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런 바람에 - 1부. 나를 바라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Episode 1.
그곳은 자주 지나는 산책코스에 있는 냇가였다. 냇가를 들여다볼 기반시설도 되어 있지 않은 데다 물색이 그리 이쁜 곳은 아니었으므로 평소에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던 곳이다. 어느 날, 그 앞에 웅크리고 앉아 냇가를 들여다보는 아이를 만났다. 호기심에 옆에 앉아 아이에게 뭘 보냐고 물었더니 말은 않고 그냥 냇가를 가리켰다. 뭐가 있나 싶어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지만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뿐. 아이가 하도 빤히 쳐다보길래 내가 찾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같이 빤히 쳐다보고 있자니 곧, 물의 흐름이 느껴졌다. 햇살이 수면에 부딪혀 반짝이고 있었다. '썩 예쁘네, 이걸 보고 있는 건가?' 할 무렵, 그 사이로 유유히 헤엄쳐 가는 작은 물고기가 보였다. 수면 위의 소금쟁이도.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갑자기 냇가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짝이며, 아름답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pisode 2.
오전 11시, 운 좋게 벌써 산장에 도착했다. 평소의 나라면 지금은 멈출 때가 아니라 더 가야 할 때라며 걸음을 재촉했겠만 오늘은 이곳에서 자기로 마음먹었으니 짐을 푼다. 아무도 없는 산장, 산의 중턱. 나는 딱히 할 게 없다. 산장은 아늑했지만, 안으로 해가 들지 않아 서늘한 바람과 공기를 그대로 전달했다. 짐을 풀고 들로 나선다.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따뜻한 햇살이다. 볕이 드는 장소 주변을 맴돌고 있자니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수많은 돌을 연결하고 있는 거미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정교함이 첩보영화에 나오는 방범용 적외선을 연상시킨다. 나는 근처에서 해를 등지고 앉아 햇살을 누린다. 평화로운 이곳의 섭생은 낯설다. 화산 폭발 이후 생긴 식물들이라 그런지 아주 작고 단단하다. 돌은 붉은빛을 띠고 있고 어떤 식물은 금빛을 띠고 있다. 학창 시절 배운 화산암과 화산에 의한 지리 변화를 떠올리려 노력해보지만, 머릿속에 명료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다. 배우는 과정에서 진짜 이런 것들을 보고 배웠으면 좀 더 재미를 느꼈을 텐데.. 나는 실컷 홀로 남겨진 시간을 누리며 자세히 보기를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아무것과도 연결되지 않은 unplugged 상태의 순간이 너무 좋지만, 나중에 인터넷이 되는 곳에 가면 꼭 화산지형의 돌과 식물에 대해 좀 더 제대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Episode 3.
어렸을 적 나는 뭘 몰랐고, 그리하여 내가 사랑받고 있음도 몰랐다. 조금 더 커서는 내가 뭔가 알게 된 것 같았고, 특별하다고 믿었으며, 내가 받는 사랑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춘기가 찾아올 무렵, 나는 내가 받는 사랑을 의심했고, 타인으로부터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을 갈구했다. 썩 오랫동안이나 그저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사랑해줄 누군가가 나타나 주길 기다렸다. 사회는 내가 철없고 어리석었으며, 사랑받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쳤다. 나는 나름 노력했지만 사랑받기 위한 노력만으로 원하는 사랑을 받을 수 없음에 좌절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흘러가는 사랑들이 쉽게 오가지 않은 무렵이 되자, 나는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그것이 사랑의 존재에, 삶의 윤택에, 사랑을 나눌 수 있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세상을 두리번거리던 눈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고, 나의 어리숙함에 미소 지을 수 있으며, 나의 새침함을 다독일 수 있으며, 나의 이기적인 마음을 인정하고 이성으로 올바르게 이끄는 사람이 되어갈 수 있었다. 나를 자세히 봄으로써... 누구나 그러하다고 믿는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