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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May 02. 2016

[14] 즐거운 공동묘지_루마니아 서픈차.

1부-발칸

루마니아 북부는 카르파치아 산맥을 사이에 두고 북동부 부코비나와 북서부 마라무레슈 지역으로 나뉘며 해발 1,416m의 프리슬롭(Prislop) 패쓰를 넘는 N18번 국도가 이 두 지역을 연결한다. 우리의 목적지는 마라무레슈 중북부,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작은 마을 서픈차(Săpânța)였다. 


창 밖으로 싱그럽고 푸르른 시골 풍경이 한동안 펼쳐졌다. 이런 산골짜기에서 그 눈부신 광채를 숨기고 있기에 너무나 아까운 하지만 이런 곳이기에 가능했을 낯선 아름다움에 우리는 넋을 잃었다. 파란 하늘 아래 연두빛 조각보 밭, 초록의 나무들, 양철 지붕을 얹은 작은 집들, 모두가 햇빛에 반짝였다. 차창을 내리면 깜짝 놀랄 만큼 차갑고 맑은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들어와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고 그 간지러움에 꺅 하고 짧은 비명을 내뱉고 나면 이제 우리를 둘러싼 것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전원의 풍경과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 그리고 울퉁불퉁 구멍이 파인 길을 달리느라 애쓰는 타이어의 소음 뿐이었다. 우리는 앞으로 뒤로 옆으로 몸이 사정없이 출렁이는 와중에도 마음으로 웃고 있었다.   

이런 풍경이 펼쳐졌으니까.
우리의 루마니아 하이라이트, 마라무레슈에 들어 온 기념으로 차를 세웠다.

    

산을 넘는 일은 이러했다. 골짜기에 숨은 예쁜 농촌 마을들을 지나 조금은 지루한 길을 따라 산으로 접어든다. 산의 허리춤에 이르면 빼곡한 나무들 사이를 달리고 한참을 그렇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허허로운 정상 부근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시간과 거리를 가늠하느라 GPS와 구글 지도를 통해 미리 보았던 뱀이 기어가는 듯 지그재그 꼬불꼬불한, 가끔은 90도로 나 몰라라 꺾인 도로를 실제로 달릴 때에는 막상 우리가 얼마나 심난한 길 위에 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기골이 장대한 나무들 사이에 있어 공간에 대한 인지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지 싶었다. 그만큼 루마니아의 나무들은 대단했다.  


루마니아에서 가장 높은 고갯길이라는 프리슬롭 패스의 정상까지 두세 시간 걸렸다. 겨울에는 눈 때문에 길이 막힌다고.


흰 몸뚱이, 검은 얼굴, 붉은 털.


죽어 묻히기에 나쁘지 않아 보였으나 새 것 같은 묘비에는 죽은 이의 이름이 하나도 없었다.


패스 정상에 이런 대형 교회가. 성 트리니티 교회. 역시 새 것이었다. 


그 험한 길로 건축 자재 실어 날라 이렇게 거대한 교회를 지었으니 매서운 바람 이기고 천년만년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길...


교회가 바라보고 있는 언덕에 올라가 보았다.


산을 오른 시간만큼 산을 내려왔다. 230km거리, 여섯 시간 넘게 걸렸다.


Cimitirul Vesel. Merry Cemetery. 즐거운 묘지.



나무 조각 일을 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무명의 이온 스탄 퍼트라슈(Stan Ioan Pătraș)가 그의 나이 스물 일곱이던 해인 1935년 나무 묘비에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리고 망자를 표현할 묘문을 적어 넣기 시작했다. 그는 1977년 죽을 때까지 700개가 넘는 묘비를 만들었고 그가 죽자 도제인 두미트루 포프(Dumitru Pop)가 그 일을 물려 받아 마을 사람들의 묘비를 만들고 있다. 서픈차는 작은 농촌이라 동네에 비밀이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훤히 알고들 지내는 사이이기에 망자를 거짓으로 포장하는 일도, 허물을 적당히 덮는 일도 부질없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하여 묘비는 죽은 이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 칭찬뿐만 아니라 잘못 또한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데, 밝고 화사한 색, 만화처럼 귀여운 그림과 함께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각각의 색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어, 서픈차 블루라는 이름을 갖게 된 파란색은 희망과 자유와 그들 고향의 하늘을, 초록색은 삶을, 노란색은 번식을, 빨간색은 열정을, 검은색은 죽음을 상징한다. 오크 나무로 만들어진 푸른 묘비들은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양면 모두에 그림과 묘문이 적힌 것들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루마니아어로 적힌 묘문의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묘비에 묘사된 그림만으로도 죽은 이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혹은 어떻게 죽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목이 잘려나가 피 흘리는 몸통과 머리통이 따로 노는, 후대에 길이 남을 죽음을 맞이한 이도 있었는데, 하지만 대개는 남자든 여자든 가축을 돌보거나 밭일을 하는 그림이 다수였고, 그렇지 않은 경우 여자들은 주로 부뚜막, 재봉틀, 베틀 앞에, 남자들은 술집이나 자동차, 마차 등과 함께 등장했다. 묘비 앞에 서서 꼼꼼히 묘문을 읽으며 때로는 고개를 끄떡이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혀를 차던 루마니아 사람들의 모습에 그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여 인터넷에서 몇 개 찾아 보았다.



‘시비우에서 온 망할 놈의 택시야, 루마니아 땅이 이렇게 넓은데, 왜 다른데 가서 서지 않고, 하필이면 우리 집 앞에 서서, 나를 치고, 우리 부모님을 슬프게 하냐. 지옥 불에 타 죽어랏!’


‘이 무거운 십자가 밑에 우리 시엄니가 누워 계시지. 그녀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혀. 혹여 울 시엄니 깨서 집에 돌아오면 그녀가 내 머리통을 물어 뜯을 테니까.’


‘내 이름은 포프 그리오게. 트렉터는 나의 기쁨, 나의 슬픔은 와인에 빠뜨렸지. 나는 힘들게 살았어.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네. 그건 운명이었어. 죽음이 나 또한 일찍 데려갔지. 내 나이 겨우 33살에.’ 


‘나 여기 묻혀 있네. 내 이름은 스테판. 나 사는 동안 술 참 좋아했지. 마누라가 떠났을 때 너무나 슬퍼서 아주 많이 마셨다네.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나는 행복해졌어. 그러니 뭐 마누라가 떠났어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얘기야. 게다가 같이 마실 술 친구도 많았거든. 헌데 나는 여전히 목이 말라. 여보게, 거기 누구, 나에게 와인 조금만 갖다 주련?’


‘내 이름은 스탠 메리. 나는 살면서 러그를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팔았어. 하지만 나는 오래 살지 못했지. 병에 걸려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져야만 했어. 나는 정말 오래 살고 싶었다우. 우리 손주 새끼들도 돌보고 우리 엄마도 돌보면서 말이야. 나는 59살에 죽었다네.’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미레슐루이 언덕에서 놀고 있을 때 죽음이 나를 찾아 왔어. 나는 마차 바퀴에 깔렸어. 마차가 나를 절단 냈지. 아, 엄마. 엄마는 평생 슬퍼하겠지. 나는 십 년 동안 흙장난만 쳤는데 우리 엄마에게 슬픔만 안겨줬네.’   


‘내 이름은 스탠 게오르게. 내 불쌍한 삶은 얼음처럼 녹아 내렸네. 내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일라이쟈가 나를 쳤지. 우리 아버지 어머니 슬퍼서 어찌 하노. 나는 겨우 19살이었다네.’


일라이쟈가 동네 사람 이름인줄 알았는데 성인의 이름이었다. 예로부터 성 일랴이쟈의 날(Saint Elijah’s day)에는 노동을 멈추고 축일을 기려야 하는데 이를 어기면 성인이 분노하여 일하는 사람에게 번개를 내려 벌한다 했다. 무슨 성인이 그 따위... 어쨌거나 묘문이 1인칭 시점으로 쓰여졌다는 점이 재미있는데 그러다 보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내 묘비에는 어떤 글이 새겨질까.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



즐거운 묘지를 나와 시게츄(Sighetu)를 지나 바두 이제이(Vadu Izei)라는 마을에서 잘 곳을 구했다. 작은 과수원과 너른 들을 가진 팬션이었다. 우리가 얻은 찻길과 면한 가장 저렴한 방은 루마니아 전통 문양이 그려진 접시와 러그 등으로 꾸며진 소박한 곳이었다. 마당에서 저녁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두루뭉술한 허리에 풍만한 엉덩이를 강조한 전통 플레어 스커트를 입은 주인장 아주머니가 재료를 다듬고 끓이고 볶고 찌는 사이에 풀어 키우는 닭을 모아 모이를 뿌리고 양들에게 꼴을 던졌다. 마당 한구석 화덕에서는 저녁상에 올라올 구이가 요란하게 연기를 뿜었고 오븐에서 금방 꺼낸 케익은 조리대 위에서 김을 식히고 있었다. 우리는 저녁밥이 다 되기를 기다리며 펜션의 뒤뜰(이라고 부르기에 너무나 넓었지만)과 과수원에 물든 석양이 푸른 어둠에 걷힐 때까지 산책을 했는데 신경은 온통 저녁밥이 다 되었다고 언제 우리를 부르나에 가 있있다. 처음으로 먹는 루마니아 가정식이었기에 그럴 만도 했다. 기대만큼 식사는 풍성하고 훌륭했다. 보통 음식에 대해서는 그것이 낯선 것이든 익숙한 것이든 선뜻 의견을 내지 않는데,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에서다. 메인 요리를 먹지 않고 맛이 있었네 없었네 해 보았자 별로 신통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하여간 식사는 만족스러웠다. 차조를 쪄서 어묵처럼 뭉친 것을 맑은 국물에 끓인 스프, 여러가지 채소 볶음, 샐러드, 치즈, 그리고 디저트로 산딸기 쨈을 바른 바닐라 케이크를 먹었다. 야외에서 밥을 먹기에 꽤 추운 날이라 음식이 식는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옆 탁자의 대가족 손님들은 밥을 먹다 말고 하나 둘 사라졌다가 두꺼운 겨울 잠바를 갈아 입고 돌아왔다.


"와인도, 주이꺼도 마음껏 드세요. 술을 마시면 춥지 않아요. 마셔요, 실컷."


보온 커버를 뒤집어 쓴 술병이 문탁한 소리를 내며 탁자에 놓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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