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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사람 Nov 16. 2024

오랜만에 보는 딸들 반갑지?

시간이 멈춘 아빠와 시간에 맡겨진 딸들

2024년 11월 12일 화요일

나란히 연차를 쓴 두 딸은

20년째 늙지를 않는 아빠를 보고 왔다.


군복무 사고로 장애급수까지 얻었던 건 아빠 생전에 가장 큰 불행 중 하나였겠지만 20년째 말끔하고 공기 좋은 국립현충원에 있게 된 건 딸들에겐 참 다행이었다. 기억도 온전하지 않은 장례 직후 말고 둘이 함께는 처음이었는데 이제는 딸들 모두 돌비석보며 너스레를 떨 정도로 나이를 제법 먹었다. 어느새 아빠랑 몇 살 차이 안 나는 우리 보고 꽤나 놀랐겠지?


자식들은 다 예쁘다지만 첫째 딸을 대놓고 제일 예뻐하지 않았냐며 그런 첫째 딸이 술잔 비우다 비석을 적시니, 둘째 딸이 큰딸은 허당이라고 혀를 찬다. 가져온 꽃으로 교체하다 거미를 보고 놀라 던진 첫째 대신 제일 어른인 둘째가 덤덤히 꽃을 고른다.


빼곡한 비석들 사이에 아빠만 꼬질하고 쓸쓸한 모습일까봐 쫄았지만, 아직 떠나지 않은 말간 가을 하늘 아래 말끔한 아빠를 보고 가슴언저리가 쿵 내려앉았다.

외로움 많이 타고 잘 웃던 확신의 xxFP 아빠가 이웃이 많아 다행이었다.


아빠랑 얼굴만 닮은 염세주의에 찌든 내성적인 쫄보 삼남매한테 다음 꿈자리엔 웃기는 춤사위 말고

‘번호 여섯개 콕 집어주면 더 잘할게!’

-라며 같이 웃다가 아빠가 이미 다시 태어나서 새 삶 살기 바쁠 수도 있다 둘째가 말하길래 그건 그거대로 좋네! 라며 끄덕끄덕.


40여년 살면서 생전 절반 넘게 아팠으면 그만 아파야지 응. 이제는 매년 꼭 함께 오고 가끔 너스레를 풀고 싶을 때 불쑥 또 만나러 갈게.


안녕.




맞다, 우리 집안 대는 아마 끊긴 것 같다는 비보도 함께 전했다. 웃기는 집구석이지 하하하. 그렇게 가고 아빠도 마음 편치 못 했을텐데, 그럭저럭 이리저리 치이고 들이받고 웅크리고 꿈지럭거리며 지옥에서 온 오뚜기들마냥 꼬박꼬박 일어나는 우리들 어때? 그래도 생각보단 꽤 잘 살아내고 있지?


다들 큰 사고 안 치고 사회에게도 서로에게도 짐이 되지 않도록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어. 몇발자국 주변에서 은은하게 사랑하고 쓸쓸하지 않을만큼 관심도 서로에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말이야. 이정도면 우리 잘 살아가고 있는걸까. 아빠한테 소원을 빌 수 있다면, 너무 긴 고단함에 남몰래 문드러지지 않게 돌봐주면 좋겠어. 나란히 잘 늙어갈게,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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