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캐리비안, 이주의 역사 1

결혼방학 Part 1 - 떠남 _#6

by 방자

지난 주말, 호스트 할머니와 한참 수다를 떨었어요.

자메이카 출신인 그녀는 요리를 하며 소카 음악을 틀어놓고 덩실덩실 몸을 흔드는, 흥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트리니다디언이 아니라 자메이칸이었구나’ 싶었지만, 정작 그녀는 스스로를 자메이칸도, 트리니다디언도 아닌, 그냥 캐리비안 사람이라고 강조했지요.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스스로를 유러피안이라 부를 때처럼,

이곳에도 섬과 섬의 경계를 넘어서는 정서적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달까요.


유럽의 공동체가 단지 지리적 연결이 아니라 ‘유로’라는 경제적 기반 위에 놓여 있다면,

이들의 공동체는 어쩌면 ‘상실’과 ‘이주’, ‘노동’의 기억 위에 세워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낯선 곳으로 끌려오거나, 살아내기 위해 이주해야 했던 이들.

그 긴 시간 속에서 형성된 정서적 동질감이 ‘캐리비안’이라는 단어 안에 녹아 있는 것 같았거든요.

나는 ‘캐리비안’이라는 표현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지 궁금해져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트리니다드 앤 토바고, 자메이카, 쿠바, 아이티 같은13개의 독립 국가와 마르티니크, 푸에르토리코, 퀴라소 등 15개 이상의 의존령들.

생각보다 넓고 복잡한 이름들이 모두 같은 카리브 해 위에서 호흡하고 있더군요.

트리니다드 사람들의 뿌리도 그 안에 있습니다.

사탕수수 농장을 위해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

식민지 시절 계약 노동자로 유입된 인도계 이민자들.

그들의 후손이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캐리비안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캐리비안 지역의 원주민들은 대부분 사라졌다고 해요.

외부인이 들여온 전염병과 학살, 혼혈화로 인구가 급감한 탓에...

현재 이 지역 사람들의 대다수는 제국주의 시대에 열강들이

사탕수수 등 농산물을 재배하기 위해 끌고 온 아프리카 노예, 그리고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에 뭣 모르고 넘어 온 노동자의 후손입니다.

미국이나 캐나다와는 맥락이 다르지만,

이곳 또한 외지인들의 이주로 형성된 다문화 사회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이곳에서 ‘다양성’보다는 ‘다름’을 더 크게 느꼈습니다.

그 이유가 무척 궁금했어요. 권위적인 정치와 정책 때문일까요?

역사적 맥락에 기반한 낮은 시민 자율성 때문일까요?

아니면 세계화와 정보 격차 때문일까요?

혼자서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그 또한 즐거운 사유였습니다.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지요.

당신은 이 이야기에 흥미를 가질까요? 아니면 그가, 혹은 내 친구가?

적절한 대상을 찾지 못한 채 나는 홀로 호기심의 미로를 어슬렁거렸습니다.


>> 다음회차에 이어집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5화Seeing the uns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