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방학 Part 1 - 떠남 _#2
아침 일찍 친구 커플이 일을 보러 나간 후,
나는 혼자 방에서 창 밖 풍경을 감상하며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상황의 심플함 때문인지 카페에서 몇 번 들었던 곡의 가사가 새삼 귀에 쏙쏙 박히는 듯했어요.
당신이 그와 나누던 대화에서 나는 이 아일랜드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를 알게 되었습니다.
『Painter』, 『Baker』같은 소박한 제목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그가 내려주던 베르가뭇향의 에티오피아 커피가 간절했습니다.
단순하지만 세련된 삶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랄까?
낯선 곳에서 달콤한 상상에 잠겨 있을 때, 호스트 할머니가 노크를 하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부활절 빵이라며 십자가 모양의 슈가 글레이즈가 올라간 빵을 제 책상에 놓아주고는 안부 묻다 나가셨어요.
벽에 붙인 지도를 보고는 가죽등거북과 스칼렛 아이비스를 트리니다드의 볼거리로 추천해 주셨죠.
그녀가 나간 후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보며 흥미진진해하고 있었는데
자연의 신비에 대한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책상 위의 빵이 전혀 다른 생명들에게 점령당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수십 마리의 개미들이 마치 개척자들처럼,
십자가 모양의 슈가 글레이즈 위를 줄지어 오르내리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그렇게 빠르게 나타난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었죠.
잠깐 빵째로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스쳤지만
마음을 바꿔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향했어요.
“Ma’am! See! Ants are eating my bread!”
나답지 않게 거의 비상사태처럼 외쳤는데, 호스트는 태연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Oh, no! Put that bread in the oven.”
“…Are we going to burn the ants?”
“Yes, that will work.”
그건 내 방식이 아니란 생각이 스쳤지만,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을 떠올렸어요.
저는 바닥에 빵 부스러기가 가득한 작은 오븐에 접시를 밀어 넣고, 다이얼을 180도로 돌렸습니다.
오븐에 불이 들어오자 작은 빵 위로 열기가 퍼졌고,
그 위에서 분주하던 개미들이 하나 둘 멈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뜨거운 공기, 설탕이 끓는 듯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습니다.
나는 무심결에 오븐 쪽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가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기묘하게 다가와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언뜻 인식된 나의 잔혹성을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잔혹성과 개미의 생존 사이에서 묘한 불편함을 느꼈던걸지도 모르겠어요.
잠시 뒤, 할머니가 방으로 와 미소를 머금고 말했어요.
“The problem solved!”
나는 따뜻해진 접시를 받아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냥 자연스러운 것일까?'
복잡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살펴보니, 빵은 노릇하게 데워졌고 딱딱하게 굳은 설탕 덩어리는 더 하얘져 그 위의 검은 개미들이 도드라져 보였어요.
나는 다시 개미들을 불러 모으고 싶지 않아 접시를 들고 테라스로 나갔습니다.
개미가 붙은 크림 부분을 조금씩 떼어내 정원 쪽으로 던지고 남은 빵을 베어 물었어요.
따뜻한 빵은 맛있었어요.
기분 탓인지 목이 좀 막혔지만.
이것이 내가 겪게 될 트리니다드 라이프의 서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방식을 수용해야 하는 것 말이에요.
몇 시간 뒤, 친구 커플이 돌아왔습니다.
친구 얼굴에선 기운이 빠져 있었고, 말투엔 피로보다 더 깊은 불만이 묻어났어요.
관공서에서 하루를 다 썼다고 했습니다.
십 분 남짓한 면담을 위해 세 시간을 기다렸고,
서류 하나를 받기 위해 다시 줄을 서야 했다며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했어요.
친구를 거들며 나는 집에서 있었던 개미 사건을 풀어놓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낯선 곳에 대해 의구심과 호기심 사이를 오가며 다름과 불편을 섞어 속삭였어요.
그 뒤로도 이곳의 많은 것들은 익숙한 기준과 비교되었습니다.
무더위와 모기, 먼지와 매연… 무엇이든 피부에 달라붙어 머릿속까지 눅눅해지는 기분이 들 때면 우리는 서로에게 하소연했습니다.
그리고 함께라 다행이라며 대화를 끝냈습니다.
그러다 저는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혼자였다면, 개미 사건도 관공서 지연도 그저 '이곳의 방식'으로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함께 있기에 비교할 수 있었고,
비교하기에 불편이 불만이 된 것은 아닐까.
개미를 오븐에 넣는 것이 잔혹해 보였지만,
그것이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문제 해결법일 수 있습니다.
내가 낯설어했던 것은 개미가 아니라, 나와 다른 방식이었죠.
트리니다드에서의 첫 배움은 이것 같아요.
내 방식이 유일한 방식이 아니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