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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텔마릴린 Nov 12. 2015

[2] 로컬의 일상_마케도니아 카바다르치.

1부-발칸

마케도니아 비톨라 행 버스를 기다리며 오흐리드 버스 터미널의 플랫폼 앞에 앉아 있었다. 버스표를 샀던 어제 오후의 활기차고 분주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른 아침의 터미널은 그저 을씨년스러웠고 살이 몇 개씩 나간 나무 벤치는 코 끝이 찡할 만큼 차가운 아침 공기를 축축하게 머금고 있었다. 내가 앉은 벤치 뒤편 낮은 철재 울타리 밖에 두 개의 커다란 쓰레기통이 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이십 대로 보이는 남자 둘이 쓰레기통에 상체를 처박고 깡통이나 병 따위들을 주워 비닐봉지에 옮겨 담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발칸 '도시 남자'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셔츠는 구김 하나 없었고, 허리춤 벨트의 버클은 눈부시게 빛났으며, 거울 앞에서 오랜 시간 공을 들였음이 분명한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잘 다려진 옷을 차려 입고 정성을 다해 머리에 힘을 준 다음 거울 앞에 서서, "자, 오늘도 쓰레기를 주우러 나가 볼까!" 라고 했을 그들을 상상하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언제나처럼 그날도 나는 버스 출발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터미널에 도착했다. 심심하고 지루해서 몸을 배배 꼬고 앉아 땅바닥 여기저기에 납작하게 붙어 있는 담배꽁초의 개수를 세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삼십 여분이 지났을 무렵, 내 쪽으로 자기 몸 절반 크기의 다 해어진 트렁크를 끌고 한 여자가 다가왔다. 나는 무료한 시간을 달랠 기회를 놓칠세라 엉덩이를 잽싸게 들어 옆으로 옮겨 앉았고,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를 보며 쌩긋 웃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 옆에 앉으며 그녀는 놀랍게도 "Good morning!" 이라고 인사했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서로 눈이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인사를 잘하는 발칸 사람들이지만, “즈드라보!”, “도바르단!” 등 그들의 인사말로 인사를 하거나 눈 웃음으로 인사를 했지 현지인 그 누구도 내게 먼저 “굿 모닝!” 이라고 인사한 적이 여행을 시작한 이래 없었기 때문이다. 내 옆에 앉은 그녀의 차림새 역시 발칸의 도시 남자들 못지 않았다. 눈에는 날카롭고 매끈하게 아이라인이 그려져 있었고, 검은 마스카라를 칠한 속눈썹은 풍성하게 하늘로 솟아 있었으며, 광대뼈는 복숭아 빛으로 빛났다. 맨 얼굴에 안경을 쓰고 뻗친 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묵고 있던 나는 시간 장소 상황을 불문하고 늘 한결같은 모습이기 때문에 '여행 중'이라는 핑계를 댈 수도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드라가나. 오흐리드가 집인 그녀는 학교 때문에 마케도니아 남동부 소도시 카바다르치에서 이모네 식구와 함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카바다르치 시내의 'City Art Cafe'에서 풀 타임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할 즈음 버스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버스표에는 좌석 번호가 찍혀 있었다. 하지만 가장 인기가 좋은 오른쪽 맨 앞 두 좌석(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다)을 제외하고 아무 곳에나 앉아도 상관없다며 나란히 앉아 가자고 그녀가 나를 이끌었다. 오흐리드에서 비톨라까지 두 시간 반 정도 걸리고, 그녀의 목적지인 카바다르치까지는 거기서도 두 시간 이상을 더 가야 하니 지루하고 답답하기는 그녀 또한 마찬가지일터였다. 우리는 버스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에게는 오 년 전 페이스북에서 만나 영혼의 짝이 된(그녀는 그럴 수 있는 나이이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안젤라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고 안젤라를 실제로 만나는 것이 그녀의 소원 중 하나라고 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안젤라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이든 다 털어놓을 수 있고 서로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일일이 다 알고 있는 그런 친구. 작년에 안젤라가 유럽에 여행 왔었는데 마케도니아 입국 비자를 받을 수가 없어 고대했던 만남은 무산되었고, 드라가나가 안젤라를 만나러 인도네시아로 가기에는 역시 비자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돈도 없었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굉장히 속상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시티 아트'카페에서 버는 돈이 한 시간당 고작 1유로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물었다.


 "인도네시아에 가 봤어?"
 "응."
 "몇 번?"
 "음... 세 번인가."
 "우와! 자카르타에도 가봤어?"
 "공항 근처에서 잠만 잔 걸."
 "우와!"


 부러움이 가득한 그녀의 표정에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흐리드 숙소 주인장 마리얀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 역시 나의 종아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근데, 니 피부 말야, 여행하면서 탄 거야? 아님 원래 그런 색인 거야? 아. 부럽다. 내 다리 좀 봐. 나보다 더 하얀 사람 본 적 있어? 있잖아, 다음달에 5일 정도 휴가를 달라고 우리 사장한테 부탁해 볼 생각이거든? 만약 그게 되면 남자친구랑 써니 비치에 갈 거야. 써니 비치가 어디냐고? 불가리아. 바르나라고 알아? 응, 맞아. 큰 항구도시. 바르나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있어. 다녀온 사람들이 그러는데 바다며 해변이며 엄청 아름답대. 만약 가게 된다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해변에 누워만 있을 거야. 그럼 너처럼 까매지겠지?  그래서 혹시나 가게 될까 싶어서 여권을 만들려고 오흐리드 집에 갔던 거야. 볼래? 내 여권?"


 그녀는 발급 날짜가 어제로 찍힌 빳빳한 새 여권을 자랑스럽게 펼쳐 보였다.


우리가 만난 지 고작 세 시간 밖에 되지 않았지만, 하물며 드라가나가 살고 있는 곳은 이모네 집(그러니까 그녀 또한 얹혀사는 신세)이지만, 버스가 비톨라에 거진 도착할 때쯤 그녀는 나를 카바다르치로 초대했다. 나는 그럴 수 있으면 그러겠노라 대답했고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했다. 버스가 터미널에 서자 나는 짐칸에 실어 놓았던 배낭을 찾아 꺼냈고, 드라가나 역시 버스에서 내려 급하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버스 기사에게 물으니 오 분의 휴식 시간이 있었다. 연신 버스 기사의 동태를 살피며 있는 힘껏 담배를 빨아들이는 와중에도, 그녀는 꼭 카바다르치로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드디어 버스 기사가 그녀를 향해 그만 차에 올라타라고 신호를 보냈고 우린 작별 인사를 하며 포옹했다. 그런데 그때, 꼭 집어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콩알만 한 아이가(콩알만 한 나보다도 한참이나 더 작았다) 말할 수 없이 푸근하게 그리고 나보다 더 어른같이 느껴졌다. 예순다섯 마리의 양과 열여섯 마리의 염소와 두 마리의 소와 한 마리의 말을 데리고 하루 종일 산과 들을 돌아다닌다는 까맣고 주름진 엄마를 가진, 하기 싫은 와인 공부 대신 장애아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은, 생활비를 위해 한 시간을 일하고 코카콜라 두 병 값을 버는, 이제 막 새 여권을 갖게 된 열아홉 살의 드라가나. 


그렇게 그녀와 헤어져 비 오는 비톨라의 호스텔 발코니에서 호스텔 주인의 친구인 바비, 로드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나와 동갑인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현실과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꿈에 대해 듣다 보니 어쩔 도리 없이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궁금해졌다. 그녀는 왜 생전 처음 보는 나를 초대했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래서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그녀의 말대로 카바다르치 버스 터미널에 내려 아무나 붙잡고 '시티 아트'카페의 위치를 물으니 큰길로 나가 쭉 걸으면 된다고 알려 주었다. '정말 작은 도시'라는 드라가나의 말만 믿고 머리 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돌덩이처럼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무작정 '쭉' 걸었다. 8월 초, 카바다르치의 한낮 기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뜨거웠다. 죽을 맛이었다. 비톨라에서 만난 로드는, 관광객들이 가지 않는 작고 보잘것없는 카바다르치에서 혹시나 드라가나를 만나지 못할 것을 대비해 그의 사촌이 운영하는, 역시나 동네 사람 모두가 알고 있고 밤이면 동네 사람 모두가 모인다는 'Blue Pub'이란 술집을 알려 주었다. 술집 주인인 사촌 고란을 찾아가면 그가 잠자리 등을 마련해 줄 거라는 얘기였다. 큰길을 아무리 걸어 올라가도 '시티 아트'카페가 나타나지 않아 '블루 펍'이라도 찾아 볼까 라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지만 시골과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시청 건물 앞 광장에 이르자 드디어 '시티 아트'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땀에 흠뻑 젖은 무거운 몸으로 카페 앞에 늘어선 테이블 사이로 걸어 들어가니 손님 하나 없는 카페에 앉아 동료들과 수다를 떨고 있던 드라가나가 나를 보고 한걸음에 달려 나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더우니까 택시 타고 오라고 메시지 보냈는데 못 봤어?"


 못 봤다. 


그녀는 그늘진 테이블에 나를 앉히고는 메뉴를 보여 주며 원하는 무엇이든 만들어 주겠다며 먹을 것을 권했다.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날이면 굶지 않고 챙겨 먹곤 하는 나는 그날도 아침부터 군것질을 많이 한 터라 계속 사양했는데 그녀 또한 굴하지 않고 메뉴에 있는 모든 메뉴를 읊어댔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바에서 맥주를 따르거나 커피를 만드는 일을 하는 그녀는 잽싸게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가 거대한 볼에 담긴 어마어마한 양의 아이스크림을 들고 돌아왔다. 웨하스가 꽂힌 형형색색의 스프링클로 장식된 아이스크림. 그걸 먹고 있으니 어린 시절 친구가 아르바이트 하는 카페에서 사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만들어 준 파르페를 급하게 퍼먹던 일이 생각나 혼자 낄낄거리며 웃고 말았다. 그때의 나는 딱 드라가나의 나이였다. 


드라가나가 오후에 근무하는 날이었다. 낮 4시부터 밤 1시까지. 하여 그녀는 집에 있는 사촌 동생을 전화로 불러내 나를 데리고 먼저 집에 가 있게 했다. 사촌 동생 디메는 열 살짜리 꼬맹이로 올해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디메가 할 수 있는 영어라고는 고작 단어 몇 개를 조합하는 수준이었으므로 도대체 이 ‘외국 여자'를 데리고 아무도 없는(휴일이라 부모님과 여동생은 호수로 물놀이 갔고 스스로 머리가 좀 컸다고 생각한 그는 따라가지 않았다) 집에서 단 둘이 있을 생각에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디메는 사촌 누나인 드라가나에게 이 죽고 싶은 상황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윽박지를 뿐이었다.


 "그러니 평소에 영어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누나가 말했어 안 했어? 응?" 


그러더니 나를 향해 예의 그 다정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힘들었을 테니까 샤워하고 한숨 자면서 쉬고 있어. 배고프면 디메한테 먹을 거 달라고 하고. 컴퓨터가 필요하면, 자, 이건 내 노트북 비밀번호거든? 그거 켜서 봐. 수건이나 뜨거운 물 같은 거 다 디메한테 달라고 해.  이모랑 이모부는 해 지기 전에 돌아올 거야. 네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있어. 알았지?"
 
 디메네 집까지의 거리는 버스 터미널에서 '시티 아트'카페까지의 거리만큼 되는 것 같았다. 멀었다. 드라가나가 걸쳐 매게 한 내 보조 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고 내 옆을 걸으며 녀석은 쑥스럽고 어색해하면서도 머릿속에 있는 영어 단어란 영어 단어는 모조리 끄집어 내려 노력했다. 그리고 길에서 만난 또래 친구들이 내 존재를 보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 물을라 치면,


"저리 가! 나는 외국인이랑 영어로 대화하는 사람이라고. 니들 코흘리개들이랑 상대할 시간 없어!"


따위의 반응을 보였다. 똘똘하고 당찬 아이였다. 


시청 광장과 연결된 큰길을 벗어나 좌회전과 우회전을 반복했다. 코너를 돌 때마다 비슷비슷한 단층집들 앞에 고만고만한 낡은 자동차들이 세워져 있는 블록이 나타났고 그렇게 생긴 블록을 여러 개 지나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우리가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동네 꼬맹이들이 몰려왔다. 디메가 연신 아이들을 쫓아냈지만 소용없었다. 한 놈이 사라졌다가 다른 한 놈을 더 데리고 오는 식이었다. 낡고 오래된 집이었다. 길 쪽을 향해 난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욕실과 아이 방, 그 작은 복도를 지나면 부엌과 거실이 있었다. 부엌 옆 뒷문을 열고 나가니 집에 비해 널찍한 뒷마당이 나왔는데 마당 한쪽에 이모부의 창고가 있었다. 이모부는 크레인 기사, 이모는 전업주부라고 했다. 이모, 이모부, 디메, 디메 여동생 마르띠나, 거기에 드라가나까지. 도대체 모두 어디서 자나 싶었다. 나중에 보니 지하에도 방이 하나 있어 이모부는 그곳을, 이모와 남매는 거실을, 드라가나는 남매의 방을 쓰고 있었다. 좁은 집에 군식구가 하나 더 늘어 괜히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불편했지만 호수에서의 물놀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이모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반가워하는 모습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엄마 아빠도 돌아왔겠다 이제 그만 무거운 짐은 내려놓고 친구들과 축구를 하러 나가고 싶은 디메를 이모 부부도 나도 못 가게 잡아 두었다. 디메가 없으면 의사소통이 완전히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부모님의 귀환으로 얼굴에 꽃이 핀 디메는 부모님이 없는 동안 자기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드라가나, 전화, 집, 깨끗한." 

(드라가나의 전화를 받고 저 누나를 데리러 나오기 전에 미친 듯이 집을 치웠어요.)


디메는 팔을 급하게 휘저으며 청소하는 흉내를 냈다. 집에 처음 도착해 디메가 집을 안내할 때 보니 거실의 소파베드에 이불이 깔려 있었었다. 혼자 소파베드를 펴고, 그 위에 침대 시트를 깔고, 마무리로 한쪽을 살짝 접어 놓은 것이 바로 디메였다. 혼자 끙끙거리며 부산을 떨었을 디메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기껏 잠자리를 마련해 놓은 디메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주방과 나란히 붙은 거실 한복판에 누워 있기 민망할 듯하여 나는 드라가나가 쓰고 있다는 아이들의 방에 짐을 풀었다. 


저녁을 먹은 뒤 우리는 마당에 둘러 앉아 시간을 보냈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말이 통하지 않음에서 오는 답답함으로 가슴을 치며 보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전할 방법이 없는 이모도, 엄마의 말을 통역할 재간이 없는 디메도, 그들을 보며 실없이 웃고 있는 나도, 가시방석이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 


 해가 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디메가 말하는 영어 단어와 이모의 몸짓으로 짐작하건대, 10시쯤 드라가나를 보러 가자는 것 같았다. ‘일하는 곳에 찾아가서 무엇을 하자는 것일까?’ ‘게다가 비도 오는데 그 먼 길을 다 함께 걸어가자는 것일까?’ ‘그건 그렇고 그녀의 일은 새벽 1시에나 끝나는데 그럼 카페에서 세 시간을 기다리겠다는 것일까?’ 호수에서 돌아온 복장 그대로였던 이모는 9시 반이 되자 바빠졌다. 한참 동안 화장실에서 헤어 드라이어 소리가 들리더니 컬이 풍성한 모습으로 나왔고 이내 립스틱을 바르고 마스카라를 칠했다. 입고 있던 티셔츠와 반바지를 벗어 던지고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그 사이 아이들과 이모부도 좋은 옷으로 바꿔 입었다. 나에게 밤 10시는 밖에 나갈 채비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모가 옷을 갈아입는 와중에도 나를 살피러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조금씩 변신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의아하기만 했고 저렇게 제대로 치장을 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드라가나가 일하는 카페에만 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갖가지 의문으로 머리를 가득 채우며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나에게 이모가 몸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너도 옷 갈아입고 화장 좀 해, 어서."


비록 여행 중에는 잠옷으로 입지만 한때는 외출복이었던 원피스를 입고 있었던 나는 그 옷차림 그대로 그들을 따라 나설 생각이었으나, 이모가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니 아무래도 이 옷으로 나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몇 안 되는 옷 중 그나마 제일 나을 듯한 원피스로 바꿔 입었다. 원피스가 마음에 들었는지 엄지 손가락을 척 치켜든 이모가 이제는 얼굴에 분을 찍어 바르는 흉내를 냈다. 하지만 화장을 하지 않는 나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언뜻 마땅찮은 표정을 내비친 이모는 이내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다행히 카페까지는 이모부의 차를 타고 갔고 그새 비도 그쳤다. 조수석에 앉은 이모가 연신 몸을 돌려 내가 잊지 않고 카메라를 챙겼는지를 확인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카메라를 들어 보였다. 손님이 하나도 없었던 오후와 달리 카페는 북적였다. 밤 열 시 반이었다. 야외 자리가 만원이었기 때문에 웨이터로 일하는 드라가나의 남자친구 고란(블루 펍 고란과 이름이 같다)이 우리를 위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흡연자의 유토피아 마케도니아에서도 카페나 식당 내부에서는 담배를 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밖에 앉아야만 했다. 이모와 이모부는 대부분의 마케도니아 사람들처럼 대단한 골초였다. 부부는 맥주를, 아이들은 콜라를, 나는 차이를 시켰다. 그렇게 마실 것을 앞에 두고 앉아 바에서 바삐 일하고 있는 드라가나가 짬을 내어 우리 테이블로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그녀가 우리에게 오면 분위기는 순간 화기애애해졌지만, 주문이 들어와 그녀가 불러 들어가 버리고 나면 우리는 다시 불편한 침묵과 어색한 웃음 속에 놓여졌다. 테이블에 음료만 두고 있는 게 영 마음에 걸렸는지 이모가 피자 한 판을 주문했다. 아무리 지방 소도시라고 해도 가장 목 좋은 곳에 위치한 카페의 음식값은 관광객을 상대하는 오흐리드 음식점들 수준이었다. 케첩을 찍어 먹는 뻣뻣한 도우의 냉동 피자와 우리가 시킨 음료 값을 대강 따져보니 못해도 일 주일 치 식비는 될 것 같았다. 그 계산에 이르자 가족들이 왜 그렇게 부산을 떨며 몸치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곳은 그냥 동네 카페가 아니었다. 아니 그냥 동네 카페이기는 하지만 동네 카페는 아무 때나 오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우리는 한 시간쯤 카페에 앉아 있은 후 드라가나에게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아이들의 침대에 고꾸라져 길었던 하루를 돌아볼 새도 없이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홉 시 반 터질 것 같은 오줌보가 잠을 깨우기 전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달게 잠을 잤다. 드라가나가 들어왔는지 어쨌는지 알 지도 못했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 그렇게 깊게 자기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볼일을 보고 집안을 둘러보았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아침밥을 먹어야 하는 나는 심한 허기를 느끼며 살며시 거실 안을 들여다 보았다. 모두들 자고 있었다. 드라가나도 그곳에 있었다. 그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가능한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움직이기를 삼십여 분, 더 이상은 배고픔을 참을 수가 없어 나중에는 일부러 조그만 소리를 내고 다녔고 그게 통했는지 드디어 식구들이 깨기 시작했다. 드라가나는 눈을 뜨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이고 커피를 끓였다. 다음으로 일어난 이모도 눈을 뜨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이고 커피를 끓였다. 드라가나는 카페 사장에게 부탁해 오늘 하루 휴가를 얻었다며 좋아했고 그 소리에 나 역시 기뻤다. 뒷마당의 포도넝쿨이 만든 시원한 그늘에 앉아 그 넝쿨에서 금방 딴 잘 익은 포도 몇 송이와 빵, 치즈,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이모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이웃집이었다. 새로운 손님과 함께 건너오라고, 커피를 대접하고 싶다고. 그때가 오전 11시였다.

  
 이모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이웃집 여자는 결혼한 이래로 쭉 수도 스코페에 살고 있다고 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길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 수도 없는 답답한 스코페 생활이 싫은 그녀는 방학이면 남편 혼자 도시에 남겨두고 아이들을 데리고 아버지가 계신 카바다르치에 온다고 했다. 헌데 내가 막상 스코페를 둘러보고 느낀 것은 '딱 이만한 도시에 살면 참 좋겠다,' 였는데 말이다. 한 나라의 수도가 갖는 편의를 다 누리면서도 소도시에 사는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을 듯 보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마케도니아의 전체 인구는 이백 만 명. 하여간 이웃집 마당에서의 커피 타임은 이웃집 여자가 라끼 한 병을 뜯은 이후 술자리로 바뀌었다. 마케도니아에 왔으면 마케도니아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며 나의 문맹을 신랄하게 질책하던 그녀의 아버지,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막대한 연금을 받는 은퇴한 경찰관 이웃, 그리고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다 결국엔 넘어간 이모까지 그렇게 술판이 벌어졌다. 재미있는 것은 대문도 잠그지 않고 서로의 집을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고 있는 그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듯 보였다는 것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이웃들은 페이스북에 푹 빠져 있었다. 저 멀리 동방에서 온 이방인의 등장이 오늘의 주요 '타임 라인' 거리였다.


엄마들이 라끼를 마시며 친목을 다지는 동안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이런 저런 놀이를 찾아 놀았다. 대문을 네트 삼아 배구를 한다거나, 고무공으로 상대편 얼굴을 가격한다거나 뭐 그런 것들.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때로는 하늘이 떠나가라 웃고 때로는 세상이 끝난 듯 울며 치고 박고 노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재미로 그 술자리에 끼어 있었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놀 때면 이모가 단속에 나섰다. 이모는 오빠에게 악을 쓰고 있는 마르띠나를 잡아다가 어디 어른들 있는데서 시끄럽게 구냐고 혼내며 엉덩이를 실컷 두들겼다. 엄마에게 맞은 것이 서러워 훌쩍대는 마르띠나를 데리고 나는 구멍가게로 향했다. 마르띠나와 함께 놀던 이웃 아이들도 우리 뒤를 따랐다. 우리는 다 함께 아이스크림 통에 매달려 알록달록한 색의 하드를 골라 입에 물었다. 하지만 하드를 쭉쭉 빨며 돌아온 마르띠나를 보고 이모는 아이가 내게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조른 것으로 오해해 또다시 마르띠나를 혼냈다.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때 나의 부모님이 나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잔소리를 이모가 아이에게 하고 있었다. 고양이 만진 손으로 밥 먹지 마라, 침 묻은 손가락으로 치즈 만지지 마라, 남에게 뭐 사 달라고 조르지 말아라, 어른들 있는 곳에서 큰소리로 악쓰지 말아라.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그들.


 드라가나와 나는 무려 네 시간 동안이나 이웃집 마당에 앉아 있었다. 드디어 드라가나의 엉덩이가 한계에 다다른 오후 세 시,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세수도 양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였고 그것은 모두 다 마찬가지였다. 집으로 돌아온 드라가나가 마케도니아의 전통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며 피타 반죽을 시작했다. 마르띠나를 시켜 구멍가게에서 밀가루 1kg을 사 오게 하더니 그 밀가루 1kg을 한눈에 봐도 1리터는 족히 넘을 듯한 물에 털어 넣었다. 반죽은 진 정도가 아니라 그냥 뽀얀 물이었다. 마르띠나를 시켜 밀가루 1kg을 더 사 오게 했지만 그것으로 턱도 없었다. 그날 오후 마르띠나는 결국 집과 구멍가게를 여섯 번 왕복했다. 1Kg짜리 밀가루를 여섯 번 사다 나른 것이다. 반죽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술판에 있던 이모가 호출되었다. 불려 온 이모는 매끈하고 포동포동한 피타 반죽을 만들어 놓고 급하게 술자리로 돌아갔다. 피타를 만드느라 또 네 시간을 보냈다.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드디어 샤워를 한 후 뽀송뽀송한 몸이 되자 이제 그만 자리에 누워 쉬고 싶었다. 하지만 드라가나는 어제의 이모가 그랬던 것처럼 내게 화장을 하고 옷을 입으라고 재촉했다. 


"왜? 우리 어디 가?"


발칸 사람들의 중요 일과, 저녁 산책.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살인적인 낮 더위가 한풀 꺾이는 저녁 시간, 예쁘게 화장한 얼굴에 멋진 옷을 차려 입고 거리를 산책하는 것이 발칸 지역민들의 취미 생활이자 낙이었다. 우리는 도심 동쪽 끝, 집에서 사십여 분 거리에 있는 공원에 갔다. 드라가나가 엄청나게 아름다운 공원이라고 칭찬했지만 공원 초입을 제외하고는 가로등이 많지 않고 컴컴해서 내 발치조차 보이지 않았다. 드라가나의 완벽한 화장과 예쁜 드레스가 무색하게도 산책은 한 시간 반 만에 끝이 났다. 우리는 다시 뒷마당에 모여 커피를 마시고(마케도니아 사람들은 새벽 한 시에도 커피를 마신다) 담배를 피웠다. 열 시쯤 이모부가 수박 한 덩어리를 들고 일터에서 돌아왔고, 열한 시에는 낮에 우리를 대접했던 이웃집 여자가 딸아이 둘을 데리고 놀러 왔으며, 열두 시가 다 되어 갈 무렵에는 드라가나의 친구가 그녀의 동생을 데리고 놀러 왔다. 그들은 새벽 두 시가 넘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오흐리드에서 비톨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드라가나>


<똘똘한 디메는 축구를 좋아한다. 디메가 아무리 쫓아도 굴하지 않던 동네 아이들>


<'시티 아트 카페'로의 나들이 기념 촬영. 이모부, 이모, 나, 마르띠나, 디메>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포도넝쿨 무성한 뒷마당에서 보냈다. 눈 뜨자마자 커피를 끓이는 드라가나>


<페이스북에 올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는 아저씨들. 잠깐 아직 준비가 안됐어!>


<엉덩이에 뿔이 나거나 말거나, 50원짜리 하드 하나에 울다가 웃는 아이들>


<점점 늘어나고 있는 반죽>


<드라가나는 나보다 더 어설펐다.>


<이모가 해결한 피타 반죽을 기름에 튀기며>


<새벽 한 시, 이모네 거실 현황>



드라가나는 현재 카타르 도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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