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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ding hummingbird

결혼방학 Part 1 - 떠남 _#4

by 방자

프로젝트 스태프들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친구가 파트너에게 말했어요.

"It's all about you, why I am here."

누군가 그 말이 로맨틱하다고, 또 다른 이는 "So realistic."이라며 웃었습니다.

진심은 끝내 드러나지 않았죠.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카페에서 그가 당신에게

“가장 좋아하는 게 뭐예요?”라고 물었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맥락상 좋아하는 커피를 답했어야 했지만, 나를 보며 “이 사람이요.”라고 말했죠.

나는 어색했고, 그는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왜 그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걸까요? 그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요. 당신은 어때요?


나는… 조금씩 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며 사람들은 각자 바빠졌고, 내 일은 단순해 비교적 한가했거든요.

그래서 본업을 잊지 않으려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요즘은 ‘새를 좋아하는 소년’이 등장하는 짧은 단편을 쓰고 있어요.


며칠 전, 무더운 낮에 에어컨과 아이스커피를 찾아 20분 걸어 마을 중심가로 갔습니다.

뒷길 철문 너머 큰 나무 아래에서 교복 입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이 보였어요.

한 줄기 바람과 함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내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사진을 찍고 싶어 핸드폰을 꺼내 창살 가까이 다가갔어요.

그 순간 아이 하나가 내게 손을 흔들었고, 나도 손을 흔들자 아이들 몇 명이 내게 달려왔습니다.

그중 한 아이가 두 손을 모아 들고 있었어요.

손 안에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나는 친근하게 물었습니다.

"What are you holding?"

아이가 씨익 미소지으며 손을 살짝 열자, 푸른 머리와 연둣빛 몸통의 처음 보는 작은 새가 보였습니다.

내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It’s a hummingbird."

라고 아이가 말했어요. 나는 그 말에 잠시 멈췄습니다.

출발 전, 그가 “트리니다드엔 벌새가 많대요.길에서도 볼 수 있을 거예요.”

라고 말했던게 떠올랐거든요.

당신은 그가 새를 좋아한다고 했죠. 버드와칭이 취미라고.

그리고 지금, 내 앞에서 손을 내민 아이는 말합니다. “벌새예요.”

하지만, 그 새는 벌새가 아니에요.

내가 아는 벌새는 부리가 더 길고, 작고… 그랬던 거 같은데?
나는 소년에게 보여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소년이 뿌듯한 듯 미소 지었어요.

맑은 소년의 눈빛에서 그를 떠올렸어요. 전혀 닮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카페에 들어선 나는 인터넷에서 벌새를 찾기 시작했어요. 진짜 벌새를요.

아니 어쩌면 내가 본 새가 무엇인지였던 것 같기도 해요.

화면엔 수십 종의 트리니다드 벌새들이 나타났습니다.
섬 하나에 이런 수가 살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한 색과 크기, 이름을 달고 있었어요.

나는 소년이 보여 준 새가 푸른 풍금조(Blue Dacnis) 암컷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White-necked Jacobin라는 퍽 비슷한 컬러의 벌새가 존재함도 알게 되었죠.
새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은 의외로 즐거웠습니다.
깃털의 색이나 부리모양, 눈 모양, 비행 방식, 크기, 울음소리 등으로 구별하는 방식도 흥미로웠고요.
그러다 벌새가 빠르고 유연한 어깨 덕에 공중에 정지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새란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새 구경에 한참 심취해있다가 문득, 내가 찾고 있던 게 벌새가 아니라 그가 건넸던 한 조각의 진심에 대한 추억,

그리고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졌던 순간의 기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우스웠죠.

몇시간이 흘렀는데 원래 카페에서 하려던 일은 하나도 하지 못했거든요.

커피를 다 마시고 나왔을 때, 혼란하던 감정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큰 나무를 지나쳤지만 아이들은 없었어요.

나는 그 새와 소년을 떠올리며, 언젠가 진짜 벌새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며칠 동안 트리니다드 곳곳에서, 공원과 정원, 지인의 집에서 벌새를 발견했어요.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는데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지 못했던 것을 인식하는 순간, 세상은 달리 보였습니다.

마치 김춘수의 시, <꽃>처럼.


조심스럽게 나의 발견을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벌새를 찾는 한 소년을 세워두었어요.

당신일 수도, 그 일수도, 나 일수도 있는 한 소년을.


일상을 탐험하고, 성찰하고, 글을 쓰며…

난 조금씩 더 잘 살아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꽃 _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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