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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구 moon gu Jan 24. 2023

1년에 두 번 가는 미용실

살찐 메두사를 보는 날


  며칠을 망설이다가 미용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예약을 한다. 예약 확정 문자가 금세 온다. 거울을 보며 한 달만 더 있다가 갈걸 그랬나 잠시 생각하지만 어차피 가야 하는 거 가야지.


커트를 하고 약을 바르고 세팅기계로 머리카락을 말아준다. 이제 기다리면 된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꼭 살찐 메두사 같다.

팽팽하게 당겨진 두피가 아프지만 꾹 참는다.


세팅펌


중간중간 머리도 감고 약도 바르고 하며 시간이 간다. 꼼짝없이 앉아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거나 잡지를 뒤적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나는 곱슬형 직모?인데 도저히 펌을 하지 않고서는 생머리로 다닐 수가 없다. 머릿결이 한없이 거칠고 부스스해 보인다. 찰랑거리고 자연스럽게 살짝 안으로 들어가는 머리카락이 세상 부러웠다.


외모에 예민했던 사춘기 학창 시절에는 머리숨을 죽이기 위해서 밤에 머리를 감고 덜 말린 상태로 잠을 잤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머리카락이 착 눌려서 차분해 보였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자야 한다. 아니면 여기저기 눌려서 까치집을 짓게 되니까)

늘 예쁘고 단정한 헤어스타일이던 친구는 엄마가 매일 아침 드라이기로 손질해 주신다는 얘기를 해줬다. 한 번도 엄마가 내 머리를 손질해 줬던 기억이 없던 나로서는 그 친구의 얘기가 부럽기보다는 신기했다.

대학생 때 친했던 언니가 고대기를 사러 남대문 미용재료상에 간다길래 따라가서 같은 걸 샀다. 그 이후부터는 열심히 연습해서 금세 혼자서 뒷머리까지 예쁘게 손질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얼마나 좋은 걸 산 건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장도 없이 비상시를 위해 잘 보관하고 있다.)

한 10년 가까이 그 고대기로 열심히 머리손질을 했다.


파마를 해봐도 한 그날뿐이지 머리를 감고 나면 미용실에서 갓 나온 머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파마를 하기보다는 수고스러워도 매일 고대기로 열심히 머리를 손질했었다.

부스스해 보이는 머릿결



지금은 고대기할 시간의 여유도 없고 그런 정성을 쏟을 마음이 없어졌달까?


미용실 가는 날은 일 년에 2번, 명절처럼 정해져 있다. (더워지기 전, 추워지기 전) 머리를 간신히 묶일 정도로 짧게 자르고 c컬을 강하게 말아준다. 그러면 6개월은 버틸 수 있다. 좀 지저분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묶고 다니며 지내본다.

6개월 주기로 맞춰진 머리길이



펌을 하는 비용도 꽤나 비싸지만 내가 진짜 견디지 못하는 건 4시간, 그 시간이다.


얼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계속 봐야 하는데 유독 미용실거울은 더 못 생겨 보이는 거 같기도 하다. 1분 1초의 시간을 금처럼 아껴 쓰는 사람이 아님에도 머리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오래 앉아있어야 하는 건 이상하게 견디기 힘든 고역이다. 펌을 하지 않아도 되는 머릿결로 타고났었다면 아마 1년에 두 번 헤어컷만 하고 지냈을 텐데..


요즘엔 흰머리까지 잔뜩 자라고 있다. 염색으로 미용실 가는 횟수를 더 추가하기 싫기도 해서 고민이다. 새치 염색을 시작하면 최소 두 달마다 미용실에 가야 하는 개미지옥에 빠지는 일이라는 지인의 조언에 따라 최대한 미뤄보기로 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으려나.

미용실 가는 일은 더욱더 미니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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