이 되지 못했을까.


대학생이 되고 나서, 가장 큰 생활의 변화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의 시간은 대부분 엄마와 함께이다. 엄마는 나에게 언제나 좋은 옷, 맛있는 음식, 따뜻한 집, 편안한 마음을 주고 싶어 했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좋은 곳, 즐거운 이야기, 행복한 마음을 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대학에 입학해서 지금까지 약 2년의 시간동안 시간만 생기면 엄마와 함께 이곳저곳을 다녔다. 서울 시내의 번화가부터, 고궁, 미술관까지 시간만 생기면 엄마와 나들이를 했다. 나들이를 하면서 엄마의 생활과 마음과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좋은 곳에서 엄마와 이야기하고, 사진도 찍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내 삶에 쉼표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항상 감사하다. 엄마도 나와 함께하는 나들이가 봄바람이 불어드는 것처럼 선선한 즐거움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봄은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길에 핀 들꽃이 아름답다 하여 그 꽃을 꺾어다 곁에 두지 않는다. 꽃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에도 그 꽃을 만나기 위해 꽃이 핀 자리를 찾아간다. 결국 사랑한다는 것은 정성과 희생을 의미한다. 엄마는 언제나 정성과 희생으로 나와 동생 그리고 아빠를 보살폈다. 이제는 내가 길가에 핀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마음과 정성을 다하고 싶다. 


꽃샘추위가 지나고 나면, 봄기운은 더욱 짙어질 것 같다. 봄은 마음으로 느끼는 계절이라는 말이 있듯, 어쩌면 꽃샘추위에 몸을 반쯤 감춘 채 우리의 곁을 스치듯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올 봄에는 엄마와 함께 들꽃이 피어난 야외로 가고 싶다. 젊은 시절보다 들꽃처럼 은은하게 아름다워진 엄마의 지금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힘들고 지칠 때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은 ‘행복한 추억’이라고 한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내가 걸어갈 길에서 나의 손을 잡아줄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라 믿는다.


                                                                                                                                            by 서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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