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방학 Part 1 - 떠남 _#9
우리는 해가 지기 전, 차를 몰아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어요.
가죽등 거북이 알을 낳는 곳이 트리니다드의 동북쪽 끝이라니,
운명처럼 나는 이 작은 섬나라의 남서와 동북을 모두 밟아보게 되네요.
쭉 뻗은 동쪽 고속도로가 끝나자 길은 점점 좁아지고, 북쪽으로 향하는 도로는
어깨를 잔뜩 움켜쥔 듯 구불구불했어요. 저녁빛도 빠르게 스러졌지요.
도중에 불빛과 음악이 새어 나오는 간이식당에 들러
잠시 화장실을 빌리고, 피그테일 한 그릇을 시켜 나누어 먹었어요.
다시 차에 올라 어둠을 뚫고 달리자, 한참 뒤 작은 마을이 나타났어요.
언뜻 가구 수를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작아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 있을지도...
온 동네가 붉은 조명에 잠겨 있어 멀리서도 기괴한 빛을 뿜어냈거든요.
그 끝에서 드디어 찾던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어요.
"Grand Riviere Visitor Centre"
센터 안에는 황갈색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들은 훈련받은 거북이 파수꾼이자 생태 가이드라 했습니다.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파도 소리가 가까이서 들렸어요.
우리는 센터에서 짧은 영상을 본 뒤,
다른 방문객들과 함께 파수꾼을 따라 어둠 속으로 걸어 나아갔어요.
별도로 돈을 낸 이들과 가이드들만이 붉은 후레시를 들고 있었고,
나머지는 자기 발끝조차 가늠하기 힘든 칠흑 속을 더듬으며 걸었죠.
더듬거리며 따르던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습니다.
어둠에 익숙해지려는 몸부림이었지만,
어쩌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의식 같기도 했죠.
되려 무리에서 뒤쳐지니 마음이 편하기도 했고요.
조금 더 익숙해진 어둠의 모래 위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어요.
하얀 거북알 껍질이었습니다.
나는 조심스레 하나를 들어 손바닥 위에 올려봤어요.
이미 생명이 빠져나간 빈 껍데기, 그러나 묘하게 잔열의 흔적이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파도 소리가 한층 선명해진 곳에서 모두가 발을 멈춰서 있어요.
그들의 시선이 모인 자리, 붉은빛에 비친 건 거대한 거북의 등이었습니다.
네 지느러미를 느릿하게 퍼덕이는 모습은 숨결만으로도 압도적이었어요.
앞뒤 길이를 내 키와 견주어도 될 만큼, 무게는 족히 삼사백 킬로그램은 되어 보였고요.
사람 서넛이 달라붙어도 쉽게 옮기지 못할 육중함.
그 거대한 몸이 하고 있는 일이 ‘땅을 파는 것’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둘러싸 선 채, 지느러미로 모래를 퍼내는 거북의 묵묵한 동작을 지켜보았습니다.
모래가 어느 정도 파이자, 한참을 뜸 들여 자리를 고른 뒤 알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거북의 꼬리와 뒷지느러미 사이로 플래시를 비춰 물컹한 알이 하나씩 떨어지는 것을 보았어요.
친구는 이런 사적인 순간에 사람들이 붉은 후레시를 들이대는 게 잔인하다고 속삭였지만,
마을의 가이드는 거북은 빨간 빛을 보지 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을 전체가 붉은 조명에 잠겨 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죠.
알을 낳는 거북은 분명 예민한 상태였을 텐데도,
우리의 존재를 불편해하거나 불쾌해하는 기색은 없어 보였습니다.
엄마 거북에게 우리가 중요도 적은 존재였을 것 같기도 해요.
혹은 그 긴 과정 내내 완전히 혼자인 것보다는, 누군가 곁에 있는 편이 낫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죽등 거북은 전 세계 바다를 누비다, 자신이 태어난 해변으로 돌아와 알을 낳는대요.
추적기에 따르면 산란을 위해 무려 2만 킬로미터를 여행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요.
2~3년에 한 번씩.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왠지 뭉클했습니다.
힘겹게 알을 낳으며 눈가에 맺힌 투명한 액체는 단순한 고통의 눈물이 아니라, 생의 숙명 같이 느껴졌어요.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울컥하더군요.
거북은 알을 묻은 뒤, 별일 없었다는 듯 다시 바다로 향했습니다.
그 느린 걸음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것은 속도의 문제였지 미련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다가 내 안의 선택을 떠올렸어요.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사람입니다.
한 번의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에요.
항상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는 길은 끝없는 헌신과 예기치 못한 희생이 뒤따른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그 대신 글을 쓰고, 여행을 하며, 그저 발자취를 덜 남기는 삶을 택했죠.
때로는 그것이 이기적이지 않을까 자문하기도 했지만,
바다를 건너온 거대한 거북 앞에서 나는 이 삶의 방식 또한 하나의 필연적 여정이란 생각이 듭니다.
거북은 알을 낳고, 뒤돌아보지 않고, 다시 바다로 갔습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왠지 모를 눈물이 흘렀어요.
거북의 뒷모습이, 거북을 삼킨 파도가 내 안에 남아 있습니다.
삶이란 결국 무엇을 낳고, 어떻게 떠나는가의 문제가 아닐까요?
어쩌면 나는 이 깨달음을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