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새로운 가능성
대부분의 조직은 어떤 형태로든 나름의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신입 대상 교육이나 승진자 교육처럼 구성원의 상황에 따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교육은 기본적으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신입 직원에게는 조직에 대한 적응과 빠른 실무능력 습득, 관리자에게는 리더십과 의사결정능력 등 각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역량과 능력을 익히게 하는 것이 조직의 교육이 가지는 핵심적인 목표이다.
그리고 조직의 입장에서 이러한 목표는 조직이 원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많이 산출하면서도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생산성의 극대화와 연결되어 있다. 계량화할 수는 없겠지만 한 명의 신입사원에게 원하는 생산의 결과물이 100이라고 가정할 때, 조직은 최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 그러한 결과가 산출되기를 원할 것이고, 이를 위한 방안으로 교육을 선택할 것이다. 만일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어떠한 교육도 하지 않고 해당 신입사원이 100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면 조직의 입장에서는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일은 불가능하다. 혹 그러한 능력을 가진 누군가를 채용해서 똑같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한 채용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며 가능하다 해도 그에 대한 비용이 교육보다 많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교육은 즉각적으로 결과를 확인하기 어려우며 재무적으로는 비용으로 인식되기 쉽다. 따라서 조직이 단기적인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교육은 필요악으로 여겨질 수 있다. 덕분에 많은 조직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는 힘이 약한 찬밥 신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혁신을 부르짖는 수많은 조직들에서 혁신이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교육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혁신과 교육’ 일견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조합이다. 왜 ‘혁신’에 ‘교육’이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조직에서 이루어지는 ‘혁신’에 대해 생각해보자.
조직에서는 기본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상 업무가 존재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기획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직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해당 조직이 운영되기 위한 업무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일상 업무는 사실 조직 내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일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일상 업무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 업무에서 혁신은 창조 업무에서만 일어나는 것일까? 조직 내에서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매일, 매주, 매달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일상 업무를 이전보다 훨씬 더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달성해낸다면 그 또한 혁신이다. 즉 ‘혁신’은 조직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 일상 업무와 창조 업무에서 기존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혁신이 어떻게 교육과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조직 내에서의 일을 일상 업무와 창조 업무를 구분한 것에 맞추어 이번 글에서는 일상 업무의 혁신에 대해 살펴보겠다. 일상 업무의 혁신이라는 것은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종이가 열 장 필요한 일을 두 장이 필요한 것으로 3시간이 걸리던 일을 1시간 만에 해 내는, 얼핏 보면 혁신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사소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조직 전체의 관점에서 일상 업무의 혁신은 조직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다. 비용을 줄이거나 좋은 결과를 달성하는 것은 모든 조직에서 원하는 것이다. 다만 일이라는 것이 개인의 단위로 세밀하게 쪼개지면 너무 세세하기 때문에 실제 해당 일을 수행하는 개인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생산성을 가지고 진행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일상 업무의 혁신은 특별한 개인이 일을 맡아서 해야 이루어지는 것처럼 여겨져 왔다. 그런데 특별한 개인이 있어야만 일상 업무의 혁신이 가능한 것일까? 실제 많은 혁신은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일어난다. 그러한 결과를 우연이라고 여기겠지만, 그러한 우연이 일어날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일상 업무에 대한 교육과 학습이다. 반복적으로 처리하는 상당수의 일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접근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과정은 해당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기 전에는 어려운 것인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방식을 부정하고 새로운 방식을 접근해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람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하던 일의 방식이 문제라는 생각은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다면 가지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의 조직에서는 새로운 사람이 일상 업무를 익히는 것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신입들은 어떤 선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업무 적응의 결과가 달라진다. 많은 한국의 조직에서는 성심성의껏 알려주는 ‘사수’ 보다는 방관하거나 괴롭히는 ‘사수’의 존재가 일반적인 것처럼 보인다. 특히 흔하게 회자되는 혼자서 고생하며 업무를 익혀야 진정한 자기 것이 된다는 논리는 사실 선임자 입장에서 가르쳐주는 것 자체가 귀찮다는 말의 다른 버전으로 들려온다.
그러한 상황이 한국의 수많은 ‘사수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 배우지 못 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상당수의 일상 업무가 누가 그 업무를 담당했느냐에 따라 다양한 퍼포먼스의 차이를 드러낸다는 것뿐이다. 게다가 동일한 업무임에도 조직별로 다양한 생산성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조직에서 직무 기술서와 같은 형식의 매뉴얼을 만들어 활용하지만 만드는 사람이 들이는 노력에 대비해서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실 진정으로 일상 업무에 대한 혁신을 원한다면, 일상 업무의 단위 별로 부서나 팀을 꾸리듯 학습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학습조직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같은 일상 업무를 수행하는 단위 내에서 누구나 교수자가 되고 학습자가 되어 새로운 사람에게는 빠른 습득을 그리고 기존의 업무 처리과정에 대해 누구나 문제제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을 이름뿐인 제도를 시행한다고 해서 달성하리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한국의 조직 내에서 수많은 새로운 시도와 제도가 본래의 의미와는 왜곡된 결과를 낳는 가장 큰 이유는 권력(Power)을 가지고 있는 관리자나 CEO가 새로운 시도와 제도에서 예외가 되기 때문이다.
질문은 상급자만 대답은 하급자만 하는 방식은 이름뿐인 소통이다. 소통은 대화의 흐름이 양방향으로 진행될 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상급자의 관점이 정답이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면, 지금도 그것이 정답인지는 확인해보아야 한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HR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그저 겉으로만 그럴듯해 보이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진정 교육과 학습을 통한 혁신을 원한다면 기존 업무 처리에 대한 파괴적인 문제제기 또한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보여주는 작은 예외가 작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려져야 한다. 회사의 CEO가 자신의 조직에서 원칙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 하위 단위의 관리자는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조직의 단위에서 거리낌 없이 원칙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멋들어진 이름의 제도, 무의미한 페이퍼 워크에 시달리는 누군가 그리고 조직의 괴롭힘에 신음하는 사람들일 것이다.