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발칸
미지에 대한 자극제는 다양했다. 때로는 누군가가 쓴 한 토막의 글이었고, 때로는 누군가가 찍은 소담한 사진 한 장이었으며, 누군가의 얼굴에 달라붙은 젖은 머리카락이었고, 환하게 웃는 누군가 앞에 놓인 국수 한 그릇이었다. 대개 그것들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내 마음 깊은 곳 어딘가를 건드리면 나는 달력과 통장을 넘기며 마음을 졸였다.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루마니아 북부 마라무레슈 어느 마을의 교회라고 했다. 일주일의 시간으로 불가리아 대신 루마니아를 여행하면 어떻겠냐고, 부쿠레슈티를 출발해 북부의 사진 속 교회를 구경하고 다시 부쿠레슈티로 내려오면 어떻겠냐고, 여행 중에 만난 루마니아에 대해 잘 알고 있거나 혹은 루마니아를 여행한 적이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물었다. 나의 질문에 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정신 나간 짓이라거나, 불가능한 일이라거나, 하여간 표현만 달랐지 모두 같은 의견이었다. 루마니아 땅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꼭 그곳에 가고 싶었다. 그곳에 간다면, 아니 루마니아에 간다면 분명 즐거울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불가리아가 아닌 루마니아에서 만나면 어떻겠냐고 물었고, 언제나 그렇듯 그는 아무래도 좋다고 답하고는 소피아행 항공권을 취소하고 부쿠레슈티행 항공권을 새롭게 예약했던 것이다.
브르사나(Bârsana)마을의 브르사나 수도원의 일요 예배는 11시에 시작된다고 했다. 우리는 9시쯤 바두 이제이 마을의 숙소를 나섰다. 차창 밖의 풍경은 들뜬 마음에 기름을 붓기에 충분했다. 목가적인 전통 가옥, 푸른 들판, 드높은 하늘, 흩어졌다 뭉쳤다 다시 흩어지는 뭉게구름, 그리고 빨간 혹은 초록의 전통 의상을 차려 입고 길을 걷는 사람들. 다들 일요 예배를 보러 교회로 향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브르사나 수도원에 도착한 시간은 10시쯤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언덕 위 교회로 이어진 잘 닦인 보행로는 오르는데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교회 안에 들어서자마자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간질간질 일렁였다. 교회는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눈부시게 빛나는 푸른 언덕, 하늘 높이 뾰족이 솟은 나무 지붕의 교회,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마당, 그 마당 여기저기 마치 꽃처럼 서서 예배를 보는 사람들, 그들이 입고 있는 붉고, 푸른 아름다운 전통 의상, 그리고 이 모든 것들 사이사이를 메우던 수녀들의 영롱한 노랫소리. 가슴이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뛰었다.
정교회 예배는 80% 가까이가 음악이라고 한다. 노래로 기도하고 노래로 예수의 말씀을 전한다. 정교회의 교회음악은 비잔틴음악으로,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온전히 사람의 목소리로만 노래한다. 악기 사용은 애초부터 기독교 믿음의 엄숙한 특성과 가치에 부합되지 않는 위험 요소로 여겨졌다. 악기는 기도나 성가의 내용으로의 몰입을 방해하고 악기의 소리에 더 집중하게 만듦으로써 거룩한 예배의 본질을 훼손시킬 위험이 있는 것이다. 또한 악기는 내적 변화와 신심을 고양시키기보다 그저 감상주의를 불러일으켜 귀를 만족시키고 즐겁게 해주는데(이것은 나의 경우와 꼭 맞다), 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지는 모르나(이 또한 나의 경우!), 참된 회개와 영적 신심을 이끌지 못한다(이것도 나다!). 악기가 등장하는 화려한 성가는 신자의 기도를 방해하고 그 리듬에 동화되어 몸으로 박자를 맞추는 행동을 유발하는데(‘아가동산’류의 사이비 종교에서 많이 본 모습!), 이는 참된 기도와 동떨어진 모습이라 여긴다. 로마가톨릭 역시 8세기까지는 예배에서의 악기 사용을 금했으나 점차 악기를 도입하여 13세기에 보편화되었다. 어쨌거나 신의 부재에 대해 그동안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나는, 터키의 메소포타미아 평원에 있는 마르딘에서 시리아 정교회(마르딘에서 시리아까지 20km 남짓이다)의 예배를 지켜본 후로 그 확신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유는 단지 노래로 기도하는 예배가 하도 아름다워서.
정교회는 일요일 한 번의 예배를 보고 이를 성찬예배라고 한다. 성찬예배 전에는 한 시간 정도의 아침예배가 있고 아침예배와 성찬예배 사이에는 사제와 보제가 비공개로 진행하는 준비예식이 있다. 아침예배에서 시작된 이 모든 의식은 쉬는 시간 없이 치러지며 총 세 시간이 넘게 걸린다. 우리가 도착한 것이 10시쯤이었으니 아마도 그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침예배인 듯 보였다. 정교회는 긴 예배 시간 탓에 좀 유연한 면이 있어서, 교회에 늦게 나타난 신도들이 예배를 방해하는 행동들, 제단 쪽으로 걸어가고, 성화 앞에서 기도하고, 성화에 입을 맞추고, 초를 켜느라 왔다 갔다 하는 등에 관대하다. 또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예배를 보는 동안 앉는 것 역시 허용된다.
이태리 밀라노에서 이주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는 사라의 부모는 여름휴가를 맞아 고국에 왔다고 했다. 브르사나는 주민 몇 천의 작은 마을이지만 브르사나 수도원은 루마니아뿐만 아니라 바깥세상에도 유명한 곳이었다. 마라무레슈 지역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과 형태로 지어진 목조 교회가 백여 개 흩어져 있는데, 그중 여덟 곳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며 브르사나 수도원도 그중 하나이지만 리스트에 올라 있는 그 브르사나 수도원은 마을 서쪽에 버려진 듯 놓여 있고, 지금 이곳은 1990년대에 새로 지은 것이다. 지루해서 몸을 배배 꼬고 있는 사라에게 떨어진 잡초를 주워 다발을 만들어 건넸다. 환하게 웃는 아이의 모습에 하나 더 만들어 주었더니 사라가 풀을 뜯어 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잔디밭으로 들어가 양손으로 한 움큼씩 풀을 뜯어 내 앞에 신나게 쌓아 놓았다. 공갈 젖꼭지 뱉어내고 동생 이리아나도 합류했다. 엄마와 아빠, 할머니가 아무리 말려도, 몸을 들어다 딴 데 옮겨놓아도 사라와 이리아나는 어느새 엉금엉금 기어 와 내 앞에서 해맑게 웃었다. 그렇게 웃는 아이들의 밤톨만한 주먹 밖으로는 잡아뜯긴 풀과 꽃이 삐져나와 있었다.
한껏 차려입은 두 아가씨는 티미쇼아라에서 왔다고 했다. 지루하고 뜨겁고 다리 아프기는 이들도 마찬가지.
“근데 너희는 일요일마다 이렇게 입어?”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물었다.
“아니야, 여기 오느라고 예쁘게 입은 거야. 여기서 사진 찍으면 엄청 예쁘게 나오거든.”
소곤소곤 그들이 대답했다. 브르사나 수도원은 이들에게도 특별한 곳이었다. 성지순례의 명소이자 나들이 장소인 것이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무렵 영성체가 시작되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제단을 향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 모습은 확실히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신자들이 많으니 영성체도 오래 걸렸다. 남편과 나, 철저한 구경꾼인 우리는 제단이 잘 보이는 높은 화단 한구석에 서서 그 인상 깊은 광경을 벅찬 가슴으로 지켜보았다.
영성체가 예배의 마지막 순서인 듯 보였다. 영성체를 받고 돌아나오며 테이블 위에 준비된 빵을 한 조각씩 집은 사람들은 그 길로 교회를 빠져나갔다. 다른 도시에서 혹은 다른 나라에서 우리처럼 특별히 작정하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기념 촬영 순서가 남아 있었지만 그 마지막 예식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넓은 교회 마당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교회를 빠져나간 것은 깜짝 놀랄 만큼 순식간이었다. 우리는 그 모습 또한 감탄하며 즐겁게 지켜보았다. 그런 다음 한산해진 교회를 둘러보았다. 나무 계단을 올라 교회 안 성화를 살폈고, 나무 주량에 새겨진 조각을 손으로 쓸었다. 일주일의 가장 큰 일을 마친 사제가 축성을 받은 신도들로부터 받은 이런저런 돈봉투들을 들고 사제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에 남편은 또다시 종교는 마약이네 따위의 묵은 소리를 했던 것 같다.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모든 것이 나에게는 마법 같았다. 푸른 하늘도, 뾰족한 교회 지붕도, 예쁜 옷을 입은 사람들도, 간지러운 꽃향기도, 사라의 그 싱그러운 웃음도. 수녀들의 노랫소리는 특히나 아름다웠기에 툭하면 다른 사람으로 빙의하기 좋아하는 나는 '아, 나도 수녀가 되어 그들과 함께 서서 노래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교회 마당으로 내려오니 안 가고 기다리고 있던 사라가 나를 발견하고 저 멀리서부터 뛰어와 내 배에 안겼다. 정말이지 이날은 하루 종일 가슴이 뛰어 죽는 줄 알았다. 없던 신심이 다 생길 정로도.
그런데,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교회는 아까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덜 아름답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