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 조선을 꿈꾸는 스타트업 4년 차 개발자의 이상과 현실
헬조선: 헬조선(Hell朝鮮)은 2010년대 들어 유명해진 대한민국의 인터넷 신조어이다. 헬(→지옥)과 조선의 합성어로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위키백과]
2016년, 졸업을 앞둔 시기에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6개월 간의 고시원 생활을 겪은 뒤라 그 의미가 조금은 와 닿던 시기였다. 인턴 생활을 위해 서울로 상경해 한 평 조금 넘는 고시원에 살았다. 회사에서 네 번째 멤버였다. 완전 초기 스타트업에 입사한 것이었다. 회사는 내 삶을 갈아넣길 요구했다. 힘들면서도 일하는 게 즐거웠고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인턴 생활을 마친 뒤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스스로 되물었을 땐 자신이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서 기업가정신을 배웠다. Entrepreneurship. 지금도 철자가 틀릴 정도로 낯선 이 단어. 마음속 단어 사전에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도전 정신쯤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인턴 생활 이후 스타트업에서 일할 자신이 없어진 내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 것도 이 단어 때문이었다.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는 헬조선이라는 현실 자체였다.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부르게 만드는 문제를 하나라도 해결해보고 싶었다. 끝내 대한민국을 헤븐 조선이라 부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헬조선의 현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기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전하는 정신, 기업가 정신으로 바라보면 희망이 없을 정도로 문제가 많은 한국은 기회의 땅인 셈이다.
스타트업은 풀기 어려운 문제를 풀어 수익을 창출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희망을 앗아갈 정도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일. 바로 스타트업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스타트업의 일은 헬조선의 문제를 해결해 헤븐 조선으로 바꿔놓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정말 스타트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2019년, 어느덧 4년 차 개발자가 되었다. 현재는 핀테크 스타트업에 일하고 있다. 금융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해결해서 고객이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할 수 있게 돕는 게 이 회사의 존재 이유다. 회사가 성공하면 부족한 금융 정보로 인해 고통받던 누군가는 헤븐 조선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회사에 합류했다.
스타트업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참으로 험난하다.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모여도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 다투기도 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도무지 체계가 잡히지 않아 답답해한다. 이상은 저 멀리에 있고 현실은 내 발아래 있는 그 간극 때문에 늘 고통받는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스스로를 갈아넣기도 한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여전히 고민한다. 스타트업에서도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믿는 구석이 있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험난하기도 답답하기도 하지만 끝내 하나의 고비를 넘겼을 때 많은 사람의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이 있기에. 다른 문제로 힘들어할 때 이 고비를 넘으면 또 다른 누군가 헤븐 조선을 살게 되겠구나 싶은 믿음이 있다. 작은 변화지만 모든 변화가 모여 큰 변화를 만들고 헬조선이 아닌 헤븐 조선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렇게 믿는다. 스타트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2019년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