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런 바람에 - 3부. 세상을 탐하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한 끼 식사값이 칠, 팔천 원 하는 한국에 살다 삼, 사천 원이면 잘 먹는 동남아에서는 그렇게 마음이 여유로웠는데, 밥값으로 만 오천 원은 생각해야 하는 호주에 오니 씀씀이에 예민해진다. 사실 길거리 연주자에게 몇천 원 기부하기 어려울 만큼 어려운 형편은 아닌데, 상대적으로 가난한 여행자를 자처한다. 며칠을 악착같이 아껴 살다 이만 원을 주고 산 버스카드를 한 번밖에 못 쓰고 잃어버리고 나서 정신이 번쩍 든다. 쓰린 속을 달래려고 내게 그 이만 원이 없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게 없어도 나는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스스로 암시를 하자 사실 내가 그렇게까지 악착같을 이유가 하등 없었음을 인지한다. 사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돌고 도는 가치일 뿐인데. 편해진 마음으로 쿨하게 스포츠 바에서 내가 좋아하는 에일맥주를 가격도 묻지 않고 시킨다. 그 맛이 꿀맛이다. 맨날 운운하던 가격 대비 만족도가 없어지니 매우 만족스럽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직원 A가 나한테만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지언정 그녀는 자기 일을 제대로 못 했고 나는 그로 인해 큰 금전적 손해를 봤다. 더 크게 정신적 손해까지 볼 판이었다. 화가 나는데 화를 낼 대상에게 연락의 방법이 없다.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는가? 어딘가 분풀이라도 하고 싶어 씩씩대는 나에게 옆에 있던 그가 법륜 스님의 영상을 틀어주었다. 영상을 보며 나는 인생사 새옹지마, 아직 나쁜 일이라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고 마음이 다독였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남 탓 한들 무엇하리 다음부터 내가 더 꼼꼼하게 잘하자라는 마음가짐 앞에 역시, 마음의 문제였던가 하는 깨달음이 찾아온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러하다. 호주에서 뉴질랜드로 이동하기 위해 공항에서 체크인하는데 직원이 우리에게 뉴질랜드에서 나오는 항공권이 있냐고 물었다. 우린 언제 어디로 갈지 아직 모름으로 들어가는 티켓만 예매한 상태였다. 항공사 직원 B는 그게 있어야 수속이 가능하다며 젯스타 서비스 데스크에 가서 환불 가능한 표를 사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므로 우리는 몇 차례 100% 환불 가능한 표임을 구두로 확인하고서 오클랜드에서 골드코스트로 돌아오는 항공권을 구매했다. 구매가 끝나고 다시 수속을 위해 카운터로 가자 새로운 직원 C가 우리에게 호주에서 나가는 항공권이 있냐고 묻고는 없으면 사야 한다고 했다. 내가 상황을 이야기하자 C는 아니 왜 그 사실을 직원 A나 B가 이야길 안 해줬는지 모르겠다며 심지어 우리가 산 표는 환불이 안 되는 티켓이란다. 우리는 함께 서비스 데스크로 가 상황을 설명했다. 이것은 분명 A의 실수였다. 하지만 그녀는 미안하단 말도 없이 덕분에 표를 바꾸게 되었으니 행운이라며 우리에게 추가 요금을 받고 구매한 비행기 티켓을 환불 가능한 것으로 바꿔주었다. 나는 A의 태도에 신뢰가 가질 않아 그녀에게 명함을 요구하고 환불 절차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길 요구했지만, 그녀는 명함은 없다며 모든 것은 온라인상에서 처리되니 온라인으로 취소하면 된다고 했다. 오클랜드에 온 후 항공권 취소를 위해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가 봤지만, 변경만 가능할 뿐 취소 및 환불 기능 자체가 없었다. 콜센터에 전화 걸기가 부담스러워 묵고 있던 airbnb 숙소의 호스트 D에게 부탁했는데, 싱가포르에 있는 콜센터 직원은 환불에 대한 권한 자체가 없는 듯했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 이렇게 기다림, 저렇게 기다림의 1시간이 넘는 전화 통화가 끝나고 나서야 우리는 170달러(취소비 100달러, 봉사료 70달러)를 제한 금액을 환불받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건 사실 집요하고, 인내심 강하고, 법을 공부했으며, 정의감이 투철한 D의 승리로 볼 수 있었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값비싼 레슨이었던 셈이다. 만약, 내가 전화를 붙들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한국어로 통화했어도 환불받지 못했을 것이다. 콜센터 직원의 태도는 무례하진 않았지만 한심하고 짜증 나고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이 시간 끌기로 느껴졌다. 봉사료는 D가 받아야 할 거 같은데 항공사 측에서 받아간 것이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보니 무비자 입국 시에는 무조건 출국 티켓이 요구된다고 한다. 13년 동안 그렇게 여행을 했음에도 그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저가항공이 저가항공일 수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젯스타의 전 세계 번호는 다 싱가포르 콜센터로 연결되는 듯했다. 그 콜센터는 외주인 듯했고 권한이 많지 않으므로 환불은 애당초 쉽지 않은 구조이다. 항공사 입장에서 환불은 봉사료에서 계산되지 않은 비용이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는 앞으로는 꼭 환불 가능한 출국 표를 사전에 고려하고 움직이기로 다짐했다. 나는 추후 절차가 필요한 일에는 반드시 담당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번 교훈이 앞으로의 우리 여행에 디딤돌이 되길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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