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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ing the unseen

결혼방학 Part 1 - 떠남 _#5

by 방자

아침 6시 반, 숙소를 나서 트리니다드 남부로 향했습니다.
열세 명의 프로젝트 스태프가 차량 세 대에 나눠 탔는데 제가 탄 차는 에어컨이 시원찮아 창문을 열 수밖에 없었어요.

오래된 좌석은 푹 꺼져 허리를 세우기 힘들었고, 해진 천 사이로 노란 스펀지가 삐져나와 있었어요.

싸구려 플라스틱 패널에는 누렇게 밴 손때가 남아 있었고
앉아 있자니 엉덩이엔 좌석의 프레임이 느껴졌어요.

도대체 이런 차를 마지막으로 타본 게 언제였을까 싶었습니다.
습기 어린 바람은 창을 통해 얼굴에 끈덕하게 달라붙었다가, 반대편 창으로 흘러갔어요.
그래도 땀을 더 맺히게 하는 미지근한 에어컨 바람보단 낫다는데,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죠.


나는 생각했습니다.

여행과 고행의 경계에는 아마 ‘이동수단의 편리함’이 있지 않을까.

20대 시절 불편을 당연하게 여기던 배낭여행, 인도와 알제리의 불편했던 교통수단들이 떠올랐어요.

이런 시간을 잘 견디는 법. 이젠 제법 잘 알고 있습니다.
에어팟을 꺼내고 다운로드하여 둔 여행음악을 틀었어요.
<낡은 배낭을 메고>, <출발>, <바람이 불어오는 곳> 같은 노래를 들으며
현실과 과거, 그 경계 어디쯤에 의식을 기대 두었습니다.

도심을 벗어나자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제멋대로 자란 나무들이 펼쳐졌어요.

풍경은 뮤직비디오처럼 흘렀고, 남쪽으로 갈수록 집들은 더 낮고 낡아 보였습니다.

벗겨진 칠, 드러난 시멘트 벽.

그곳은 누군가 연출한 레트로풍이 아니라, 시간이 멈춘 진짜 1980년대 같았습니다.

드라마 세트장보다 더 드라마 같은... 풍경.


그 생각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자 옆자리 스태프가 흥미롭다는 듯 제게 물었습니다.

| "What are you listening to? You look like you're enjoying it."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씩 웃으며 답했습니다.

| "Nostalgia."
그녀는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듯이 더 크게 뜬 눈으로 나를 봤어요.
나는 고개를 흔들고, 어깨를 으쓱한 뒤 빼었던 이어폰을 다시 끼며 말했습니다.
| "It's not about what I’m listening to. It’s about what I’m seeing. Seeing the unseen."


나는 잽싸게 고개를 창쪽으로 돌렸어요.

더 설명할 자신이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거든요.
내가 쓴 Seeing the unseen이란 말이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습니다.
본 적 있는 책 제목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머릿속을 헤집어도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았어요.
핸드폰을 켜 검색을 해보려다 한 칸뿐인 수신 신호를 보고 두었어요.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그저 궁금한 채 품고 있어도 고만인 것을.


그 여정의 끝에 도착한 어촌마을에서는 쿰쿰한 해초 냄새가 났어요.
트리니다드 남쪽 끝, 모루가에서도 한참을 들어온 마을이었어요.
스태프 중 한 명의 부모님이 이곳 출신이라는 이야길 전해 들었습니다.
낡은 판잣집 몇 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병아리들과 걱정스레 뒤를 쫓는 암탉, 혼자 노는 수탉.
그리고 약간은 경계의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
유난히 까만 피부 때문인지 그들의 경계 어린 눈은 더 선명하고 희게 보였어요.
한 엄마가 붉은빛의 천 포대로 둘러업은 까만 아이의 반짝이는 눈과 마주치니

내가 이곳에서 아주 이질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소 헌팅 업무를 맡은 몇몇은 바쁘게 동네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지만
하릴없는 나는 친구의 불편을 챙기고 현장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바다 구경에 나섰어요.
쿰쿰한 냄새의 원인은 파도에 휩쓸려와 더위에 마른 해초 더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사이, 낮은 파도와 고기 배 몇 척이 있는 코코넛 트리 사이의 뷰는 마치 그림 같았지요.


아름다운 바다뷰와 불쾌한 냄새, 평화로운 파도소리와 습기 가득 몸에 와닿는 바람의 끈적거림.
그 다면적인 경험이 내가 삶의 한가운데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삶에 한가운데.. 치열하게 살아가는 존재자가 아닌 관찰자로 말이에요.
그 태도가 어색하고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근래 쭈욱 그런 포지션을 취하고 있던 것 같았지요.
관망하는 듯한..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역할에 대한 책임감인지, 직면에 대한 회피인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나는 삶의 주인공이 아니라 해설자가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무언가를, 아마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재조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유의 흐름을 따라 해변에 서 있던 작은 배에 천천히 다가갔어요.
얕은 파도가 배의 머리맡을 간질이듯 밀어오고 있었고,
배는 그 흐름에 따라 조용히 춤을 추는 듯 보였지요.
조심스레 배의 뒤편에 손을 얹었어요.
오래됐지만 반듯이 칠해진 나무 표면은 단단하고도 따뜻했어요.

바로 그때, 생각보다 큰 파도가 발끝까지 훌쩍 밀려와 신발과 정강이를 적시자
나는 "엄마야"하곤 큰 소리를 내며 놀라 뒤로 한 발 물러났습니다.

웃음이 나왔어요.

조금 전까지 관찰자니 성찰이니 떠들던 말들이 허망해 느껴졌죠.

별것 아닌 파도에도 이렇게 당황하는 나에게, 나의 어리석음에 기가 찼습니다.

내 생각을, 그와 꽤 멀리 있던 내 행동을 아무도 모르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하지만 당신이 웃었으면 하는 마음에,

아무도 보지 못한 사실을 담아 당신께 이렇게 보냅니다.


웃어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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