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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사람 Jun 19. 2024

열대야의 시작, 러브레터

한 여름밤의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터지고야 말았지요


소란스러웠다 이내 고요해졌고 무언가 또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놓았다 하는 그런 뒤숭숭한 이 여름은 이제 시작이겠지. 얼마나 길게 머물다 저만치 날 두고 뛰어가려나. 조금 부풀어올라 서두르면 펑! 터지고 체하기 마련인데.


빗장 걸어 잠근 채 달빛 아래를 오래도록 걷던 기도는 힘이 없었고 그렇게 흩어졌다. 내가 신앙이 없어서 그런가. 별스런 일들에도 그다지 동하지 않았는데 알코올을 좋아하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나 빼고 모두 그렇게나 좋아하고 기대며 취하는데 손해 보고 소외되는 기분. 실제로 그랬고.


꽤나 진득하게 취중에 주고받았던 대화와 뜸과 감정들이 나에게만 있는 추억이라니 술이 없는 대화는 계속해서 시간이 어긋났고 마치 다른 멀티버스에서 충돌하고 난파된 걸까 불안해 쩔쩔맸다.


그는 일을 마치고 술에 취해 돌아올 때면 내게 화상전화를 걸어 한두 시간씩 다양한 말과 표정들을 보여줬었다. 알코올에 빠져 사라지는 줄도 모르고 나눴던 그 대화들을 나는 아마 제일 사랑했다. 나를 구하고 울리고 웃게 하고 약 오르게 했던 당신의 취중 말들을. 철딱서니 없어서 내 미간을 찡그리게 하기도 했지만, 깊이 있는 질문과 담백한 위로를 줄 타던 그 밤들을 주저 없이 사랑했다.


어느새 브레이크를 잃은 내가 찾은 세계는 사람으로 존재했고 내 눈앞에 있었으니까, 이곳의 이방인이 될 것은 나였다. 어찌 될지 알 것 같았지만, 마냥 좋았다. 뭐.. 오래전보단 나잇값을 해보려고 더욱더 허우적대기 전에 서둘러 매듭만 내가 지은 것처럼 했지만, 이 글자들이 있으니 실패인가. 촌스럽고 찐따 같단 말 틀린 것이 없네 후후.


제법 큰 눈으로 집중하여 바라본 내 세계가 내게 관심을 잃어감을 모를 리가 없다. 대화와 표정과 글자들에서 많은 무게들이 사라졌다. 아마 20대의 나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더더욱 내 것을 더 내밀고 애처롭게 나를 다시 사랑해 달라고 애쓰고 보챘을 테지만. 그렇게 붙잡는 사랑이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건강하지 않다는 것 하나는 확실히 배웠으니까. 당신이 처음 수차례 내게 노크했던 에너지가 줄어듦을 서운해하기엔 나 역시 죽을 것 같이 내 한 몸 던져 사랑을 구걸할 에너지가 없었다. 시작하는 것만 두려운 겁쟁이였지, 고삐만 풀리면 끝낼 줄 모르는 경주마 같은 내가 이제는 이탈도 서두르게 된 거다.


수년만에 우연들이 겹쳐 기적같이 시작했던 연애는 지속시킬 에너지원들이 부족해 그렇게 사그라들었다. 정말 이렇게 거짓말처럼 지나갔고 보내게 됐다. 정작 연애라고 할 만한 시간은 너무나 짧은데 부끄러울 만큼 속상해하고 있다.


이런저런 탓을 할 것 도 없이 다행이었던 건-

내가 아직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수 있음과 동시에

누구 하나 좋을 것 없는 파멸로 가는 길은 밟지 않을 용기가 생겼다는 것. 조금 서두를지언정 작별을 고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참 다행이었다.


그래서

쓸쓸하지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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