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여행의 상관관계.
1.
공항에서 시내로 간다는 버스에 올라 운전기사에게 깍듯이 인사하고는 '안가라 호텔'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의 등장에 운전기사와 몇 안 되는 승객들은 꽤 즐거운 눈치였다.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은 청년에게 우리의 존재를 잊지 말라는 의미로 껌을 하나 건넸는데, 버스의 차장인줄 알았던 청년은 우리처럼 그냥 승객이었다. 도심으로 들어간 버스는 금새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맨 앞자리에 앉아 운전기사가 보낼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고 연신 모가지를 쭉 빼고 있던 나는, 중년 여성들의 커다란 엉덩이에 시야가 가리자 자리에서 일어나 기사에게 다시 한번 안가라 호텔을 환기시켰다. 이제 내 주변의 승객들은 내가 안가라 호텔에서 내리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후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나는 그녀에게 인사하고 배낭을 들쳐 업었다. 운전대를 돌리던 기사도 나에게 시선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가라 호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외워 간 두 마디 인사에 운전기사는 신나는 표정을 지으며 차에서 내리려고 폼을 잡고 있던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마이크를 건넸다. 다시 해 보라고. 그 인사.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나의 인사와 함께 승객들의 웃음 소리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한 그 낡은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이보다 더 좋은 시작은 없었다.
서울에서 예약한 호스텔은 안가라 호텔에서 오 분쯤 떨어진 곳이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잘생긴 청년과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얼굴과 몸매가 출중한 그의 여자친구가 천사 같은 얼굴로 우리를 맞았지만 그들이 전해 온 바이칼의 화재 소식은 우리를 황망하게 만들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면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일주일이 걸린다. 두 도시로부터 사나흘 거리에 있는 이르쿠츠크는 바이칼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그 긴 여정의 가운데 위치해 쉬었다 가기 충분하다. 그동안 못했던 목욕도 하고 떨어진 식량도 채우고. 많은 여행자가 찾는 곳이라더니 ‘여행자 센터’는 제 구실을 똑 부러지게 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필요로 했던 모든 정보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리스트뱐카에서 돌아와서 묵을 이르쿠츠크의 숙소까지 수배해 대신 예약해 주었다. 각종 지도와 정보를 얻어 버스터미널로 가던 길의 이르쿠츠크 모습.
2.
리스트뱐카에서 이르쿠츠크로 돌아올 때는 버스 요금과 같은 값에 사설 택시를 탔다. 젊은 차 주인은 운이 좋게도 우리 외에 두 명의 손님을 더 태웠다. 카잔에서 휴가 차 왔다는 형제 중 동생이 내 옆에 앉았다. 쿠션이 푹 꺼진 뒷자리에 앉아 그는 알타이의 경이로운 자연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싸이가 군대에 두 번 간 이야기로 답했다. 자작나무 숲 사이로 곧게 뻗은 도로를 달릴 무렵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영은 아까부터 고개를 파묻고 졸고 있었다. 험악한 인상의 운전자는 생긴 것과 다르게 부드럽게 차를 몰아 약속했던 도심 한복판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언제부터 비가 내렸는지 길바닥은 이미 발목까지 물이 차 있었지만 차 주인은 신발이 젖는 것도 아랑곳 않고 트렁크에서 배낭을 꺼내 우리 등에 메 주었다. 두 형제와는 차 앞에서 헤어졌다. 이르쿠츠크를 구경하고 다시 리스트뱐카에 돌아간다는 그들에게나, 무거운 배낭과 함께 어딘지 모르는 숙소를 찾아야 하는 우리에게나 분명 좋은 날은 아니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여행자 센터’의 직원이 망설임 없이 지도에 표시했던 호텔의 위치는 잘못돼 있었다. 호텔은 그녀가 표시한 지점에서 한 블록 더 뒤에 있었기에 그것을 알 리 없는 우리는 차가운 빗속에서 꽤 오랜 시간을 헤맸고, 가던 길을 돌아 우리를 호텔 앞까지 데려다 준 어느 행인 덕분에 진 빠지는 우왕좌왕을 마칠 수 있었다. 고생 끝에 호텔에 도착했지만 역전 여인숙과 같은 호텔을 지키고 있는 중년의 두 여성은 ‘여행자 센터’에서 러시아어로 적어 준 예약 메모와 우리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우리 또한 러시아어를 알지 못하니 사정을 알 수 없었지만,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고 종이에 숫자를 적어 우리에게 내미는 것으로 미루어 우리가 묵을 다른 호텔을 찾는 듯 했다. 점심도 굶고 비에 쫄딱 젖어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나는 다른 어디로도 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들이 보여 준 숫자는 우리가 준비한 방값의 두 배가 넘었다. 빈 방이 있는데도 우리를 재워 줄 수 없다니 아마도 우리가 외국인이기 때문인가 싶어, 나는 알고 있는 단어를 총동원해 ‘여행자 센터’로 전화해 볼 것을 그녀들에게 부탁했다. 전화를 걸고, 기다리고, 오는 전화를 받고, 서로 상의를 한 후에야 그녀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열쇠를 내주었다. 그 작고 차가운 열쇠를 받기까지 한 시간 하고도 반이 걸렸다.
구멍이 숭숭 뚫린 운동화를 신고 질척대는 진흙탕을 걷는 것만큼 싫은 일도 없다. 몹시 지쳐 있었기에 따뜻한 호텔 방에서 좀 쉬고 싶었지만, 호텔 방은 따뜻하지도 않거니와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침대에 앉는 것만으로도 창 밖 대로를 달리는 트램과 버스와 자동차와 사람과 개와 고양이와 쥐와 바퀴벌레의 진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관광객으로서 맡은 바 본분을 다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비는 아까보다 잠잠해져 있었지만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차도는 개천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차들은 옆에 사람이 지나든 말든 안중에도 없이 누런 빗물로 커다란 날개를 만들며 빠른 속도로 제 갈 길을 달렸다. 우리는 똥물을 뒤집어쓰는 일만은 피하기 위해 보도 안쪽에 바짝 붙어 걸어야 했는데, 툭하면 커다란 물 웅덩이나 진흙탕에 막혀 먼 길을 돌아야 했다. 발치에 온 신경을 쏟으며 걷다 보니 다른 곳에 주의를 돌릴 틈이 없었고 그것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조차 마찬가지여서, 지영은 바뀐 신호를 미처 보지 못하고 그녀를 들이받을 기세로 달려오는 다 썩어빠진 버스에 놀라 자빠질 뻔 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그때 놀란 마음을 하루 종일 속에 품게 되었고, 나는 아까부터 축축하게 젖어 있는 신발과 비 오는 날 특유의 멀미 나는 매연 냄새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러니, 탄내 가득했던 리스트뱐카에서 돌아온 우리가 이르쿠츠크를 어떤 기분으로 둘러봤는지는 말 안 해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
여행했던 곳 중에서 어디가 제일 재미 없었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비엔나라고 대답한다. 8월 초였고, 비가 왔고, 욕을 먹어도 쌀 만큼 추웠다. 그곳에 있던 내내 그랬다. 하여 어디를 가면 고생이었고,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었기에 그 비싼 도시에서 즐거울 리 없었다.
아르샨에서 돌아온 이르쿠츠크는 눈이 부셨다. 바싹 마른 길거리, 구름 한 쪽 없는 파란 하늘, 예쁜 색의 건물들, 달콤한 과일 향기 가득한 시장, 즐거운 복장의 사람들. 그 사이 바뀐 것이라고는 날씨뿐인데, 도시는 놀이동산처럼 활기에 넘쳤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스피커에서 경쾌하고 발랄한 음악이 도시 전체에 흘러 나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더 이상 땅바닥만 보며 걷지 않아도 되자 그제야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파리’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라파예트와 쁘렝땅 백화점이 전부인지라,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의 파리’가 맞네 어쩌네 말할 수는 없지만, 햇빛 아래의 이르쿠츠크는 ‘작은 파리’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와 확실히 닮은 모습이었다. 날씨에 감탄하며 딴판으로 변한 도시를 우리는 즐겁게 걸었다. 중앙 시장에서 체리를 사 먹었고, 보행자 거리를 걸을 때는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기념품 가게에서 자질구레한 선물을 몇 개 샀고, 우연히 들른 주방용품점에서는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체즈베를 싼 값에 구하기도 했다. 알혼섬에 들어가지 않아 남은 돈으로는 슈퍼마켓에서 비스켓과 홍차와 초콜릿을 샀고, 새벽에 공항으로 갈 택시값만 남겨두고 남은 동전을 탈탈 털어 또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하루 종일 걷고 하루 먹일 먹었다. 그러는 사이 오래된 교회를 구경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충분히 즐거웠다. 장 본 짐을 배낭에 쑤셔 넣고 저녁에는 호스텔에서 가까운 강변으로 산책을 갔다. 바이칼 호수를 채우는 것은 365개의 강물이지만 바이칼의 물이 빠져나가는 곳은 오직 안가라강뿐이라고 했다. 안가라는 더 북쪽의 예니세이강과 합쳐져 북극해로 흘러간다. 바이칼에서 북극으로. 저 위 까마득한 북극으로. 죽자고 덤비는 모기를 쫓으며 가로등 불빛에 금빛 물결을 일렁이는 검은 강물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