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번째 3월 13일의 기록
레나는 애늙은이다. 스물여덟 살, 3년 차 회사원인데 우리가 흔히 '독일인'하면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의 그런 성격이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인 거 안다. 그리고 마주하는 독일 사람이 '레나'가 처음은 아니라서 독일인 죄다 그랬다는 소리도 아니다. 그런데 레나와 한국어 수업을 하면 할수록 '요즘 얘들 같지 않네.' 나도 모르게 식상해져 버린다. 그러고서 '어머! 나, 방금, 꼰대?' 살짝 그런 내가 싫어진다. 아무튼 독일사람 '레나'는 나보다 아래로 열 살 차이인데도 종종 나보다 더 어르신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내 별명은 애늙은이예요."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애늙은이 레나는 착실하다. 한국말을 제법 해서 뉴스, 드라마, 다양한 자료를 가지고 수업을 한다. 나도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하고 서로 합이 좋아 노력하니 꽤 길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서서히 거리가 좁혀지니까 수업 중에 토론을 가장한 수다 아닌 수다를 떨 때가 있다. 이번 수업에는 드라마 '여신강림'을 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마무리로 화장빨로 연애에 성공한 주인공의 '자존심'과 '자존감' 토론을 했다. 어쩌고저쩌고 잘~하다가 어김없이 옆길로 새고 말았다. '색조 화장품'이라면 환장을 하는 내가 그만 펑! 봉인 해제 된 것이다. 나는 못 말리는 '코덕'이다. '코덕'은 '코즈메틱 덕후'의 약자인데 우리 집에 가면 화장품이 차고 넘친다. 내가 만일 파산했다면 그 까닭은 화장품 지름신에게 영혼을 팔았기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레나는 그다지 관심이 없단다. 오늘도 쌩얼이다. 내가 친구들도 그러냐고 물으니까, 그렇단다. 나는 너무 당연한 걸 물었나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끼리끼리 친구 한다고 여겼는데 그다음 이어지는 말이 독일사람 대부분이 그렇다고 한다. 특히 남자는 화장 안 하는데 한국 남자는 하니까 놀란 눈치였다. 내가 내 남동생은 비비크림도 바른다고 하니까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독일 여자들은 한국 여자들만큼 외모를 꾸미는 데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한국 사람이 왜 그렇게 외모에 관심이 많고, 한국 화장품 산업이 이만큼이나 발전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서로 왔다 갔다 얘기하다 보니 얘기는 외모지상주의에서 회사면접까지 나왔다. 회사 면접에 합격하고 싶어서 얼굴 성형도 하는 슬프디 슬픈 현실을 나는, "정말 너무하지 않아?" 나보다 열 살 어린 외국인 앞에서 징징댔다. 여기서 레나는 실력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일에서는 지나치게 외모를 꾸미고 면접을 보면, 그 사람은 얼굴만 예쁘고 능력은 떨어지며 머리는 나쁜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아~ 백치미"라고 정리했다. 그리고 백치미 따위는 한국에서 옛날, 옛날, 옛날 얘기라는 것도.
"1차에서 머리 좋고 똑똑한 사람이 됐으니까 2차는 모두 다 똑똑하고 머리가 좋아요. 한국은 공부 많이 해요. 그래서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뻐요."
레나는 아차! 싶다는 얼굴로 바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또 우리는 지난번 수업 때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보며 한국 교육 현실을 공부하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은 공부도 잘하는데 얼굴도 예뻐. '나도 한국인이야 까불지 마~'이런 기분이면서도 '에효, 누구는 금수저 누구는 흙수저 치열하다 치열해~' 어깨는 축 처진다. 신나게 수업 다 하고서, 괜히 삐죽해져서 오늘 수업 끝 했다.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나 원 참. 아무튼 백치미라... '딴따라'로 불리던 아이돌도 외국어 하나 이상은 하는 시대인데 그런 게 있나?
정말이지, 레나는 요즘 얘들 같지 않다니까. 요즘 얘들은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