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 에세이
희한하게 되는 일이 없었다.
영업 사원이 사람 만나는 걸 무서워하다니….
미팅 약속이 있는 거래처 입구에서 담배만 연신 피워댔다.
심장이 뛰고, 침이 말랐다.
오늘 만나기로 한 그 사장 얼굴을 보는 게 내키지 않았다.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내가 하든 남이 하든 모든 말들이 시끄러웠다.
2개 단락이 넘어가는 업무 메일을 보면 무슨 내용인지 읽고 싶지 않았다.
고객에게서 전화가 오면 머리가 하얘지고 빨리 끊고만 싶었다.
게다가 팀장인 내가 내 팀원에게 업무지시를 하기가 힘들어졌다.
이 텐션으로는 모든 지시는 내가 하기가 싫어서 미루는 것으로 생각할 것만 같다.
이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나의 MBTI는 E에서 I로 변해 버린 건가?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은 이 회사의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하자(瑕疵)’라고 자책한다는 것이다.
영업은 기세다. 그런데 지금 그 맥이 끊겨버렸다.
이러면 이건 칼을 쥐어져도, 탱크를 타고 나가도, 미그기를 타고 날아도,
패배다.
어릴 때부터 낙천적이었던 나는 힘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내가 행복한 마음으로 본 영화 속 O.S.T를 읊조려본다거나, 자칫 미쳐 보일 수도 있지만 큰 소리로 웃어 본다거나, 주(酒)님을 영접해 다음 날 세속적 속 때를 시원하게 게워낸다거나 말이다.
이어폰에 흘러나오는 바카스 같은 선율에 잠시 마음을 다잡아 놓았다가도 오후에 접어들면 일상의 심드렁한 말들에 상처받고, 또 우울 모드가 돼버리니, 이 무한 루프는 언제야 끝나는 걸까?
그 끝을 알 수 없는 이 감정은 무엇인가? 이 무기력은 무엇인가?
나의 감정을 거르는 체는 꽤 촘촘한데...
이번에 찾아온 이 기분 나쁜 이놈은,
‘좀 다르다’.
도무지 이 긍정의 체망으로 걸러도 이 질퍽한 자괴감, 무력감을 걸러내지 못하고 내 가슴에 툭툭 걸쭉하게 뱉어 놓는다.
‘애도’와 ‘우울’을 비교해서 생각했던 ‘프로이트’는 애도는 죽은 애인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면 우울은 떠나간 애인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확실히 내가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인지가 되어 ‘현실원칙’을 수용해 가는 게 ‘애도’라면, 우울은 자기가 무엇을 상실했는지도 모른 체 그 상실에 집중하게 되고 매몰되게 되니, 그 끝은 어디인지도 모르게 정말 ‘지독’ 한 것이 될 거라는 것이다. ( "나의 작은 철학" 장춘익지음, 3장 '우울에 관하여' 일부 인용 )
그렇다.
책에 실마리가 있었다.
프로이트의 말로는 내 이 지독한 무기력감은 ‘우울’이었다.
오컬트 영화에서 보면 흡사 악마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몸에서 악귀를 몰아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우울’아! 당장 이 몸에서 나갈지어다!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 악마의 이름은 ‘우울’이 아니었다. 우울감을 야기하는 내가 잃어버린 무엇인가가 그 악마의 이름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굳이 알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 철저한 무기력. 알려고 하면 할수록 구차해지고, 피곤해진다.
그 뭔가를 알아야 이 지독한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 물리적으로는 힘들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보이지 않는 그 바늘이 번번이 내 평화를 터뜨려버린다.
딱 한 달만 쉬었으면 좋으련만….
마음 한편에서는 그게 답이 아닐 거라고 또 다른 내가 한숨을 쉰다. 그건 피하는 거잖아. 달아나는 거잖아. 내빼는 거잖아!
출근은 해야 한다.
그리고 반복되는 무한 루프.
아침에 잔뜩 겁을 먹고 시달리다가
점심때 지나면 좀 괜찮아지는….
아무렇지 않은 것 같다가도 아침에 다시 시작되는 이 지독한 불편함.
뭔가 좀 다른 우울함의 원흉, 그 이름을 알아가기 위한 내 사투는 조용히 시작되었다.
여러분은 이 원흉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663181?lfrom=kak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