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런 바람에 - 3부. 세상을 탐하다
다섯째 날 >
아침에 부지런히 일하고 오후엔 옆 동네인 왕가파라파라에 가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 마을에는 가게가 있다니 동네 구경도 하고 가게에 들러 맛있는 것도 사 먹을 심산이었다. 가까울 줄 알았는데 차를 두 번이나 얻어 타고 1시간을 넘게 걸어서 거의 2시간 만에 도착했다. 여긴 내가 있는 오쿠푸 마을과는 다르게 바다가 더 호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착장에서 만난 아저씨는 커다란 황돔을 잡으셨다. 막대기도 없이 줄만 가지고 저런 큰 고기를 잡다니 역시 고수는 장비의 역량을 뛰어넘는가 보다. 돌아오는 길 우편배달부의 차를 얻어 타는 행운을 누렸다. 니키에게 우편물이 있어 집까지 편히 올 수 있었다. 섬 대부분의 우편물은 섬의 2개의 주요 선착장과 공항 근처에 있는 우체통에 넣어지고 사람들이 찾아가는 방식인데 일부만 이렇게 배달을 해준다고 한다. 그는 이 섬의 유일한 집배원이었다. 물론 이곳에서는 썩 많은 것이 유일하긴 하다. 그에게서 섬의 다양한 자랑거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섯째 날 >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마치고 북쪽 마을인 포트피츠로이에 가기 위해 일찍 길을 나섰다. 미처 몰랐지만 7번의 히치하이크를 통해 목적지에 갔다 오면서야 왕복 60Km의 산길이 얼마나 먼 거리인지 인식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친절하게 태워주고 나의 무지를 걱정해주지 않았다면 오늘 집에 돌아오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북쪽에서 가장 큰 마을일 것이라고 지도를 보고 막연하게 추측했던 포트 피츠로이는 클라리스나 왕가파라파라보다 더 나을 것 없는 슈퍼 하나, 식당 하나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다. 배 들어오는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일주일에 딱 한 번 배 들어오는 날만 연다는 버거 가게에서 함께 하와이안 버거를 먹었다. 희소성 때문인지 배고픔 때문인지 버거가 꿀맛이다. 항구 주변에 모여 앉아 사람들이 버거를 먹으며 수다는 떠는 모습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그 순간의 경험만으로도 의미 있는 하루였다고 단정할 수 있을 만큼. 엄청 긴 여정 끝 오두막에 돌아왔을 땐, 피곤함으로 금방 곯아떨어져 버렸다.
일곱째 날 >
바쁜 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밭일하고, 시내에 가서 낚시 미끼를 사 오고 산에 올라가서 나무도 심고, 돼지 밥도 주고, 소라도 잡고. 정말이지 잠시도 쉴 틈 없는 하루였다. 니키는 마지막 날이라고 일거리를 잔뜩 주었다. 어쩌면 이런 게 니키의 일상일지도, 시골 사람들의 삶일지도 모르겠다. 여유로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돌봐야 하는 말, 돼지, 닭, 오리, 개, 고양이가 있고, 밭이 있고, 선산이 있고, 집과 오두막이 있으니 바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여유는 어디 사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가졌고 무엇을 해야 하는 가에서 오는 듯하다. 어쩌면 어디에 사느냐보다 얼마나 덜 가질 수 있고 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느냐가 여유로운 삶을 만드는 핵심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마지막 밤이다. 드디어 불타 석가모니를 끝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일 새벽의 온천을 기대하며 쉬이 잠이 든다.
마지막 날 >
아침 6시에 일어나 니키, 리사와 함께 자연 온천에 다녀왔다. 차를 20분 타고 가서 한 40분 정도를 걸어서 도착한 산속에는 연기가 모락모락, 유황 냄새가 스멀스멀 나는 천연 온천이 있었다. 여행 다니며 온천을 여러 번 가봤지만 이렇게 입장료 없는, 건물 하나 없는 자연 온천은 처음이다. 바닥에는 부식토가 깔린 것 같았는데 자연이지만 누군가가 열심히 관리하는 듯했다. 아마도 뉴질랜드 DOC (Department of Conservation) 일 듯하다. 온천욕과 명상을 즐기고 돌아와 짐을 싸고 청소를 했다. 니키가 말을 옮기러 나가는 길에 클라리스 근처까지 태워다 주었고 거기서부터 세 번 더 히치하이크해 부두까지 갔다. 그나마 운이 좋아 많이 걷지 않았으므로 아낀 시간 동안 중간에 비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배에도 일찍 도착해 낚시하는 승무원 아저씨와 함께 낚시를 즐겼다. 다시 4시간 반의 배를 타고 화려한 불빛의 오클랜드로 돌아왔다. 낯설지만 묘하게 친숙한 도시의 밤. 다시 걷고 걸어 나의 뉴질랜드 근거지가 된 유스호스텔로 돌아왔다. 하나의 여정이 끝났고 준비되지 않은 다음 여정이 나를 기다린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도미토리 침대에 몸을 뉘인다.
Auckland Library
인터넷을 쓰기 가장 좋은 장소는 도서관이다. 당장 내일 떠날 예정이므로 나는 도서관에 앉아 바쁘게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 어디서 머물지를 찾는다. 떠나 있던 일주일 새, 오클랜드 도서관 귀퉁이에 카페가 생겼다. 괜스레 집에 홈바를 들여놓은 듯 설렌다. 낯선 도시의 변화를 감지하고 좋아하는 것, 이 또한 여행자의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