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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안, 이주의 역사 2

결혼방학 Part 1 - 떠남 _#7

by 방자

그러다 결국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 느낀 것들을 이야기했어요.

우리의 시공간적 거리가 당신에게 여유를 주었는지,

의외로 당신은 내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인상 깊게 읽었다며 김영하 작가의 <검은꽃> 이야기를 해주었지요.


1900년대 초, 가난에 지친 천여 명의 한국인들이 ‘땅을 준다’,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멕시코 유카탄의 에네켄과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주했지만,

노예와 다름없는 혹독한 노동 끝에 비참하게 쓰러져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었습니다.

당신은 책 속 주인공의 삶을 따라가며 ‘과연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곱씹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그 말에 곧장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대화를 끊자마자 전자책을 다운로드할 만큼요.


그 후예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주의 역사는 언제나 상실과 섞임을 동시에 품고 있는 듯합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살아낸 한국인 이주민들이

그 속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성장했는지, 아니면 상처 입고 무너졌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당장 내 앞에 있는 호스트 할머니의 부엌도 캐리비안의 역사를 품고 있었습니다.

푹 삶은 피그테일카사바가 곁들여지고, 노릇하게 튀겨낸 플랜타노가 식탁에 올랐지요.

각각의 재료는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에서 건너와 이 섬의 흙과 햇볕 속에서 뿌리내린 것들이었습니다.

입 안에서 어우러지는 맛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수백 년의 이동과 섞임이 남긴 기억 같습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부엌 한쪽에서 흘러나오던 소카의 리듬은 아프리카 드럼과 인도계 선율이 만나 탄생한 거라더군요.

낯선 땅에서 서로의 것을 나누고 버티며 만들어낸 생활의 리듬.

이주가 남긴 상처는 깊었지만, 그 속에서 태어난 음식과 음악은

이제 캐리비안이라는 이름으로 모두의 삶에 녹아 있는듯 합니다.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역사의 흔적이라 할 수 있겠지요.


나는 이곳에서 배운 ‘섞임’의 감각을 내가 속한 사회에 비추어 보았어요.

한국은 오랫동안 단일한 혈통과 문화를 자랑해 왔지만,

사실 역사 속 한국인들도 수없이 이동하고 섞여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민족’이라는 신화를 붙잡으며, 우리와 다른 피부색과 언어를 가진 이들을 경계하지요.

캐리비안의 음식과 음악처럼, 우리의 삶에도 이미 수많은 흔적들이 스며 있는데 말입니다.

나는 한국을 떠나기 전 광화문에서 봤던,

외국인,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발언을 서슴치 않던 시위대 무리를 떠올렸습니다.

잠시 머리가 지끈 거리는 것 같았어요.


나 또한 지금 이곳에서 잠시나마 이주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안에 있는 정체성 역시 단일하지 않고, 수많은 경험과 만남 속에서 조금씩 섞이고 변해갑니다.

어쩌면 ‘사람답게 산다’는 것,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은

결국 얼마나 잘 섞이며 서로의 다름을 품을 수 있는가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돌아보면 우리의 문제도 다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력에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한때 달라서 서로에게 끌렸지만,

지금은 그 다름 때문에 종종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이것도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는 걸 깨달았어요.

다름을 대하는 내 마음의 문제.

나는 다시 당신을 새롭게, 호기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내가 먼저 그렇게 해볼게요.

내 마음에 부는 바람이 다시 당신을 향하게 하는 일이

어쩌면 그것만으로 충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에게 메세지가 왔습니다.

우와! 이렇게 가까이서 벌새를 보셨다니 부럽네요.

처음이었어요.

그저 내가 공유한 영상에 대한 가벼운 반응일 뿐인데 괜시리 내 마음이 쿵쾅쿵쾅 거렸습니다.

그러고 보면 타이밍이라는 게 참 묘해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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