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낼 만큼 충전이 되는 시간
아들이 차에서 내리고 나서야 마음이 평안해졌다.
몸속 깊은 곳에서 숨을 끌어모아 밖으로 내보낸 후에 카시트에 몸을 기대어 편안한 상태로 만들었다. 조금 전 운전할 때와 달리 안정감 있게 달렸다.
남도 아니고 내 배 아파 낳은 아들이 불편할 수 있을까 싶지만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구도 편안할 수 없는 사람이다.
집 밑 지하주차장에 도착해 시동을 끄고 나면 적막한 고요함이 느껴지지만 잠시 나는 그 순간에 머물러 눈을 감는다. ‘삶이 이렇게 고요할 수 있다면…’
때로는 시끌벅적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지만 누구든 단 한 사람이라도 함께하는 순간 내 몸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방전되는 건 한 순간이다.
나를 외향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많지만 나는 극에 달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심심하지 않다. 혼자 밥을 먹어도, 차를 마셔도, 여행을 가도 괜찮다.
이십 대 때부터 오십 언저리에 닿은 지금까지 단 하루도 오롯이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쉬는 날 없이 일을 했고, 쉬는 날이 있어도 누군가와 함께 했었다. 아이를 낳고 난 이후에도 일은 계속했고, 쉬어도 아이와 함께이니 혼자 일 수는 없었다.
내 나이 마흔여덟. 딸아이 스물 넷, 아들은 스물. 이젠 혼자 일 수 있으려나 싶지만 여전히 매일 혼자 일 수 없다. 그러니 잠시라도 차 안에서의 적막한 고요함이 평안하고 좋다.
이런 순간에 진심으로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다.
“괜찮아?”
“몸은 좀 어때?”
“마음은?”
“응. 괜찮아. 많이 좋아졌어.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그래도 이렇게 잠시 혼자 있을 수도 있고, 고요한 지금을 누릴 수 있으니 감사해. 마음은 조금 슬퍼. 그래도 괜찮아. 잘 살아왔고, 결국은 잘 될 거니까. 조금씩 천천히 내디딘 발걸음이 결국 원하는 곳으로 가는 걸음이니까. 좋아. 힘들고 어려워도 늘 그 상태인 것도 아니고 좋음과 나쁨은 언제나 오가는 거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이만하면 되었다 싶을 즈음에 차 문을 열고 나선다. 오늘을 또 살아낼 만큼 충전이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