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기억조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영 Aug 14. 2023

자발적 멈춤 - 과거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러면 안 될 거 같았다. 청력을 잃은 이유도 학교 생활이 지겨운 이유도 무언가 잘 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어떤 선택이 잘 못 된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환경적 이유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만 끌림이 아닌 이성적인 선택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대로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다면 과거와 똑같은 선택을 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자발적 멈춤을 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멈춰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계속했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조급함과 불안함이 더해져 무언가를 계속 도전하고 시도하고를 반복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내가 잘하지만 지속할 수 없는 것, 뛰어나지는 않지만 지속할 수 있는 것,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등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속하지 않았으니 무언가 남는 것도 없었다. 이건 멈춤이었을까 행함이었을까. 진정한 멈춤은 아닌 거 같았지만 그래도 이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자격증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던 어느 날 눈물이 흘렀다. 인생의 전환기에 여행도 하고 책도 읽고 학과 공부도 열심히 해봤으며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해보지 않은 것들을 시도해 봤다. 하지만 그때마다 마주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해보니 생각보다 별거 아닌 거라는 감정뿐이었다. 결국 현재의 나에게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과거의 잔해물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방황을 하면서 다시 원래의 내가 했던 것에 비슷한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문직 자격증 공부였다. 아마도 공부라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도전의식 그리고 어떤 현실적인 감각에 의해서 그런 선택을 했었는데, 시험을 3달 남긴 시점 나는 시험 준비를 접었다. 전환기에 해왔던 방황들이 생각나면서 왜 또 다시 돌아가려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년간 했던 나를 바꾸는 경험들이 이런 결정을 하게 만들었다. 나와 맞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타인이 정의하는 무언가에 매달려있는 모습이었다.


  이때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또 회피하는 것일까. 아니면 진심인 것인가. 왜냐하면 시험을 준비할 때는 그 누구보다 자신 있게 다짐했거든. 시작이 반이지만 또 시작은 마무리보다 훨씬 쉬운 과정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아마 두 가지 모두 공존하는 마음이었을 거다. 그렇게 나는 시험 포기라는 결정을 했다. 이것은 불과 1년 전이다. 이후에 내가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은 내 선택을 정답으로 만드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정답은 무엇으로 측정되는 걸까. 돈? 유명세? 명예? 자기만족?


이건용 달팽이걸음 출처 : 뉴시스


매거진의 이전글 늘 거기 있는 산에 오르는 이유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