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 나오기 싫은 세계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좋아하는 이유라. 좋아하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원래 싫어하는 이유는 분명히 댈 수 있어도 좋아하는 데는 구체적으로 대답하기가 어려운 거 아닌가. 그냥... 마음이 좋대... 그래도 좋다는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명확하게 이유를 찾아보고자 글을 써본다. 글을 쓰다 보면 흐렸던 것도 뚜렷해지니까.
1. 좋은 그림책을 읽으면 마음이 몽글몽글 말랑말랑 부드러워진다. 가끔 울컥 눈물이 날 때도 있다. 말문이 막힐 때도, 입이 벌어질 때도 있다. 그런 기분이 들 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2. 얇고 작은 그림책 세계에 거대한 세계가 담겨 있다. 그 세계에서 나오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면 읽고 또 읽고, 천천히 책장을 넘긴다.
3. 오래 간직하고 싶었지만 점점 잃어가는 순수한 마음을 찾게 해 준다.
그렇지, 아직 세상은 살만하지. 절망에 지면 안되지. 그런 마음이 든다.
4. 독자들에게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밝고 희망찬 이야기뿐만 아니라 나쁘고 비겁하고 슬프고 힘들고 어렵고 부조리하고 끝내는 받아들여야 하는 이야기까지도 전한다.
* 그중 좋아하는 건,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화사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은데 그럼에도 '죽음'을 전하고자 했다면 그 그림책을 만든 작가가 오랜 고심 끝에 반드시 전하고자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그림책의 존재 이유와 만들어진 과정, 품고 있는 가치는 분명 얕지 않다고 생각한다.
5. 글과 그림이 함께 호흡한다. 물론 글이 없는 그림책도 있고, 성인 단행본에도 그림이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림책에서는 글과 그림이 아주 깊게 연결되어 있다.
6. 짧은 글과 한정된 펼침면에 그려진 그림은 메시지가 농축되어 있다.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없다. 우리는 메시지 안에 잠겨 충분히 구석구석 느껴야 한다.
7. 현실을 딛고 창작된 세계이다. 수많은 작가님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유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를 토대로 새롭게 만든 이야기, 앞표지를 열고 들어갔다가 뒤표지를 닫고 나온다. 완전한 하나의 세계다.
적다 보니 확실해진다. 그림책 진짜 좋다. 좋아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