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루트
관광 보트에 앉아 보스포러스 해협의 바람을 맞았고, 낚시꾼들을 구경하며 갈라타 브릿지를 걸어 골든혼을 건넜다. 아슬아슬한 루멜리히사르 성벽에 올라 아시아 땅을 건너보았고, 잔뜩 멋부린 이스탄불 젊은이들을 구경하며 베벡을 걷고는, 배가 터지도록 거대한 쿰피르를 헤집어 먹었다. 조금 거창하게, 기념비적이라 부르고 싶은 이 여행 뿐만 아니라 이스탄불 여행 그 자체를 마무리하기에도 내가 묵었던 탁심광장과 이스티크랄거리는 좋은 곳이 아니었지만, 게다가 쏭크란을 앞둔 태국 남부보다 뜻밖에도 더 덥고 더 습했던 칠월의 이스탄불 날씨에 혼쭐이 났지만, 어쨌거나 나는 여행을 마치기 위해 이스탄불에 있었다.
2012년 7월 13일 오후 3시 24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터키에서의 마지막 글.
안녕하시어요.
이스탄불은 지금 오후 3시가 넘었어요.
32도라고 하는데 아이폰 날씨 어플이 말하길 필스라이크 36도래요.
신시가지인 탁심에 있는데 옷가게와 신발가게와 캠퍼와 망고가 있는 재미없는 동네입니다.
날이 너무 더워서 동네를 걷다보면 어디서 났는지 모를 물이 종아리를 타고 흘러내려요.
태어나 첨하는 경험.
한두 시간 후면 16킬로그람짜리 배낭을 메고 이 동네를 30분쯤 걸어야 해요.
그 전에 마음을 차분히 하기 위해 차이를 시켜 놓고 앉아 이러고 있지요.
이스탄불은 추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여타 큰 도시가 다르지 읺아요.
다른 점은 최고로 추하고 최고로 아름답다는 거예요.
오늘 아침
교수일 그만두고 왕자의 섬 꼭대기에서 악세사리 가게를 하는
하프 조지안 하프 아르메니안 터키아저씨를 만났는데 꼴이 무슨 마약쟁이 같아요.
지난밤의 술독으로 그지꼴을 하고선 아침부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네요.
이 아저씨 덕분에 인간별종들과 수다나 떠는게 딱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걸 오늘 아침 알게 되었어요.
참
이스탄불 차이는 시골보다 세배 묽고 세배 비쌉니다.
배낭의 무게는 대개 십 킬로그램 전후였다. 십 킬로그램이 내가 배낭을 짊어지고 한동안 고통스럽지 않게 걸을 수 있는 최대값이었다. 싼값에 눈이 멀어 유리병에 든 꿀을 산다던가, 몇 푼 아끼려고 커다란 용기에 든 샴푸를 샀을 때,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배낭에 쑤셔넣었던 향 빠진 커피가루나 묵직한 간식 따위들이 거기에 더해지면 배낭은 버거운 짐이 되었다. 아마 그때의 무게가 십이 킬로그램 정도이지 싶다. 이스티크랄거리의 후미진 구석 작은 찻집에서 마지막 챠이를 마시며 짐작했던대로 아타튀르크공항 체크인 카운터의 수하물 저울에 올라간 배낭의 무게는 16.0kg이었다. 배낭이 이렇게 무거워진 이유는 핑계를 대자면 시티은행 현금인출기 때문으로 수중에 돈이 간당간당하여 "시티방크 네레데?" 탁심광장 어딘가에 있다는 현금인출기를 찾아 습식사우나처럼 습하고 뜨거운 한낮의 도심을 두 시간 반 동안 헤메고 다녔더니 잔뜩 약이 올라 보상심리 비슷한 것이 발동하여 필요보다 돈을 더 많이 찾게 되었다. 간당간당만큼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것도 없고 뭐. 돈이 넉넉히 있으니 폼나게 차려입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전통 터키 요리를 맛본다거나 질 좋은 캐시미어 스카프를 살 수도 있었을텐데 태생이 그렇지 못한 나는 역시나 돈을 아끼며 며칠을 보내어 이스탄불에서의 마지막 밤이 되었을 때에는 남은 돈으로 고작 수퍼마켓과 로쿰 가게에서 할와와 로쿰처럼 무거운 것들을 잔뜩 사고 말았던 것이다. 내가 묵었던 숙소는 굴러떨어지면 모가지가 부러지거나 반신불수가 되기 딱 좋은 좁고 어둡고 가파른 원형 계단을 가진 호스텔로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여성용 도미토리를 건물 꼭대기층인 오층에 만들어 놓았다. 십육 킬로그램의 배낭을 등에 달고 오층 계단을 내려오는데 까마득한 시간이 걸렸다. 그 꼴을 해서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땅바닥만 보며 이스티크랄거리를 걸을 때의 나의 모습은 자기 머리 위로 스무 뼘은 더 높이 올라간 짐을 굽은 등으로 짊어지고 해발 오천 미터 고개를 넘는 네팔리의 그것이었을 것이다. 공항버스를 기다리며 땅바닥에 내팽개친 배낭을 버스 짐칸에 실을 때는 차장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해 차장이 짐칸에서 꺼내 땅바닥에 내팽개친 배낭은 짊어질 방법이 없었다. 호스텔에서는 배낭을 침대로 끌어올린 다음 몸을 낮춰 배낭에 몸을 집어 넣고 끄응 비명을 지르며 방바닥을 짚고 일어설 수 있었지만 복잡한 공항도로 한복판에는 배낭을 올릴만한 곳이 당연히 없었다. 두손으로 배낭을 질질 끌어 인도 위로 올렸다. 저멀리 카트가 눈에 들어왔지만 그것은 복잡한 아타튀르크공항에 배낭을 혼자 내버려두고 가지러 갈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지 않았다. 누군가 내 근처에 빈 카트를 버리고 가길 기다려 보기도 했는데 깍쟁이같은 이스탄불공항은 동전을 넣어야 카트를 쓸 수 있기 때문에 아무도 아무 곳에나 카트를 버리지 않았다. 당시 터키 리라의 가치가 지금의 세 배가 넘었으니 당연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배낭 메는 순서를 되짚었다. 배낭을 두손으로 들어올린다. 배낭이 가슴 높이에 오면 배낭을 오른쪽으로 돌림과 동시에 오른손을 떼고 오른쪽 어깨끈에 팔을 끼운다. 왼팔을 왼쪽 어깨끈에 끼운다. 심호홉을 하고 배낭을 가슴께까지 들어올렸다. 잽싸게 오른손을 떼려는 순간, 쿵! 나는 그만 배낭과 함께 바닥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졌다기 보다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하는게 옳겠다. 크고 묵직한 소리와 함께 만화에서처럼 비현실적인 모션으로 똑바로 서있다 직각으로 쿵! 내 앞에서 건물에 기대어 담배를 피고 있던 유니폼을 입은 중년 여자가 순간 웁! 하고 놀라며 담배를 쥐고 있던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고 이내 풉풉풉!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와 눈을 맞추며 넘어졌으니 내가 생각해도 매우 웃겼을 것 같다. 저 멀리서 웬 신사가 "마담! 아유 오케?"라고 외치며 달려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마담 안 오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서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나는 체크인 카운터 앞에 서서 16.0이라는 숫자를 내려다 보며 나의 짐작이 맞았음에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인천까지 열 시간이 걸렸다. 비행기를 타는 일은 여전히 놀랍고 신기해서 우리가 집으로부터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하루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더러운 침대 때문에 침대 밖 세상 또한 아름답지 않다고 느껴질 때,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마음 속이 불안과 분노로 엉망일 때, 잔뜩 기대했던 정상에 올랐지만 정작 내가 서있는 곳이 단지 안개 속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여행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다면 여행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터키의 수많은 오토가르에서, 아르메니아의 황량하고 음습한 호숫가에서, 조지아의 쓰레기 나뒹구는 바자리에서...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을 털고 여행을 계속했던 나 자신에게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를 태운 비행기가 물리적 거리를 초월하고 시간을 밀고 당기며 나를 집으로 데려가는 동안 내 오른쪽 허벅지는 여행의 마지막 에피소드로 점차 물이 들었고 한국에 도착했을 때에는 자줏빛의 거대한 멍을 피어올렸다. 멍이 사라지는데 한 달쯤 걸렸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자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