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런 바람에 - 3부. 세상을 탐하다
"원싱이가 실수로 나무에서 떨어지면 우에됩니꺼?" 병아리할배는 "요런 무식헌 놈!" 하면서 내 뒤통수를 때렸다. "바다에 널찌믄 고래가 되고 육지에 널찌믄 인간이 되제, 너는 그것도 모리나?" "원싱이가 와 고래가 되고 인간이 됩니꺼?" 병아리 할배는 "허어~" 한숨을 내쉬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기 진짜배기 세상살이 아니것나? 처음에는 원싱이라케도, 살다보믄 고래가 될 때도 있고, 인간이 될 때도 있고.. 그 카다가 또 고래가 실수로 널찌믄 도로 원싱이가 되고, 엉뚱하게 호랭이가 되고. 꿩 새끼가 되고 삥아리가 되고.. 바다가 되고 맥주가 되고.. 니두 자꾸 널찌보믄 알게 될끼다. 윤회가 뭐 별 낀 줄 아나?"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이야기 中]
가장 큰 삶의 매력과 설렘은 누구도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더라고 많은 사람들은 한 치 앞을 예측하고 안전하게 움직이려 늘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비효율이라고 생각한 9시-6시 출퇴근하는 삶을 살아보고 나서야 다시 떠나는 것에 대해 확신을 하게 되었다. 만약, 삶이 무척이나 내 뜻대로 흘러갔다면 이렇게 떠나는 날짜를 못 박아놓고 그날을 기다리진 않았을지도 모르니 새옹의 말마따나 인생사 섣부르게 결정짓고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찾은 치앙마이. 스무 살 나에게 누나라고 부르던 스물다섯의 트래킹 가이드에게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꼭 다시 놀러 올게.’ 13년이 걸렸다. 물론, 그는 없다. 아니, 그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마흔쯤 되었을 테니 완연한 아저씨가 되어 있을지도. 나는 그의 얼굴과 나와 친구의 풋풋함과 우리가 함께 걸었던 긴 산길의 분위기, 뗏목을 타고 내려오며 불렀던 노래 일부는 선명히 기억나지만, 치앙마이 시내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질 않았다. 그땐 너무 좋아서 꼭 5년 내로 다시 와야지 했건만 잊은 채 13년을 살았다. 우연히 다시 온 이곳에서 깊숙이 넣어뒀던 추억 상자를 꺼내며 의아하다. 왜 그땐 이렇게 공기가 나쁜지 몰랐을까? 이곳이 변한 걸까? 나는 너무 성급하게 과거만 생각하고는 도착하자마자 한 달짜리 방을 계약했다. 잔기침이 심해진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올드 팝송을 들으며 시큼한 커피 한잔에 행복을 느끼는 낯선 땅의 처음 온 카페가 주는 설렘과 두근거림, 그리고 따뜻함을 그대는 아는가?
마음 가는 데로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그 마음은 결국 경험과 느낌으로 만들어진다. 한국을 떠나올 때는 생각에도 없던 뉴질랜드가 다음 목적지로 정해졌다. 순전히 치앙마이의 매연과 더위가 우리에게 공기 좋은 나라, 시원한 나라에 대한 니즈를 불어넣었고 우리는 비싼 값을 치르고 그 일 순위로 꼽힌 뉴질랜드행 비행기 표를 샀다. 심지어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스탑오버로 일주일간 머무는 일정이다. 우리는 다시 여행 전 정했던 인도네시아 > 몽골 > 러시아 > 에티오피아 > 알제리 > 쿠바의 노선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여행은 시간과 행로를 거슬러 간다. 우리는 서울의 2시간 뒤에서 서울의 3시간 앞으로 왔다. 며칠을 새벽에서야 잠들고 오전 10시가 넘어야 눈을 뜨는 날들을 보낸다.
바보같이 나는 글을 쓴 지 몇 년이 흘러서야 이 글에 바로 시작하는 단락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늘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허술하여 내게 깨달음을 준다. 하지만 곧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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